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달동네 재개발 딱지에서 시작해서 결혼 20년만에 강남 3채와 한강변 재개발까지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6살 아들 장가 밑천에 노후 준비까지 끝났다고 생각한지 3년만에 다 잃고, 다시 원점보다 못한 마이너스가 되었습니다. 미치고 환장하게 아까워서 몸의 병, 마음의 병을 얻었지만.이제야 비로소 집은 '사는것'이 아니라 '사는 곳' 임을 깨달습니다.
고통의 시간 속에서 얻은 성찰과 깨달음을 웃기는 글 속에 녹여 마시렵니다. 깨달음이 혈관을 타고 흘러 오롯이 양분이 되어 부디 저를 더 성장하게 해주길 바래봅니다.
이제 '봉천동 새댁'이 아닌 '분당 새댁'이 된 저는,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백화점의 식품관을 문닫기 직전 반값 반찬가게로 이용하고, 주말에는 도시락 싸가지고 중앙 공원과 율동 공원에 번갈아가며 돗자리 깔고 누워 책도 읽고 뒹굴거렸습니다. 퇴근한 남편과 다정하게 손잡고 탄천을 따라 달밤 산책도 하고,탄천에 새로 둥지를 튼 오리 가족들에게 한 마리씩 이름을 지어주기도 하며 '자연친화적인 시티걸'이자 완벽한 '분당리안' 이 되었습니다.새로 구한 직장도 집과 가까운 곳이어서 출퇴근도 편했고, 모든 것이 봉천동 언덕 위의 집과는 비교할 수 없이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렇게 '천당 아래 분당' 라이프를 만끽했죠.
때마침 2005년 무렵 시작한 부동산 상승기와 맞물려, 분당이 강남과 더불어 '버블세븐' 지역 중 하나로 각광받으며 순식간에 집값이 제가 샀던 값의 배로 치솟았습니다. 비록 서울 외곽이었지만 모든 인프라가 잘 갖춰진 신도시 분당의 집값이 서울의 구도심인 봉천동보다 훨씬 비싼 가격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제 더이상 철딱서니 없는 싸가지가 아닌, '복덩이 새아기'가 되어 친정과 시댁에 어깨를 쫙 펼수 있었던 것은 물론 남편에게도 큰소리를 땅땅 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거봐! 내 말이 맞지?"
그 무렵,
어린 시절 만나 친언니같은 지인이, 일산의 한 건물의 2층 500평 전체를 공매로 낙찰을 받으며, 제가 투자한 지분만큼 이익을 나누는 것을 제안했어요. 저는 공매가 뭔지.. 경매와 뭐가 다른지는 그때도 몰랐고 지금도 전혀 모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제 지인이 상당한 부동산 고수이거나 혹은 사기꾼 둘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실 거예요. 네, 이해합니다. 제 얘기가 아니라 남의 얘기를 듣는 거였다면, 분명히 저부터도 그렇게 생각했을 거니까요.
그런데, 그 언니는 자기 분야에서 평생을 갈고 닦은 내공이 뒷받침된 탄탄한 실력을 바탕으로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고 일을 성공시켜 돈을 좀 많이 모았을 뿐, 부동산, 주식은 고사하고 은행가서 공과금 내는 것도 잘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마, 제게 그렇게 제안한 것은 친동생같이 생각하는 저와 좋은 것을 나누고 싶어하는 진심 어린 마음이었을 거예요. 정말 좋은 기회인데 나 혼자 돈 벌순 없지 않겠냐며 여유자금이 있으면 넣어보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언니가 자본이 많은 것을 알고 주위에서 살살 꼬드겼나 봅니다. ‘군인 돈과 선생 돈은 눈 먼 돈’이라 하잖아요. 뭐,그런 비슷한 경우였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매일 밤을 새워가며, ‘걸어다니는 종합병원’ 이라는 소릴 들을 만큼 몸을 혹사해가며, 평생을 자신의 시간과 노력과 사고력과 노동력을 갈아넣어 돈을 버는 방법 외에 다른 재테크 방법을 몰랐던 언니가 은행에 쌓아놓은 돈은, 남의 돈을 밑천으로 제 잇속 챙기기에만 혈안이 되어있는 사기꾼들에게, 길고양이가 득실득실 돌아다니는 어물전 앞에 널어놓은 싱싱한 생선들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물정 모르는 또띠’가 그물에 덥석 걸린거죠....그리고 그 ‘또띠’는 자신보다 더한 ‘또띠’를 생각해준답시고 혼자는 미안하니 같이 돈 벌자 한거고... 저는 그 마음 씀에 고마워하며 감사하다 은혜 잊지 않겠다 했습니다. 언니는 평생을 밤잠 못 이루고 번 돈의 상당 부분을 투자했고, 여윳돈은 없었지만 욕심이 생긴 저는 서현동 집을 담보로 추가 대출을 받았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출받으면 큰일나는 줄 알고 벌벌 떨었는데, 한번이 어렵지 두 번째 대출은 쉽게 마음 먹어지더라구요. 그동안 집값도 많이 올라 대출 한도도 늘어서 처음 받았던 금액보다도 두배 이상의 금액이 승인되었어요. 저에게는 친언니와 진배없는 분이어서 저는 계약서 한 장 쓰지 않고 언니에게 입금을 하고 언니는 제 돈을 합쳐서 잔금을 치루었습니다. 그래봤자, 그 건물의 건평이 워낙 커서 제 돈은 언니의 투자금에 비하면 전체 건물의 창문 한 개 정도밖에 안되는 금액이었어요. 물론 저한테는 엄청나게 큰 돈이었지만요
암튼 그렇게..... 큰 또띠, 작은 또띠가 사이좋게 나란히 제 발로 호랑이 아갈머리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참.... 무모하고 어리석은 행동이었죠.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만원 한장 대출받으면 큰일나는 줄 알았던 어린 새댁이 멋모르고 산 집이 다락같이 오르자 시쳇말로 간이 배 밖으로 나왔습니다.두 번째 받은 대출 이자는 상가에서 나오는 월세로 충당할 계획이어서 그다지 무리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고, 이 일을 자기 일처럼 발벗고 나선 부동산 사장은 (알고보니 컨설팅 업체와 한패였던) 몇 달 월세 받다가 제값 받고 팔아줄 테니, 돈 벌 준비하시고 그때 인센티브 수수료나 좀 넉넉하게 주시면 된다고 '나만 믿으시라' 호언장담을 했습니다.
정확히 한달 후, 2층을 통으로 임대해서 사용 중이던 회사가 계약이 종료되었다면서 이사를 나가고, 광활한 500평의 2층 전체는 휑하니...공실이 되었습니다. 언니에게 컨설팅을 해준 그들은 분명히 이미 알고 있었을 거예요. 그러나, 사람을 의심할 줄 모르는 언니는 장기 임대라는 그들의 말만 믿고 투자를 결심했고, 낙찰을 성공시켜준 댓가로 그들은 이미 성공 보수라는 것도 챙겨갔다 했습니다.
뭘... 어디서부터 어찌 해야하는 지도 모른 채, 언니랑 저랑 생업을 팽개치고 그 지역 부동산을 다 돌아다니며 임대를 놓기 위해 애를 썼지만, 500평을 통으로 쓰겠다는 업체를 하루 아침에 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고, 하나씩 임대를 하자니 1층도 아니고 2층, 칸막이조차 안되어있는 그 넓은 텅빈 공간에 몇 개의 업체를 어떤 구획으로 배치하여 넣어야 할지 부동산에서조차 조언을 해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언니는 사비를 털어 칸막이 공사를 하고 핸드폰 대리점, 자동차 용품 회사, 법무사 사무실,인쇄업체 사무실, 사무용품 전문 판매점 등...그야말로 테마도 컨셉도 없이 중구난방으로 간신히 몇 개의 임대를 맞추었지만 인테리어 비용도 충당하지 못할 만큼 상황은 악화일로였어요.
결국... 언니는 수십억에 달하는 큰 손해를 보고 말았고, 저 역시 별 수 있나요. 다시는 만져보지 못할, 이미 훨훨 날아가 버린 돈의 어마어마한 이자만 따박따박 나가게 되었습니다. 기존에 받았던 대출 이자까지 더해서 제가 새로 구한 직장의 월급은 거의 이자를 내느라 통장을 스쳐 지나기만 할 뿐이었죠.
(아.. 쓰다보니 20년이 지난 지금 또 같은 상황이네요..아 도대체 인간의 어리석음의 끝은 어디일까요.급 우울해집니다...ㅠㅠ)
혹시 궁금해하실까봐 미리 말씀드리면....그 언니와는 아직도 잘 지냅니다. 괜히 그런 제안을 해가지고 저를 이 지경에 몰아넣었다고 잠시 원망도 했지만, 생각해보니... 남의 등에 업혀 편히 돈 벌 욕심에 제가 화를 자초한 거지, 언니 잘못은 아니었어요. 죄가 있다면....세상 제일 똑똑한 줄 알았던 언니가 그리도 ‘왕맹추’였음을 몰라본 제 안목이라고 해 두겠습니다.ㅠㅠ
이미 날아가버린 것이 분명한 돈의 어마어마한 이자를 내며 밤잠을 못 이루고 우울증이 올 만큼 정신이 피폐해져갔습니다. 집 사면서 받은 대출 이자를 갚을 때는 힘든 줄도 모르고 기분이 좋았는데, 벌어도 벌어도 밑빠진 독에 물붓기다 생각하니 일을 해도 신나지 않고 남편과도 싸우는 일이 잦아졌어요.
이대로 가다가는 결혼 생활까지 위기가 올 것 같아서 결국 저희는 그토록 좋아했던 서현동 집을 팔기로 했습니다.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나마 집값이 많이 올라 빚을 갚아도 손해보는 것은 아니니 집값이 좀 덜 올랐다고 생각하자고, 남편과 애써 좋게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렇게 부동산에 집을 내놓았는데, 직전 최고가에서 몇천만원 빠지긴 했지만 아직 상승기의 온도가 식지는 않았던 때였던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매수콜이 왔어요.그때 까치밥에 미련두지 말고 매도를 했다면 집이 팔렸을텐데, 천만원을 더 받겠다고 튕기다가 일이 어그러지고 말았어요. 그 매수콜을 마지막으로.....자고나면 집값이 미친듯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습니다.
천당 밑이라던 분당은 ‘물거품이 되어버린 버블’ 이라 칭해졌고 불과 1-2년전 한 껏 부풀었던 저의 마음도 터져버린 비누방울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최고가에서 거의 2억 가까이 내려가는 것을 보니 억울해서 집을 못 팔겠더라구요. 20여년 전의 일이니 지금 돈의 가치로 환산해보면 폭락의 가파름에 대한 체감은 훨씬 더 심했을 겁니다. 생각다 못해... 서현동 집을 전세를 주기로 했습니다.비록 집값은 떨어졌지만 거주 환경이 워낙 좋고 저희 집이 수리를 이쁘게 했다고 부동산에 소문이 나서 전세가는 오히려 올랐거든요.
집을 보러 오신 사모님은 예닐곱살 쯤 된 딸을 데리고 왔었는데 아이가 우리집 거실을 뛰어다니며 공주님 집 같다고 좋아하던 기억이 나네요. 사모님이 제게,
“아니 이렇게 예쁜 집을 왜 전세를 주세요?”
하시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아서 애를 먹었습니다. 그 돈으로 대출금을 갚고 저희는 오피스텔 월세로 이사를 갔어요. 그렇게... 싱크대 손잡이 하나하나까지 구석구석 애정 가득했던 서현동 집에서 채 2년을 못살고 원룸 오피스텔 월세살이 신세가 되었습니다.
일단 빚이 없어지니 숨통이 트이더라구요. 내 집 가진 ‘사모님’에서 하루 아침에 ‘월세사는 여자’가 되었으니 그 처지를 생각하면 처량맞기 그지없는데....신기하게도 그때는 별로 그런 생각이 안 들었어요.
어떻든 나는 서현동에 초록 정원이 예쁜 우리집이 있다!! 나는 엄연한 집주인이다! 이런 마인드였던 것 같아요. 비록 들어가 살지는 못해도, 좋은 곳에 내 집이 있다는 안정감이 무엇인지 그때 처음 느꼈습니다. 전문용어로 하면, ‘투자와 실거주를 분리’할 줄 알게 되었다고 할까요. 그리고, 이 최초의 ‘분리의 깨달음’은 그 후 몇 년간 저의 성공적인 재테크의 기본 원칙이 되어주었고,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것을 다 잃고 결국 원점보다 못한 마이너스로 절 다시 추락시킨 '그 일'의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신혼 살림을 다 버리다시피 하고 좁은 오피스텔로 이사온 저희 부부는 복닥복닥 지지고 볶으며, 서로 그만 싸우고, 상처주지 말고, 딴 생각하지도 말고 다시 돈을 모으자며 둘 다 일에만 매진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날아간 돈’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아 홧병이 날 것 같았거든요.
그리고 약 2년여가 흘렀습니다.
초여름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주말 오후, 교외로 드라이브겸 나선 길에 들른 숯가마 찜질방에서 오랜만에 데이트를 즐기고 있는데, 뜨거운 숯가마 안에 들고 들어간 전화기가 울리는 거예요. 서현동 부동산 사장님이었습니다. 다급한 목소리로 꼭 사겠다는 매수 손님이 있으니 지금 나오라는 거였습니다.
집을 내놓은지 일년도 훨씬 넘게 지나 있어서 잊고 있다시피 했는데, 그러는 동안 딱히 매물을 거둬들인 건 아니어서 사장님 리스트에 남아있었나 봅니다.
왠지 모르게 꼭! 지금 팔아야 한다 강한 느낌에 남편이랑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찜질복을 벗어던지고 땀범벅이 된 채로 샤워도 안하고 그 길로 분당으로 달렸습니다.
부동산에 들어서니,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서 오셨다는 노부부가 앉아계셨어요.
사장님이 제시한 가격은 약 2년 전 저희가 천만원 더 받겠다고 튕겼던 금액에서 2천만원 빠진 금액이었습니다. 무슨 똥배짱이었는지, 멀리서 오셨는데 100만원만 깎아달라는 노부부와 사장님의 부탁도 칼같이 거절하고 (물론 속으론 엄청 쫄았어요....) 젊은 부부가 엄청 센 척하며, '싫으면 안하시면 됩니다.' 자세로 일관했습니다.
좁은 사무실 안에서 손님용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노부부는 안쪽 사장님 책상 앞에, 저희는 문쪽 실장님 책상 앞에 앉지도 않고 선 채로 한치도 양보를 안하고 팽팽히 대치 상태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 거래의 성사 여부에 오늘 저녁 밥상이 풀떼기냐 소고기냐가 결정될 사장님과 실장님이 애가 타서 양쪽을 넘나들며 읍소하고 달래기를 어언 한시간 쯤 했을까요.
젊은 사람들이 어지간하다며, 멀리 서울 서쪽 끝에서 온 노인네들 기름값도 안빼줄거냐. 볼멘 소릴 이어가시던 사모님과는 달리, 눈을 지그시 감은 채 한마디 말씀없던 남편분이 조용히 아내 쪽을 보고 말씀하셨습니다.
“갑시다.그냥.”
문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시는 노신사분을 보며 순간 머리가 복잡해졌습니다. 지금이라도 그냥 원하는대로 빼드릴까.지난번처럼 이대로 또 어긋나서 한참동안 안 팔리면 어떡하지.. 아냐, 이제까지 안된다고 했는데 자존심이 있지.안 팔리면 말지 뭐...돈 모아서 다시 초록 정원 우리집에 들어와 살도록 더 일을 많이 하면 되지 뭐. 마음 속에 두명의 제가 갈피를 못잡고 우왕좌왕 정신이 없었어요.
노신사는 마침내 문앞에 와서 문을 열고 나갔고, '오늘은 텃나보다.' 난감하고도 실망스런 기색의 사장님은 바지에 똥 싼 폼으로 엉거주춤 선 채 사모님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때였어요.
“이봐요. 새댁....”
싸하게 굳은 표정의 사모님이 테이블 건너편에 있는 제게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과연 이 거래는 무사히 되었을까요? 100만원 때문에 이 계약은 또 어그러지고 말았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