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막내 외삼촌은 키도 크고 정말 잘생겼다. 탤런트로 치면 정보석 리즈 시절의 미모라고 해도 과하지 않을 정도. 흰 셔츠를 주로 입어서 얼굴이 더 희어 보인다. 외삼촌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함께 수원에 올라왔다. 가만있어도 주위가 환해지는 ‘잘생김’을 이제 자주 볼 수 있다. 아주 올라오셨단다. 나주에 있는 외갓집을 처분하고 큰누나가 사는 이 수원에 자리를 잡을 작정이란다. 외삼촌은 여자 친구도 있다. 아직 본 적은 없지만 외삼촌만큼이나 얼굴이 꽤 예쁠 것 같다.
삼성전자를 다니고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외삼촌이 사표를 냈다. 곧 통닭집을 한다고 한다. 그것도 아버지 양복점과 엄마 양품점 옆에 쪼르르 붙어 삼총사처럼 나란히. 와, 기름 냄새만 맡아도 황홀한 통닭을 매일매일 우리 엄마 아빠 가게 옆에서 튀기신다고! 그것도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통닭을?!
싹싹하고 훤칠한 20대 총각이 운영하는 ‘둥지통닭’은 전자 앞에서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평소에도 사람이 많았지만 삼성전자 월급날이면 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절임무와 맥주잔을 나르랴, 갓 튀겨진 통닭을 나르랴 눈썹 휘날리게 날아다니는 외삼촌이었지만 내 눈에 그 모습은 무척 즐거워 보였다. 그런 걸 신바람이라고 하나 보다 했다. 우리 동네는 삼성전자 동문을 마주 보며 양쪽으로 길게 양장점, 유리 가게, 지물포, 슈퍼, 식당, 튀김집, 분식점, 양품점, 양복점, 경양식점, 미용실, 다방, 철물점, 보세 옷 가게, 약국 등이 쭉 이어져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통닭집이 단연 많았다. 삼성통닭, 석촌통닭, 충북통닭, 아베크, 멕시카나, 처갓집양념통닭, 페리카나…. 훨씬 더 많았던 것 같은데 대충 기억나는 상호가 그 정도다. 그야말로 전자 앞 통닭집의 성지에서 ‘둥지통닭’은 점점 더 유명해졌다. 깔끔하고 잘생긴 총각이 하는 가게여서였을까. 외삼촌 가게는 앳된 얼굴의 언니들로 꽉꽉 들어 찼다. 언니들 월급날엔 우리 엄마 양품점도 밤늦게까지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 날은 저녁 대신 외삼촌네 통닭을 포장해 먹었다. 의자에 앉아 기다리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힐끔거리는 언니도 있었고, “외삼촌, 통닭 한 마리 튀겨 주세요.” 하는 소리를 듣고 내 자리로 와서 몇 살이냐는 둥, 너 참 귀엽다는 둥 다짜고짜 말을 거는 언니도 있었다. 나중엔 그렇게라도 외삼촌의 시선을 끌어 보려 애쓰는, 초면의 언니들이 더 귀엽다는 깜찍한 생각도 했다.
그렇게 잘되던 통닭집을 외삼촌이 왜 폐업한 건지 나는 지금도 알 수 없다. 닭 튀기는 기계가 며칠 삼촌 가게와 우리 집 안채의 중간 통로에 비스듬히 세워져 있던 기억만 얼핏 난다. 가게가 치워지고 안에 있던 집기들이 밖으로 나와 벌서듯 벌여져 있기도 했다. 나는 그 장면들을 여태껏 외삼촌의 죽음 직후로 기억하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떴기 때문으로 알았다. 수십 년이 흘러 엄마께 어렵게 물어보지 않았다면 ‘둥지통닭’의 폐업이 외삼촌의 교통사고 사망 이전이라는 사실을 끝내 몰랐을 것이다.
엄마가 안채에 들어가 밀린 집안일을 하는 동안 나는 양품점을 보고 있었다. 서너 시쯤 되었을까. 경찰복을 입은 두 남자가 가게로 들어왔다. 임진택 씨와 어떤 관계냐고 물었다. 우리 외삼촌이라고 했다.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말했다. 지금 엄마는 어디 계시냐고 물었다.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오늘 아침까지 얼굴 봤던 외삼촌이 죽었다니. 벌벌 떨렸다. 안채에 계신 엄마께 어떻게 전해야 할지 식은땀이 났다. 세상이 닫히고 있었다. 외삼촌과 살았던 세상이. 벌써 닫힌 걸까. 나는 믿을 수 없었다.
엄마를 다급히 불렀다. “엄마, 가게에 경찰이 왔어요. 외삼촌한테 무슨 일이 생겼데요…. 나와 보시래요.” 나는 그렇게밖에 외삼촌의 부음을 전할 수 없었다. 나쁜 예감에 사로잡힌 엄마는 가게로 뛰어가셨고 머지않아, “아이고, 진택아….” 하는 울부짖음이 들렸다.
그날은 몹시 더웠다. 8월 말복 즈음이었다. 스물아홉 살 잘생긴 진택이 삼촌이 곤지암에서 몇 톤 트럭을 들이받고 세상을 떠났다. 우리 삼남매는 너무 어려 외삼촌의 장례식장에 가지 못했고 삼총사인 양복점, 양품점, 둥지통닭은 며칠간 문을 닫았다. 소식을 듣고 우리의 끼니가 걱정된 은하슈퍼 아줌마는 그사이 너구리 라면을 끓여다 주기도 했다. 엄마 아빠가 집에 없는 그 며칠이 너무나 무서웠다. 외삼촌의 죽음보다 엄마 아빠마저 안 돌아오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더 했다. 그러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생각에 눈물이 줄줄 흘렀다.
외삼촌은 화장 후 청명산에 뿌려졌다고 한다.
외삼촌은 잘되던 통닭집을 처분하고 원양 어선을 타고 싶어 했다고 한다.
가족들의 반대에 부딪힌 외삼촌은 자동차 학원에서 운전 강사로 일하던 중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날, 승용차를 렌트해 볼일을 보러 갔다 돌아오는 길이었다고 한다.
1988년 8월 14일, 3학년 여름방학이 거의 끝나갈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