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서영 Sep 24. 2021

매미는 다 어디로 갔을까

둘째를 임신하고 이사를 열심히 알아보는 중이다. 우리 가족은 11평 1.5룸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다. 부동산을 직접 방문하며 알게 된 한 가지 절망적인 사실은 인터넷에 올라오는 대부분의 아파트 시세는 실제 매물의 가격과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족 간 거래라던지 허위매물이 아닐까 짐작해보지만 어느 지역을 가도 마찬가지다. 인터넷에 올라온 가격에 실제 매물 가격이 평균 1,2억이 더 높으니 어디에 하소연할지도 모르겠고 부동산에 갈 때마다 농락당하는 기분이다.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냐"는 전형적인 질문에 안 부려도 되는 괜한 자존심이 불쑥 튀어나와 입에 담기 무서운 금액을 부른다. 그렇게 짧은 상담을 끝으로 부동산 문을 열고 나오면 1,2억은 아주 우스운 돈이 된다. 얼마까지 대출할 수 있을까 알아보니 매매를 하려면 4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로 최대 9억까지 대출할 수 있는 모기지 대출이 있다고 한다. 40년, 9억. 정말 무서운 숫자들이 매년 정부로부터 새로운 부동산 정책이라며 갱신되어 발표되다가 또 어느 날은 덜컥 대출규제라는 이름으로 돈길을 막아버린다. 신혼 희망타운은 재작년엔 3억대, 작년엔 4억대였고, 올해 하반기는 5억대를 예상한다고 한다. 지금을 놓치면 가만히 있어도 매년 1억씩 손해를 보는 느낌이 든다.  


남편과 앉아 식사를 하며 부동산 이야기를 한다. "매매를 알아봐야 하지 않을까? 대출은 9억까지 가능하대." 세 살배기 딸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다. "매미?" 날씨가 더워지니 갑자기 들리기 시작한 매미소리. 무더운 여름밤, 아이는 자기 전에도 매미를 찾다 잠든다. 매미 보러 가자고 하면 신발장에서 혼자 신발을 꺼내 신고 문을 열어달라고 보챈다. 어떤 날은 어린이집 문 앞에서 매미 잡아달라고 보챈 적이 있는데, 매미를 잡는 시늉을 하는 아빠 모습을 오래도록 주시하다 들어간 적도 있다고 했다. 나무에 산다고 하는데 한 번도 실물을 본 적이 없는 매미. 아이는 정말이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평온한 주말 아침, 남편이 옷을 입으며 말한다. "집 보러 갈까?" 그럼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다. "가야지." 마음으로 이미 수십 번 이사를 포기했지만 남편이 집 보러 가자면 없던 힘이 생긴다. 지금 보다 나은 집에 살고 싶은 기대심보다는, 가난이라는 이름에 갇히기 싫은 마음이 더 큰 것 같다. 아이는 매미, 아내는 매매. 맴맴맴 양쪽에서 노래를 부르는터라 남편 머리 위로 별이 맴맴 돌고 있을 것이다.


부동산을 둘러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남편이 "이럴 바에 일 그만두고 국민임대 들어가는 게 낫겠다"라고 한다. 남편은 아무래도 이 억 소리 나는 투기장에 애초에 뛰어들기 싫은 눈치다. 나라고 좋아서 시작한 건 아니다. 다만 우리가 이렇게 고민하는 동안에도 집값은 오르고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는 게 무서울 뿐이다. "우리 외벌이여도 소득초과로 국민임대 못 들어가." 이렇게 받아치니 남편이 "우리한테 둘째가 있잖아"라고 말한다. 아, 맞다. 나 임신했지. 집을 보러 가기 시작한 진짜 이유. 둘째가 생겼으니 승산이 정말 있을지도 모르겠다 싶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갑자기 남편에게 화가 난다. 역시 내가 일을 그만두어야 하나. 오랜 대화 끝에 남편이 한숨 대신 한마디를 던진다. "우리 빼고 사람들 다 돈 많은가 봐."


거짓말처럼 매미 소리가 사라지고 가을이 왔다. 매미소리는 많이 들었는데 정작 진짜 매미는 올여름에도 보지 못 했다. 매미는 다 어디로 갔을까. 매미 찾는 시늉을 하다가 비가 쏟아질 것 같다고 거짓말하고 아이를 안고 집으로 향한다.   










이전 07화 조건 없는 사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