(칠레 6)
도시 갤러리, 발파라이소

칠레의 부산

by 파란 해밀


2018. 05. 12. 발파라이소



이스트섬에서 4박 5일의 일정을 보내고 칠레의 마지막 남은 3일을 보내기 위해 산티아고로 들어왔다. 산티아고는 칠레의 수도답게 그동안 다녔던 도시들에 비해 그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복잡한 거리, 수많은 인파, 빵빵 터지는 시위와 더불어 극심한 교통 정체로 정신이 없다. 도착한 첫날은 숙소에 짐을 풀고 가볍게 쉬었다.



그다음 날, 가고 싶어 했던 발파라이소로 가기 위해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이른 시각이지만 터미널은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티켓을 끊으려고 가는 중에 예쁘장하게 생긴 아가씨가 다가와서 "발파라이소, 발파라이소"를 외친다. 마침 가려는 곳이 발파라이소라 관심이 있어 물어보았다. 버스 값에 돈을 조금 더 얹으면 왕복 교통과 점심을 포함한 시내투어를 제공하는 일일투어 상품이었다.



한 때 발파라이소는 한국의 부산 같은 칠레의 무역항으로 해상무역이 활발한 도시였지만 지금은 옛 명성에 비해 많이 쇠퇴하여 예전 같지 않다. 그럼에도 많은 관광객들이 이 곳을 찾는 이유는 허름한 항구도시의 낡은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수많은 벽화와 칠레의 국민 시인으로 불리는 네루다의 생가가 있기 때문이다.

오로지 벽화를 보기 위해 발파라이소에 가길 원했지만 달동네로 올라 갈수록 빈민가가 많다 보니 소매치기를 비롯한 각종 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곳이라는 이야기가 꽤 많이 나오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버스 티켓을 끊으러 가면서도 다시 한번 마음을 다 잡으며 가던 차였는데 그녀의 발파라이소 상품에 귀가 솔깃했다. 소그룹으로 이루어지는 투어이니 가이드와 더불어 같이 다니는 일행이 있어 안전할 수 있겠다 싶어서 선뜻 투어를 신청했다.

그녀가 지정해준 버스를 타고 발파라이소로 향했다. 터미널에 도착하면 그곳에서 다른 직원이 나와 나를 픽업해 줄 거라고 한다.

'정말 직원이 나를 알아보고 픽업을 제대로 할까?'
'그냥 돈만 날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들었지만 일단 믿고 가보기로 했다.



산티아고에서 2시간가량 걸려 도착한 발파라이소 터미널은 발 디딜 틈 없이 많은 인파들로 복작거렸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마음씨 좋게 생긴 퉁퉁한 아주머니가 다가와 내 이름을 묻는다.

'최소한 돈은 날리지 않았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녀를 따라가니 승합차 한 대가 기다리고 있다. 이미 꽤 많은 관광객들이 타고 있었다. 내가 타고 조금 있다가 중년의 한 커플이 더 타고서야 차는 출발했다. 천천히 터미널 주변을 벗어나는 차 안에서 바라본 발파라이소는 오래되고 낡은 곳이지만, 북적거리는 틈새로 사람 냄새 물씬 나는 그런 곳으로 보였다.



터미널을 출발한 차는 네루다 생가 가는 길 오르막 초입새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금세 허물어질 듯 허름한 집도 있었지만, 한 발 건너, 두 발 건너 화려한 벽화가 그 집을 상징하는 문패처럼 그려져 있다. 낡은 도시에 절묘하게 생기를 넣어주는 신의 한수이다.

만약 저 벽화가 없었다면 이곳은 마치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은 어두운 빈민가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림의 소재는 다양했다. 귀엽고 깜찍한 캐릭터가 있는가 하면, 멋진 레터링도 벽화로서 빠지지 않는 장르로 전혀 손색이 없다. 게다가 상당히 기품 있는 수준 높은 그림들은 아예 도시 자체를 갤러리로 변신시켜 주었다. 제일 눈에 띄는 것은 단순히 벽에 그림만 그린 것이 아니라 주변 건물의 구조를 잘 활용하여 그 면면들조차 하나의 작품으로 끌어들인 벽화 앞에서 그들의 창의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벽화들은 누가, 왜 그리는 건지 궁금해서 가이드에게 물어보았다. 그림에 소질 있는 거주자가 자기 집 벽에 그리거나, 시에서 무상으로 그리는 건가 했었는데 그렇지가 않다고 한다. 집 소유주가 사비를 들여서 화가에게 그림을 요청하는데 그 비용이 꽤 비싸다고 한다. 그래서 돈이 없는 사람은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값 비싼 인테리어 작품인 것이다.



남미에 와서 가장 인상적인 것을 꼽으라면 나는 단연코 자유분방한 컬러의 표현을 들겠다. 다양한 색상은 물론, 선명한 원색도 꺼림 낌 없이 사용하지만 결코 어색하지 않다. 대부분 절제된 색을 사용하는 우리에 반해 그들이 선택한 색은 생각과 표현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건 아닐까 싶다. 자유롭게 표현한 그림과 색을 보면서 내 생각의 빗장도 벗어던지게 된다. 흡사 처음 혼행을 했을 때 느꼈던 그 홀가분함이 자유로운 그림들 앞에서 다시 느껴본다. 우리도 언젠가는 지나치게 절제되고 획일화된 틀에서 벗어나 다채로운 개성과 다른 생각도 폭넓게 존중받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벽화를 따라 여기저기 천천히 둘러보고 싶지만 투어상품이다 보니 여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투어 신청을 하지 않고 그냥 혼자 올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잠시 들기도 했지만 그러기에는 발파라이소가 꽤 큰 도시였고, 벽화가 워낙 많이 흩어져있어서 그것을 다 볼 수도 없지만 당일치기를 하고 돌아가기에는 걸어서 다니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듯하다.

오기 전에 우려했던 치안은 생각보다는 괜찮아 보였다. 물론 달동네에는 인적이 뜸해서 다소 불안했지만 평지 번화가 쪽으로는 활기차고 안전해 보였다.



100년이 넘었다는 푸니쿨라를 타고 발파라이소가 한눈에 바라보이는 콘셉시온 언덕으로 올라가 보았다. 넓은 해안선을 따라 빼곡히 들어찬 도시는 한 때 화려한 명성을 훈장처럼 걸고 길게 뻗어 있었다. 점심을 먹은 식당 옆으로는 여기가 정말 부산이 아닐까? 할 정도로 한 켠에는 눈에 익은 붉은 대형 컨테이너들이 쌓여있다. 고향 까마귀도 반갑다고 했던가? 신물 나도록 봐 온 컨테이너가 이곳에서 보니 얼마나 반갑던지...... 혹시 내가 검사하느라 열고 닫았던 컨테이너도 저기 어디쯤 쌓여 있는 건 아닌지......
직업은 못 속이는 걸까? 벽화 다음으로 거대한 깡통 같은 컨테이너가 왜 그리도 눈에 번쩍 띄고, 격하게 반가운지 지금 생각해도 피식 웃음이 난다.



우리를 태운 차는 어느 바닷가에서 멈추었다. 처음에는 다리 색과 별 차이가 없어 저게 뭔가 했더니 물개들이 바위에 붙은 따개비처럼 다닥다닥 붙어 누워 햇빛을 즐기고 있다. 수면에서 꽤 높은 곳인데 뒤뚱거리는 몸으로 어찌 올라갔는지 재주가 참 용하다.

콜롬비아에서 온 가족이 내가 혼자 여행 왔다고 하니까 굳이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한다. 언젠가 꼭 가볼 곳으로 일찌감치 리스트에 올려둔 콜롬비아에 굵은 밑줄을 죽죽 그었다.



발파라이소 중심을 약간 벗어나면 깨끗하고 번화한 신도시 구역이 있지만 그다지 눈이 가지 않는다. 낡고 허름하긴 해도 사람 냄새나는 시장통과 달동네의 진한 풍경이 먼저 들어와 있어 빈자리가 없다.

투어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핫스팟이라며 또다시 차를 세워준다. 얼떨결에 내려 둘러보고 있는데 여자 친구는 속이 불편해서 차에서 안 내렸다며 자신의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외국인 남자가 있어서 찍어주었더니, 품앗이로 꽃시계 탑 앞에서 나도 서 보라고 한다. 그때는 그다지 좋아하는 배경이 아니라서 찍고 싶어 하지 않았는데, 좋든 싫든 사진으로 남겨놓으니 그래도 사진 속에 그때의 추억이 소복이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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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를 마치고 산티아고로 돌아오는 길은 심한 교통정체로 예정된 시간보다 훨씬 늦게서야 도착했다. 그래도 볼거리 많고 사람 냄새나던 왁자 왁자한 발파라이소에 대한 기억이 '까짓것 좀 늦으면 어때?'하고 쿨하게 내 어깨를 친다.


언제 다시 또 칠레를 갈 수 있을까마는 그런 기회가 있다면 발파라이소에서 며칠을 묵으며 구석구석 골목을 돌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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