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최후변론은 이렇게 시작했다. 피고인은 전과가 많았다. 그것도 꽤나 굵직한 사건들로 말이다.
공인중개사와 사무실에서 말다툼을 하다 중개사의 턱을 머리로 받았다는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은 시종일관 씨근덕댔다. 양반의 도시로만 알고 있던 대전의 사투리가 그렇게나 위협적으로 들릴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처음 알게 되었다.
첫 만남부터 심상치 않았다. 내가 알고 있던 상식과는 너무나 다른 이야기들을 씨근덕대면서 말씀하셨다. 믿기 어려운 이야기들이었다. 경찰은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오히려 손찌검까지 했으며, 변호사들은 그냥 합의하라고 종용하다 사임해 버리고. 의뢰인을 믿을 수 있을지, 실제로 폭행을 했을지 안했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어쩌랴. 우리를 믿고 대전에서 서울까지 올라온 분이다.
의뢰인에게는 이미 변호사가 있었는데, 알 수 없는 이유로 사임했다. 변호사가 사건에서 사임하는 경우는 종종 있다. 사건을 풀어 나가는 과정에서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면 사임하곤 한다. 나는 사임한 변호사님에게 전화를 걸어서, 사임의 이유를 물었다. 나이 지긋한 여자변호사님은 민법상 위임계약은 언제든 사임할 수 있는 것이라며, 그런걸 물어보는 걸 보니 기본도 안 된 변호사라고 꾸짖었다. 알아서 잘 해보라는 일갈과 함께 전화는 끊어졌다.
공판이 진행되면서, 나는 점점 의뢰인이 무죄임을 생각하게 되었다. 확신할 수는 없었다. 변호사는 확신하지 않는다. 확신할 수 없다. 확신할 필요도 없다.
3회 공판기일에 변론이 종결되었다. 무죄임을 생각하며 나는 최후변론을 고민했다. 경찰과 검사는 피고인의 유죄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 가운데에는 피고인의 화려한 전과가 있었을 것이다. 무겁고 화려한 전과 위에 얹힌 단순폭행의 전과는 깃털처럼 가벼웠다. 그러나 낙타를 무너지게 하는 지푸라기 한 가닥처럼, 그 한 가닥은 마음을 잡고 살아가는 피고인에게는 견딜 수 없는 것이었고 그의 무죄를 생각하는 나는 그에게 그 깃털을 올려놓고 싶지 않았다.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할 증거는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무죄를 확신할 수 없었다. 경찰과 검사와 판사는 같은 기록을 본다. 그 두꺼운 기록의 맨 앞장에는 피고인의 전과기록이 켜켜이 적혀 있었다. 경찰과 검사는 그 전과기록에 눈이 가리워져 피고인을 공판정으로 보냈다. 판사는 그러지 않으리라는 믿음은 있었지만 확신은 없었다.
판사의 뇌 속에는 전과 기록이 찌꺼기처럼 달라붙어 있을 것이다. 그 찌꺼기들을 그대로 침전시킬 것이냐, 들어내서 드러낼 것인가 고민했다. 끝까지 고민했다. 최후변론은 두 장이었다. 판사가 물었다. "변호인, 최후변론 하시죠" 판사의 얼굴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판사의 표정은 알 수 없었다. 천천히 일어났다. 변호인석의 의자는 무거워서 잘 밀리지 않는다. 엉거주춤 일어난다.
피고인에게는 전과가 많습니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피고인은 20xx년을 끝으로 아무런 전과가 없고, 행복한 가정을 꾸려 사회에 기여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과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억울하게 폭행의 유죄 판결을 받게 된다면 피고인은 영영 법질서와 사회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게 될 것입니다. 부디 피고인에게 무죄의 판결을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
판결은 곧 났다.
피고인은 무죄. 무죄였다. 판사는 피고인이 폭행을 저질렀다고 볼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피고인과의 전화를 나는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