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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융이라고 불립니다 Oct 24. 2021

아들, 그때 독일말을 못 해줘서 고마웠어

한국말밖에 못 하던 시절 이야기

우리 아이들은 집에서 나랑만 지내다가 유치원을 갔기에 아이들이 독일어를 매일 정식으로 듣기 시작한 건 유치원 시절부터였다. 집에서도 주로 한국 TV만 보았고, 내가 만나는 사람들도 다 한국 사람들이었으니 그럴 법도 했다. 처음 유치원에 갔을 때,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하면 아이가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있더라는 말씀을 하셨다. 안 듣겠다는 표현이다. 너무 걱정이 돼서 소아과에 진료를 갔을 때 소아과 선생님과 진지하게 상담을 했다.

우리 소아과 의사 선생님은 나이가 지긋한 여자 선생님이었는데, 늘 진료에 진심이셨다. 좋은 담당의사를 만나기가 어려운 시절인데(친한 독일 할머니 말씀이시다. 예전엔 의술의 발달이 지금만 못 했어도 '의사'가 있었는데 지금은 의술을 발달했는데 '의사'는 없고 병원에서 '일'로 하는 사람만 있다고 말씀을 하셨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참 감사하게도 좋은 '의사'가 있었다. 그 선생님의 조언은 지금처럼 하라! 는 것이었다. 어차피 아이들은 독일에 살고 독일 친구들을 만나니 독일어가 늘게 되어 있다. 오히려 점점 한국말을 덜 쓰게 되고 잊어버릴 거라고 했다. 그러니 집에서는 무조건! 엄마 아빠와는 한국말을 해라. 그리고 엄마 아빠가 독일어를 하면 아이들은 처음에 그 발음을 따라 할 거다. 혹여 부모의 잘못된 발음이 있으면 교정이 어렵다. 등등의 애정 어린 조언을 해주셨는데, 걱정하지 말라! 는 말씀이 너무 고맙고 든든했다. 그 선생님의 말씀처럼 1년도 되지 않아 아이들의 독일어는 쑥쑥 늘었고, 걱정할 일들이 없어졌다. 그리고 지금도 따로 한국어 교육을 하지 않았는데도 어렵지 않게 한국어를 쓴다.

유치원을 가기 전, 아이들을 데리고 다닐 때의 일이다. 그 나이의 아이들이 대부분 그렇겠지만 얼마나 할 말이 많은지 잠시도 쉬지 않고 조잘조잘거렸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도 인사를 하고(할로(Hello) 정도만 쉽게 했다)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이 궁금하고 물어보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놀이터를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데 근처 풀숲에 돗자리를 펴고 앉은 남녀가 부둥켜안고 키스를 하고 있었다. 엄마 옆에서 조잘조잘거리던 큰 아들이 그 장면을 보고,  평소와는 달리 엄마, 저기 뭐야? 하며 먼저 나에게 물어보지 않고 갑자기 입에 손을 모으고 크게 외쳤다.

"거기서 뭐하세요?"

당황한 우리들은 부랴부랴 아이 손을 끌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큰 아들은 지금도 물고기를 참 좋아한다. 지금도 한국에 가면 낚시를 하자고 한다. 독일에서는 낚시를 하려면(강에서도 낚시를 할 수 있으니) 낚시 면허가 있어야 한다. 처음 독일에 온 사람들이 멋도 모르고 강에서 낚시를 하다가 경찰서에 잡혀 들어간 적도 있다는 일화는 유학생들이 처음 독일에 와서 듣는 주의사항 중의 하나다.

아들이 어릴 때는 지금보다 더 물고기를 더 좋아했다. 수족관에서 보는 물고기들도 좋아하고, 먹는 물고기도 좋아했다.

한국에 갔을 때 외삼촌이랑 강가에서 물고기 잡는 일에 얼마나 열중을 했는지 세 살짜리 아이가 쉬지도 않고 그물을 끌고 다녀서 지친 외삼촌이 끌고 나오다시피 해서 텐트에 앉혀놓았을 정도였다. 수족관 구경을 갔을 때도 마찬가지로 밥 먹을 생각도 안 하고 물고기 관찰을 했다.

독일에서의 어느 날, 내 피부과 진료가 있어서 아들들을 데리고 병원에 갔다. 마침 대기실에 큰 수족관이 있어서 내가 진료받으러 들어간 동안 아들은 심심하지 않게 잘 기다릴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진료를 받고 나오니, 아들은 여전히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수족관의 예쁜 열대어들을 보고 있었다. 그야말로 눈에서 하트가 뿅뿅 튀어나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옆에 계시던 독일 할머니가 흐뭇하게 보고 계셨다. 내가 나오니 아들이 물고기를 너무 예뻐하는 것 같다고 말씀을 건네셨다. 내가 "네, 참 좋아해요."라고 대답을 하는데 아들은 내가 나온 것을 보고는 말을 했다. 여전히 눈빛은 물고기에게로 고정한 채..."엄마, 물고기... 맛있겠죠... 먹고 싶어요!"

헉! 하고 놀라고 있는데 독일 할머니가 웃으며 물으셨다. 방금 뭐라고 한 거냐고. 당황한 나는  "갖, 갖고 싶대요"라고 말하고 "안녕히 계세요"인사를 하고 부리나케 병원을 나섰다. 아들은 그제야 입맛을 다셨다. 아, 병원에서 입맛을 안 다 신게 얼마나 다행인가. 등에서 식은땀이 나는 듯했다.

속으로 아들에게 말했다.

'아들아, 독일말 못 해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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