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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영 Aug 17. 2021

언니가 그걸 해낼 줄 알았어요

워킹맘 다이어리

"언니, 전 언니가 그걸 해낼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후배가 나인지 내가 후배인지 그 경계가 흐릿해지는 순간이었다. 우리의 두 눈에는 서로가 드리워져있었다. "언니는 그래도 육아휴직을 짧게라도 할 줄 알았어요." 제도를 제도대로 쓴 첫 번째 직장인 임산부. 그 기록 경신을 한번 더 했으면 좋았을 텐데. 불러진 배를 보고 나를 멀리서 응원하던 그 후배가 출산휴가 3개월 만에 복직해버린 나를 보며 던진 말들은 제대로 비수가 되어 내 가슴에 콕 박혀버렸다. 


후배는 계약직 중에서 그나마 직장을 포기하지 않고 버텨온 친구였고, 모성보호시간 없이 꼬박 열 달을 버텼다고 했다. 우리는 다른 부서에서 다른 업무를 하고 있었지만 엄마, 계약직, 여성이라는 이름 아래 비슷한 서사에 묶여있었다. 후배 말대로 내가 그걸 언니로서 해냈었다면. 우리 회사 계약직 여성 중 최초로 육아휴직을 한 사람이 나였다면 정말 뿌듯했을 텐데 결국 그걸 하지 못 했다. 


그래서일까. 모성보호시간, 모성보호휴가, 육아시간, 육아휴가, 가족 돌봄 휴가 등. 엄마, 계약직, 여성이라는 역할 값으로 누릴 수 있는 제도들을 최대한 써보려 노력했던 것 같다. 누군가는  소리 없이 응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 생각에 꽂혀 더, 더, 더 열심히 글로 기록하며 내가 나인걸 잃지 않으려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건 삶의 여유를 주기보다는 분주함을 만들었다. 그 혜택들은 딱 3년 만에 동이 나 버렸다. 아이가 3살이 되던 어느 날 모든 제도들은 내게서 떠나버렸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국가가 키우는 아이의 평균 나이는 3살인 걸까.  

그 역할 값은 오로지 내 몫이 되었다. 월급과 맞먹는 돈을 써가며 아이를 돌보던지, 그 맞먹는 돈만큼 내 커리어를 포기하고 아이를 돌보던지 둘 중에 하나였다. 커리어도 포기하고 싶지 않고, 아이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유연근무제를 선택했다. 유연근무제를 시작한 지 한 달만에 몸이 녹초가 되었다. 돈을 아끼고 커리어를 지키려면 결국 내 몸을 더 헌신해야 한다. 모든 것엔 다 대가가 있는 법이다. 육아시간을 쓸 때만 해도 아침에 아이가 깨어나는 건 봤던 것 같은데, 유연근무제를 시작한 후로는 아이 자는 뒤통수밖에 못 본다. 그건 꽤 서글픈 일이었다. 


결국 유연근무제로 체력이 소진된 나는 유연근무제도 포기하고 말았다. 


"여보 할머니는 자식을 다섯을 키우셨어. 출산하기 직전까지도 참외밭에서 참외를 나르셨다며." 가끔 남편이 이런 볼멘소리를 하면 이 말의 함의는 '나약하게 굴지 말라'는 소리겠지만, 나는 '얼마나 힘드셨을까' 할머니의 행동이 아주 머나먼 행성에서 일어난 것처럼 과연 불가해하다고 느끼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어딘가에서 소리 없이 나를 지켜보는 사람이 있을 것만 같다. 내 무의식 속에라도 살아있을 할머니들을 이해하려 그렇게 계속 글을 쓰기 시작했던 것 같다. 비혼, 딩크, 페미니즘,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나는 이런 것들을 마주하면 어쩐지 그 후배의 한마디가 떠오른다. 언니, 언니는 그걸 해낼 줄 알았어요. 언니는 나처럼 하지 말고 꼭 해내 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선배는 꼭 이겨!'라고 말하는듯한 그 얼큰한 눈빛으로 하루를 버텨본다. 


커다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쇼트커트를 한 사람, 팔에 커다란 타투를 한 사람들과 독서모임을 하던 며칠 전 일이 기억이 난다. 나는 그곳에서 철저히 '이반'이었다. 조금은 신기한 경험이었다. 내가 그들과 나눌 수 있는 공통점이라고는 정신과 상담을 받았던 경험. 그것 하나뿐이었다. 그마저의 독서모임도 내게는 육아 때문에 허락되지 않아서 독서모임 멤버 중 가장 먼저 엉덩이를 뗄 수밖에 없었다. 그 모든 걸 다 이해해줄 것만 같은 사람들이라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 아쉬움들이 모여 나를 더 글을 쓰게 만들었다. 나는 그곳에서 더 확신할 수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이반'을 계속 글로 써 내려가고 싶다고. 


누구는 임신중절, 쇼트커트, 비혼으로 자신을 찾는다면 나는 임신, 정상가족, 기혼으로 내가 나인 것을 입증해보고 싶었다. 그 결은 다를지라도 우리가 향하는 방향은 같았다. 아이를 포기하는 사람. 아이를 위해 포기하는 사람. 아이도 나도 포기 못 하는 사람. 다 세상에 필요한 존재들이다. 내가 미처 상상하지 못하는 존재들이 다름 아닌 지구에 존재한다. 



더 이상은 세상이 부를 때만 소환되지 않을 것이라는 선언. 하루에 한 번씩은 그 선언을 하는 것 같다. 내가 나를 계속 소환함으로 나의 불행을 세상의 불행으로 만들고 싶었다. 아니, 이건 명백히 세상의 불행이다. 세상은 마치 우리의 불행은 우리가 자초한 것이며 우리끼리 해결해야만 하는 듯이 굴며 우리를 늘 필요할 때만 부른다. 세상의 뒤치다꺼리를 자진해서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그것을 보란 듯이 해내면서도 목소리를 내는 사람도 있다. 분명히 이 지구 안에 존재한다. 내가 원하는 것은 하나다. 없는 사람 취급당하지 않는 것. 그러니 세상아, 나의 이야기를 들어줘. 다양한 존재들을 상상하고 실현하는 세상이 되어라.

 

그렇게 오늘도 세상은 뒤치다꺼리 대신 은폐를 자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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