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사당의 뚜껑이 열리면 로보트 태권브이가 하늘로 박차고 오른다는 우스갯소리를 나는 농담이 아닌 진지함으로 받아들이던 시절이 있었다. 내 앞에 놓인 삶이 나의 전부일테지만 이토록 넓은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삶이 있고 내가 전혀 알지 못하고 지나가는 일들 또한 지금 어딘가에서 무수히 벌어지고 있다. 모르고 살면 그만이지만 상황이 종료된 후에 그걸 목격하는 일은 다소 쓸쓸하고 약간은 슬프다.
얼마 전 영화 <서울의 봄>을 보면서 그랬고 조금 더 전에 문화비축기지에서 그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T2, T6, T4
마포에는 일반인의 접근이 금지된 1급 보안 시설인 석유비축기지가 있었다. 총 5기의 석유탱크에 약 6,900만 리터의 석유가 보관되었다. 2002년 월드컵의 열기가 들끓을 때 안전상의 이유로 폐쇄되었다가 2017년에 이르러 오일탱크들은 해체되어 재활용되거나 새롭게 리모델링되고 거대한 철근 외벽과 콘크리트 기둥은 보전되었다.
위급한 상황을 대비해 무언가를 비축해 둔다는 건 좋은 대비책이겠지. 한강의 기적에 사로잡혀 있을 때 석유는 산업화 시대라는 건장한 몸을 콸콸 순환하는 핏줄이자 양분을 주는 젖줄이었을 것이고.
한때는 숨도 못 쉴 만큼 역겨운 기름 냄새로 가득했을 곳, 꺼림칙하고 을씨년스러운 비밀의 장소에는 찬란한 햇살이 쏟아져 내리고 쾌적한 공기 속에 전시, 공연, 워크숍, 촬영 등 다채로운 행사가 벌어진다. 이제 그곳은 석유가 아니라 문화를 비축한다.
T1
탱크는 모두 여섯 개. 이게 과연 기름 탱크가 맞나 싶을 정도로 성이나 요새처럼 보였고 외관만 봐도 벽 너머의 공간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이 밀려들었다. 어서 보러 가자는 내 마음이 종종거렸지만 그 마음과는 별도로 오래 아껴보고 싶은 마음이 발걸음을 느려지게 하고 한참을 머물게 했다.
과거에 탱크들은 형태나 용도가 달랐듯 지금도 그러하다. 기록을 조금 해보자면......
# Tank1: 휘발유를 보관했던 탱크의 철판을 해체해 유리로 벽체와 지붕을 얹어 파빌리온이 되었다. 탱크가 묻혀 있는 지층과 탱크를 둘러싼 울창한 나무들을 마치 땅 속에서 올려다보며 서 있는 기분이 들게 한다.
# Tank2: 경유를 보관했던 탱크였지만 해체되어 상부는 야외무대, 하부는 실내 공연장으로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 Tank4: 등유를 보관했었고 탱크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분위기가 참 오묘했다. 어둠과 울림이 기분을 압도했기에 만약 이곳에서 공연을 한다면 다른 조명이나 스피커가 필요 없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발을 쿠웅쿵 가만히 구르다가 다다다다하고 가볍게 뛰면 벽과 천장까지 미세하게 진동했고 목소리의 중후한 떨림이 공기 중에 파동을 일으켜 왠지 모르게 심해에 들어온 분위기였다.
# Tank 5: 등유를 보관했던 탱크로 영상미디어관과 전시관이 되었다. 인류 문화유산인 '가면'을 주제로 한국과 아세안 사람들이 만들어낸 얼굴들을 전시하고 기원을 소개하고 있었다.
# Tank 6: T1과 T2를 해체한 철판을 활용해 새로 건축한 탱크로 카페테리아와 도서관 등 쉼터가 있다.
T4, T5, T6
탱크들을 하나씩 돌아보자니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마음이 평온해졌고 나도 모르게 점점 위안을 받고 있었다.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니 그곳에는 삭막한 '폐허'의 느낌과 광막한 '풍경'의 느낌이 둘 다 있었다.
걱정과 미안함, 허무, 위기의식, 결핍, 박탈 같은 편하지 않은 마음 상태, 즉 불안을 다독여주는 효과가 그 장소에 있었다. 폐허는 무한한 시간을, 풍경은 무한이라는 공간을 내포하며 영원의 시공간에 살고 있는 인간을 보잘것없는 몸으로 만들고 영원이라는 관점에서 부정적인 생각을 하찮은 감정으로 전락시키고 있었다.
폐허와 풍경은 세속적 성취와 불안정한 보답, 전심을 다하는 노력과 허탈한 소멸, 시간 안에 도달하려는 완성과 이상화된 완전 때문에 끊임없이 '불안'에 시달리는 인간을 '영원'이라는 이름의 경외감으로 보듬어 안고 있었다. 나는 그 시공간 속에서 마음의 평정을 비축하고 있었다.
T2, T4
최악의 경우를 일부러 상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불행은 예상을 전혀 못할 때 느닷없이 찾아오는 불길한 손님 같은 거니까 미리 생각해 둔다면 그건 더 이상 갑작스러운 무언가가 아닐 것이고, 예측을 당한 불행이 깜짝 놀라 나를 비켜가리라는 일종의 미신이랄까 나만의 주문이었다.
그런데 살아보니 상황은 최악으로 가기 전에 언제나 뜻밖의 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일례로 건강검진을 하고 난 후 내가 위암에 걸렸으면 어쩌나 온갖 걱정을 하며 병원에 가더라도 결과는 위암이 아니라 위염으로 나오기도 했고 언젠가는 위암이 아닌 유방암에 걸렸다는 말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
길고 긴 시간의 동굴 속에는 행불행이 늘 같이 손잡고 있으며 그중 내가 무엇을 골라 손잡을지 선택할 길은 없다. 하지만 불행을 애써 짐작하기보다 행복을 가슴에 끌어안고 살며 매 순간 그 온전함을 잊지 않는다면 최악이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더라도 나는 흔쾌히 나의 손님으로 맞아들일 수 있으리라. 어느새 소박한 희망으로 물든 영혼이 안식을 얻는다.
T1, T2, T6
살면서 평범의 기준치에 대한 반감이 있었다. 세상에서 하나인 유일한 존재라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과 있는 듯 없는 듯 무난하게 살고 싶은 감정의 변방에서 서성거리며 고뇌도 깊어졌지만 나는 근본적으로 평범한 인간일 뿐이었고 그건 누구도 다를 바 없는 진실이었다.
평범함은 부끄러움이나 두려움이 아니라 그저 평범하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 가장 인간적인 깨달음이었다. 내가 원하는 형태의 존재가 되기 위해 어떤 방법으로 주목과 관심을 받아야 할지 생각해 본다. 그건 그리 큰 부각은 아닐 것이며 바른 쓰임과 가능성이고 어쩌면 세상 모든 사물과 존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테다.
비밀은 아는 사람에게만 비밀일 뿐. 최악이 되기 전 비밀은 세상 밖으로 나와 올바른 위치를 찾았다. 평범함 안에서 특별한 잠재력으로 자리를 잡는다. 하늘에 걸린 구름이 모이고 흩어져 산이 되었다가 섬이 되기도 하더니 다음은 어떤 모양이 될지 내 머리 위에서 기다리고 있다. 더 이상 하늘은 하늘이 아니고 에메랄드빛 바다이고 사파이어색 호수가 되어 나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동심원의 파문을 일으키며 허공에 퍼진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물결이 세상을 휩쓸더니 황금빛 서린 햇살이 되어 어깨로 쏟아져 내린다.
내가 있는 이 대기를 꽉 채운 건 무엇인가. 나의 내면에 무언가 낯선 일이 벌어진 것처럼 두려움과 설렘, 뭉클함이 온통 뒤섞인다. 나의 몸은 바깥을 향하지만 눈은 내면을 들여다본다.
내가 품은 시공간은 작고 무르지만 바깥을 경험한 몸이 선사하는 크고 단단한 세계로 인해 한없이 한없이 부풀어 오른다. 나는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달라진 비축기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