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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융이라고 불립니다 Oct 24. 2021

아직도 독일의 구석구석에서 한국의 그것을 찾는다

어쩔 수 없는 한국 사람

"어, 이거 아삭이 고추인가?"

슈퍼에서 장을 보다가 한국에서 먹어본 아삭이고추와 비슷하게 생간 고추를 보았다.  할라피뇨라고 쓰여있었는데 그동안 못 보던 것이었다. 그 자리에서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어서 엄마에게 카톡으로 보냈다.


"엄마, 이거 아삭이고추야?"

"어, 비슷하다. 사서 먹어보면 알지"

"음. 안 돼. 너무 비싸."

한국시장에서는 한 봉지에 3천 원에 샀었는데 이건

3개에  2유로가 넘는다고!

한국에서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먹어본다고 산다 치면 지출이 어마어마해진다.

그래도 아직까지 'Süd Korea'라고 딱! 쓰인 것들을 보면 눈길이 쉽게 거둬지지 않는다.

우리 동네 슈퍼에서 파는 100그램에 10유로가 넘는 한국산 새송이버섯이 그러하고, A4지 반만 한 봉지에 들어있는 2유로가 넘는 삼립빵가루가 그러하고, 150ml에 3유로가 넘는 샘표간장이 그러하다.

이젠 20년 차. 그런 그리움을 향수를 장바구니로 연결하면 주머니에 큰일이 난다는 걸 아는 짬밥이다.



그래도 지금은 사진이라도 찍어서 수다로 마음을 달랠 수가 있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슈퍼에서 사직 찍는 것이 불법인 때가 있었다. 뭐였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어느 슈퍼에서 한국말을 발견하고 슈퍼에 한국 제품이 있다는 것이 너무 신기해서 사진을 찍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직원이 와서 사진을 지워달라고 해서 당황한 적이 있었다.

요즘은 아울렛에서 제품 사진을 찍어도, 사진 찍어도 되는지 물어보지 않아도 될 만큼 아무렇지 않은 일이 되었지만 말이다.


독일에서 살면서 가장 좋은 것 중의 하나를 꼽자면 장바구니의 안정화(?)다.

굳이 한국식만 고집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저렴하게 장바구니를 채울 수가 있다.

식재료들의 가격이 거의 고정되어있다. 굳이 제철을 훌쩍 넘는 것을 구입하려고 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고서는 과일과 채소들의 가격은 그다지 변화가 없다. 고기의 가격도 더 그렇다. 한국과 비교하면 어마어마하게 싸다. 나는 한국의 삼겹살 가격이 그렇게 비싼 줄을 한국 마트에 가서 알았다.  

독일에서는, 고기보다 비싼 새송이버섯을 두어 개 장바구니에 넣어 부서지지 않게 고이고이 들고 온다.

얇게 썰어서 고기 구워 먹을 때 곁들여 먹으면 부자가 된 것 같다. 봄에 만든 남은 명이나물이 있거나, 베란다에 심은 깻잎이 있다면 금상첨화다.

지난봄에는 명이나물을 찾으러 다녔다. 예전에 알아둔 군락지가 올봄에 사라져서, 누군가의 집에서 바깥 담벼락으로 퍼진 명이가 있다길래 찾아 나섰다가 마침 그 집주인 아저씨가 정원에 나온 틈을 타 같이 간 언니가 물었다. "우리 너희 정원에서 명이 좀 따도 될까?" 그 집의 주인아줌마와 지난봄에 통성명을 한 적이 있는 언니가 아주머니께 들은 이야기를 하자, 아저씨는 흔쾌히 들어와서 따라고 문을 열어주었다.

정원의 한편에 크게 자란 명이나물들이 즐비했다. 집주인 부부가 오스트리아 어느 산에 갔을 때 명이가 자라 있는 것을 보고 몇 뿌리 캐다가 정원에 심었는데, 몇 년이 지나자 이렇게 번져서 자랐다고 했다. 그 노부부의 멋진 집은 하나도 안 부럽고, 나는 그 명이나물이 자라는 정원의 그 귀퉁이가 부러웠다.


가을이 되면, 슈퍼에 밤이 나온다. 주로 터키나 프랑스에서 온 것들이다. 독일에는 먹는 밤이 잘 안 난다고 한다. 슈퍼에서 신중하게 실한 밤을 고르고 있었던 어느 날, 독일 할머니가 나를 유심히 보다가 말을 걸었다. 이건 어떻게 해 먹는 거냐고. 한 번도 밤을 먹어본 적이 없단다. 나는 신이 나서, 어떻게 밤을 삶아먹는지, 반을 갈라 작은 스푼으로 파서 먹으면 쉽다는 걸 알려드렸다. 오븐으로 군밤처럼 해도 되고 우리 아이들은 군밤으로도 잘 먹지만, 여기서 파는 밤은 수분이 너무 없어서 할머니께는 좀 더 부드럽게 드시게 삶은 걸 권해드렸다. 할머니의 흥미로워하는 눈빛이 생각이 난다.

우리 동네 길가의 가로수가 밤나무인데 너도밤나무다. 기왕이면 그냥 밤나무를 심을 것이지. 밤이 수두룩하게 떨어진 길가를 지나면서 투덜거린다. 먹지도 못 하는 너도밤나무는 왜 이렇게 심어서. 만약에 먹는 밤나무가 있었다면 나는 이번에는 동네 다람쥐들과 밤 쟁취의 전쟁을 치렀을지 모를 일이다.

도토리묵을 해 먹어 볼 거라고 길가에 떨어진 도토리를 스무 알 정도 주워와서 베란다에 말린다고 널어놓은 적이 있었다. 그래 놓고는 깜박 잊고 겨울에 눈 사이에 있는 도토리 몇 개를 보고는 ', 맞다 도토리!' 하고 다음날 눈이 녹아 바닥에 떨어져 있는 도토리를 줍기 시작했다. 그런데 분명히 스무 개 정도를 주워왔는데 대여섯 개밖에 없었다. 바람에 쓸려 밖으로 떨어졌나 보다. 하고 남은 도토리가 너무 적어 묵을 해먹을 수가 없어서 그냥 버렸더랬다. 그리고 그다음 해 봄, 화분에 깻잎을 심으려고 흙을 갈고 있는 중에 화분 흙에서 깨진 도토리들이 나왔다. 웬 도토리? 흙 위면 모를까 바람에 쓸려들어갔다해도 흙 사이에서 나오는 건 아무래도 이상했다. 그것도 껍질이 벗겨져 있거나 반쯤은 다 없어진 도토리들, 게다가 갉아먹은 자국... 그제야 웃음이 났다. 다람쥐들은 먹이가 없을 때를 대비해서 먹던 도토리를 남겨 흙속에 숨겨둔다고 독일 할아버지가 얘기해준 게 생각이 나서다. 이런... 내가 훔쳐온 너희 양식을 너희가 도로 찾아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다음부터는 도토리를 줍기가 좀 그랬다.


쌀을 사도, 어떤 쌀이 한국 쌀이랑 비슷하다며 정보를 공유하고, 봄여름에는 열무며 얼갈이 등을 재배하며 파는 농장에서 나오는 한국 채소들을 산다. 요즘은 한국 인터넷 상점이 있어서 한국 식품들을 사는 것이 용이해졌지만, 자주 품절이 되고 또 비싸서 마구 편안하게 시켜먹는 형편은 아니다.

익숙하게 먹던 것들을 먹는 심신의 안정감이 있다. 그래서 다소 비싸도 다소 수고로워도 한국 음식 해 먹기를 놓지 못한다.

수고롭지만 김치를 담아서 먹고, 슈퍼에 예쁜(?) 배추가 있으면 하나라도 손에 들고 와야 직성이 풀린다. 고추와 오이와 양파로 장아찌를 만들고, 마늘은 갈아서 냉동시켜둔다. 언제든지 우리 맛을 먹을 수 있게, 없어서 슬프지 않게.

그렇게 익숙했던  맛들을 찾고, 재현하고, 안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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