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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 레이크에서 낚시를 즐기다.

상처 받은 마음을 힐링받고 싶은 날

by 별빛

우린 매해 여름 한 달을 샌디에이고에서 보낸다.

골프선수인 아이들이 일 년간 준비한 대회가 매년 7월, 그곳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그 해, 우리가 지내던 칼튼 옥스 골프클럽 옆에는 제법 큰 호수가 있었다.

3박 4일간의 쉼 없이 이어지는 힘든 경기를 마친 그날, 우린 홀가분한 마음으로 미리 찜해두었던 산티 레이크로 향했다.



산티 레이크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잔잔하게 반짝이는 호수 위에는 귀여운 오리들이 동동 떠다니고,

커다란 나무들이 만들어준 그늘 아래는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아기들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평화로운 평일 한낮의 호숫가-

그 조용한 행복을 만끽하며, 물가를 따라 걷기도 하고, 그늘 아래 앉아 시원한 바람에 땀을 식히기도 하며 각자의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등을 맞대고 앉아 호수를 바라보는 귀여운 남매




낚시를 내내 벼르고 있었던 아들을 위해, 호숫가 낚시터에서 작은 낚싯대를 하나 사고, 낚시 펄밋도 끊었다.

주니어 용이 하루 $6로 그리 비싸지는 않다.

미국에선 대부분의 곳에서 낚시를 하기 위해 펄밋이 필요하다.

넓은 호숫가에 드문 드문 서서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들 사이에 아들도 서있다.

햇살을 받은 아들의 모습이 그림 속 풍경처럼 빛난다.



낚시 펄밋을 끊고 한적한 호숫가에서 낚시 중인 아들



뒤뚱뒤뚱 걸어 다니는 오리 떼들이 귀여워 먹이를 한 봉지 사서 나눠주니, 엄마 오리라도 된 마냥 오리들이 떼를 지어 따라온다. 한참을 깔깔 대며 오리와 놀다가, 사륜자전거를 빌려 큰 호숫가를 한 바퀴 돌기로 했다.

심플한 자전거를 빌렸어야 했나.... 그늘을 만들어 주는 노란 천막이 달린 안락해 보이는 사륜자전거는 그 무게 때문인지 페달을 돌리는 게 쉽지 않았다. 눈앞에 보이는 풍경은 너무 아름다운데, 그 풍경을 볼 겨를도 없이 온 힘을 다해 페달을 밟아야 했으니 말이다.

다행히 내리막길이 나와 한숨 돌릴 무렵, 눈앞엔 캠핑카들이 좍- 펼쳐진다.

물 위에 지어진 작은 오두막들도 보인다. 캠핑촌이다.




오리에게 먹이주는 딸.



나뭇가지에 끈으로 묶어 큰 천막을 치고, 그 아래 테이블과 의자를 만들어 앉아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주변엔 공을 가지고 뛰어노는 아이들이 있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보인다.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캠핑의 로망- 우리도 언제가 캠핑카를 빌려 꼭 다시 오자고 약속을 했다.



햇살이 길게 늘어지는 시간-

빛이 반사된 고요한 호숫가는 바쁘게 흘러가던 내 마음까지 평화롭게 만들어 준다.

일상의 모든 고민과 걱정에서 완벽히 자유로와진 순간-

멍하니 호수와 하늘이 맞닿은 먼 곳을 바라보고 앉아있자니,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이 무릉도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온갖 근심과 잡념들로 용솟음치던 내 마음이 그림 같은 호수를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잠잠해지며 치유되고 있었다. 세상 그 어떤 명약보다 더 좋은 건 바로 자연이 주는 힐링이 아닐까.



눈에 보이는 모든곳이 아름답다



나이를 들수록 자연이 좋아진다.

젊었을 땐 사람들과 어울려 핫한 곳에서 먹고 마시고 노는데 빠졌었는데, 지금은 멋진 경치를 보고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는 자연이 좋다.

나무 그늘 아래서 눈을 감고 느껴보는 보드라운 산들바람,

숲 속 한가운데서 코끝으로 느껴지는 풀냄새 가득한 촉촉한 공기,

싸늘한 아침 공기를 따뜻하게 데워주는 오렌지빛 햇살,

가슴속까지 시원하게 뚫어줄 것 같은 옷 깃을 가르고 꽂아 드는 차가운 밤바람,

몽글몽글 나지막이 뒤덮인 물안개 자욱한 솜사탕 같은 공기.

그 무엇 하나 소홀히 넘길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이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까지 호수에서 놀던 우리는 숙소로 돌아왔다.

골프장이 한눈에 들어오는 클럽하우스 야외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앉아, 별빛 아래서 맥주를 마셨다.

별이 반짝이는 밤이지만 아직 푸르름을 간직한 하늘을 지붕 삼아,

빨간 양념이 된 버펄로 윙을 안주로,

시원함이 목까지 차오르는 붉은빛의 레드 트롤리 생맥주를 마셨다.

쌉싸름한 IPA 가 아닌, 고소하고 캐러멜향이 나는 샌디에이고 레드 에일인 나의 최애 맥주 레드 트롤리.

지치고 힘든 날이면, 그날의 산티 레이크와 레드 트롤리가 한없이 그리워지곤 한다.




칼튼 옥스 클럽하우스에서 즐겨 마시던 맥주와 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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