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검둥이는 무사히 잘 지내고 있을까?
자주 먹지는 못하지만 생선회를 좋아한다. 넙치나 방어처럼 주로 저렴하고 양 많은 것을 먹는다. 고급 어종인 돌돔은 모둠회에 몇 조각 나와 먹어본 것 같기는 한데 어떤 맛이었는지 기억나지는 않는다. 그 대신 잊지 못할 돌돔이 있다. 그 돌돔의 이름은 흰검둥이다.
흰검둥이는 부산 다대포시장 출신이다. 태어난 곳이 양식장인지 바다인지는 확실치 않다. 처음 만났을 때는 횟감으로는 좀 작은 손바닥 크기였다. 돌돔의 포획 금지체장이 24cm인데 그보다는 작았던 것으로 보아 양식장 출신으로 여기기로 했다. 양식장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충분히 자라지 않은 어린 돌돔을 시장에 유통시킨다는 얘기를 들었다.
KBS환경스페셜 아이 엠 피시 편을 기획하던 2022년 초 예전에 SBS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에서 물고기 조련사로 소개된 최의봉 씨를 떠올리고 수소문 끝에 출연 섭외를 할 수 있었다. 실험 어종은 돌돔으로 정했고 이왕이면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시장통 좌판에서 구입해 훈련을 시키기로 했다.
흰검둥이라는 이름은 최의봉 씨의 쌍둥이 아들 중 하나가 지은 이름이다. 흰 줄과 검은 줄이 반반이니 딱 맞는 이름이다. 바닷물 수조는 세팅에 시간이 꽤 필요하다. 물고기가 없는 상태로 시스템을 가동하며 불순물을 여과하고 필요한 박테리아가 자리 잡게 하며 반대로 병원균이나 해충은 제거해야 한다. 그것을 물잡이라 하는데 그 과정이 끝나야 물고기가 안전하게 입주할 수 있다. 물고기 투입도 신중해야 한다. 원래 살던 곳의 수질과 수조의 물이 온도, 염분, PH와 그 외 성분이 다르므로 물맞댐이라 하여 조금씩 물을 흘려 적응시키는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흰검둥이는 수조에 들어갈 수 있었다.
낯선 환경일 텐데도 흰검둥이는 크게 동요하기보다는 어항을 이리저리 다니며 주변을 탐색하고 어항 밖 사람들을 살펴보는 듯했다. 물고기도 분명 호기심을 갖고 있다. 호기심이 있기에 다양한 환경에서 여러 가지 먹이를 탐색해 먹을 수 있는 것이다. 벌써 주둥이로 모래들 휘적이며 먹을 것을 찾았다. 최의봉 씨가 사료를 몇 알 던져주니 잠시 망설이는 듯했지만 금방 받아먹었다.
2주일이 지난 후 다시 만난 흰검둥이는 수조 생활에 완전히 적응한 듯 보였다. 촬영 장비와 스텝들은 경계하면서도 의봉 씨의 움직임에 집중하며 졸졸 따라다녔다. 의봉 씨가 수조 벽면에 동그란 고리를 붙이고 손짓을 하자 흰검둥이가 고리를 통과했다. 단 2주 만에 이런 훈련이 가능하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고 고리의 수를 4개로 늘리고 위치를 바꿔도 흰검둥이는 쉽게 미션을 완수했다.
그로부터 한 달쯤 후엔 8개의 고리를 이리저리 옮겨 붙이고 각도를 다르게 해도 의봉 씨의 손짓 하나면 흰검둥이는 지시하는 대로 움직이며 모두 통과했다. 어쩌면 똑똑하다는 강아지나 돌고래보다도 빠르게 익히는 것 같았다. 흰검둥이는 색도 구분한다. 파란 고리만 선택적으로 통과하는 모습을 보고 탁구공 훈련을 구상했다. 흰 공과 주황색 공을 매달아 놓고 지시하면 한 가지 색만 머리로 치는 것이다. 흰검둥이는 그것도 쉽게 해냈다.
물론 물고기의 특성을 잘 파악하고 교감을 이끌어내어 물고기와 의사소통하는 최의봉 씨의 능력도 대단하지만 횟감으로나 여겨졌던 돌돔이 사람의 의도를 파악하고 특정한 사람을 기억하며 교감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자연 상태에선 거의 일어나지 않을 행동으로 보여준다는 것은 더 놀라웠다.
https://youtu.be/MiDPryNoRFY?si=_lavGUD00GY7mQNO
그로부터 1년 후, 아이 엠 피시로 큰 상을 받은 후 흰검둥이의 근황이 궁금했는데 촬영 이후에는 훈련을 쉬고 그냥 편히 키우다가 수조에 문제가 생겨 다대포 앞바다에 풀어줬다는 소식을 들었다. 경계심이 많은 다른 돌돔들과 달리 사람에 익숙해진 흰검둥이가 낚시꾼을 친구로 여기지나 않았을지 궁금하고 염려되었다.
만약 상 위에서 돌돔회를 마주한다면 흰검둥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