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어릴 때 '냄새'라는 말이 싫었다.
좋지 않은 냄새는 '냄새'라 하고, 좋은 냄새는 '향기'나 '향내'라고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같이 놀던 친구가 "어디서 무슨 냄새 안 나?" 하면 가슴이 쿵, 내려앉았고
장마철이면 하수구에서 올라오는 시궁창 냄새에 코를 쥐었다.
그러나 맡으면 편안해지거나 행복해지는 냄새도 분명 있었다.
치이익-.
압력솥에서 김 빠질 때 나는 달큰하고 구수한 밥 냄새가 그랬고
매캐한 연기가 집 안을 너구리 소굴로 만들어도
바삭하게 구워진 고등어 냄새에 백이면 백 군침이 났다.
살면서 '나쁜 냄새'보다 '좋은 냄새'가 더 많다는 걸 알았다.
'좋은 냄새'를 맡기 위해 알게 모르게 노력도 했다.
갓 내린 커피의 냄새라든가, 방금 구운 빵의 냄새, 비 온 뒤의 풀숲 냄새 같은 걸 음미하기 위해
허용되는 범위 내에서 돈과 시간을 썼다.
흠-.
콧숨을 들이마시면 향긋한 커피 냄새, 빵 냄새, 풀숲 냄새가 비강을 가득 채운다.
몇초 안 되는 동안
좋은 냄새를 코안에 가득 가두면
기적처럼 행복했던 그때로 타임 슬립 된다.
이내 점령군처럼 쳐들어오는 기억, 기억들.
특정 냄새에 긍정 반응을 하든 부정 반응을 하든
사실 냄새에는 죄가 없다.
살면서 어떤 냄새는 내게 위험하고
또 어떤 냄새는 내게 위로임을 저 혼자 강화하고 있을 뿐.
어떤 이는 내게 유해하고
또 어떤 이는 무해함을 겪은 확률로써 저절로 알아 버린 것뿐.
냄새를 맡다 보면
인간 또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사는
동물이라는 사실에 안도하고 또 안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