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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lvia Apr 10. 2021

10.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더라

몰랐지만 이미 우리는 알고 있었던 사이

우리 둘만의 첫 데이트 후, 내 마음은 난리가 났다.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었다. 



소개팅에서 본 강렬한 첫인상의 그가 별똥별이라 생각했지만 그것이 그저 떨어지고 지는 별이 아니라 빅뱅이라는 걸 알았을 때, 그리고 그 빅뱅을 통해서 난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걸 알았을 때, 내 마음은 생전 느껴보진 감정으로 요동치고 있었다. 


단순히 새로운 만남에 설레는 감정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나를 판단하지 않고 내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들어줬을 때 느껴지는 자유였다. 천근만근이었던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그런 경험은 태어나서 한 번도 해보진 못한 경험이었다. 


내 과거와 가족 얘기가 불편하고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을 텐데 이 남자는 전혀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가족 이야기를 꺼내며 동생에 대해 얘기를 하기 시작하니 이 사람은 이렇게 얘기했다. 


"인격장애를 겪고 있는 동생이 가장 힘들겠다. I feel sorry for that guy."


멍...


가족 중에 누군가가 인격장애를 겪고 있다는 것 자체를 말하는 것이 항상 조심스러웠다. 정신적 질병에 대해 사회 인식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정신적 장애가 결코 다른 병이나 장애처럼 쉽게 이해되고 받아들여지는 게 아니었으니까. 가족 중에 한 사람이 장애를 겪고 있다는 건 그 가족에게 차마 말할 수 없는 큰 짐과 상처를 준다. 상담을 받으며 치료하고 치유를 해야 하는데 상담받는다는 것 자체도 거리낌이 있었다. 상담을 받는다는 소리 자체가 '약간 이상한 사람, 쟤는 피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편견을 심어줄 거 같아 무서워 더 달아나고 숨기려고 했었다. 


나와 우리 가족이 이상하게 보일까 무서워 이 부분은 절친인 친구에게조차 하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았지만 그들의 시선과 원하지 않은 판단을 받을 거란 생각은 내가 나를 못 받아들이게 한 요소이기도 했다. 이러나저러나 내 가족인데, 그리고 이건 내가 평생 가지고 가야 할 '나'라는 사람의 한 부분인데 이게 못 받아진다면 난 어떡하라는 거지.. 그 누구에게도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모르는 이야기였고 부끄럽지만 다른 사람의 시선이 두려워 많이 숨기기도 했던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래서 더 답답함과 불안감이 커져가기만 했다. 믿었던 전 남친이 헤어져야 하는 이유로 동생이 부담된다면서 떠났기에 더더욱 숨기고 싶어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어느 별에서 떨어졌는지 모르는 이 소개팅남은 첫 데이트에 폭포처럼 쏟아지는 나의 세세한 신상정보에 대해 그건 아무 이야기도 아니라는 듯 들어주며 오히려 장애를 겪고 있는 동생 편에서 그를 위로하는 소리를 하는 거다. 그걸 겪고 있을 동생은 얼마나 더 힘들겠냐며 내가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관점을 보여주는데 머리를 제대로 한방 맞은 느낌이었다. 


아니, 대체, 너 뭐니? 

그동안 난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지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는데 소개팅남은 오히려 이 장애를 겪고 있을 내 동생에게 더 집중을 했다. 부담스럽다며 도망가도 모자랄 판에 나와 내 동생, 그리고 우리 가족까지 이해해 주고 있는 것이었다. 


소개팅남을 통해서 마음의 청소를 단단히 하고 나니 내가 가지고 있었던 두려움과 혼란스러움이 한순간에 싹 사라지고 그 자리엔 태어나 한 번도 느끼지 못한 자유로움이라는 새싹이 빠르게 자라는 게 느껴졌다. 누군가가 나를 나로 받아들인다는 건 이토록 강한 힘이 있는 거구나. 단 한 번의 만남을 통해서, 단지 몇 시간의 대화로만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마법에 걸린 것처럼 나는 이 사람에게 더 매료되었고 만나서 더 얘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강렬하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오글거리는 표현이지만 정말 진심으로 내 마음은 찐! 불이 훨훨 타오르고 있었다.) 



내 마음은 이렇게 요동치는데.. 이상하게도 소개팅남으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야말로 깜깜 무소식. 나는 너 너무 만나고 싶은데 넌 아니니? 가방을 까먹을 정도로 나와의 대화에 집중을 했으면서 왜 연락이 없니? 응? 그럼 뭐, 어쩔 수 없지. 내가 먼저 연락을 하는 수밖에 ㅎㅎ 여자가 애프터를 기다려야 한다는 그런 소리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난 내 마음 가는 데로 할 테다! 


직진녀 답게 그 다음날 그에게 문자를 보냈다. 



"어제 내 얘기 들어줘서 너무 고마웠어. 이번 주말에 너가 시간이 괜찮다면 한 번 더 만나고 싶은데.. 어때?" 


"응! 그래! 만나자~" 



뭐야..

이렇게 흔쾌히 오케이 할 거면서 왜 먼저 연락을 안 했대. 

참 나.. 


어쨌거나.

누가 먼저 애프터를 신청한 게 뭐가 중요한가. 난 내 마음이 하라는 대로 하고 있는데. 

그와의 만남을 기다리는 그 일주일은 말도 못 하는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렇게 그와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 두 번째 데이트를 했다.


일주일 만에 만난 그의 모습에 반가웠고 또 설레었다. 비가 그렇게 심하게 내리지 않아 같이 우산을 쓰고 온타리오 호수를 보며 하버 프론트를 걷기 시작했다. 무슨 말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생각을 하지도 않아도 되었다. 머릿속에 그냥 떠오르는 말을 하기 시작하면 그것으로 시작해서 대화는 알아서 술술 풀려나갔다. 


대화를 하던 중 내 중학교 시절에 대해 잠깐 얘기를 하게 되었다. 우리 가족이 처음 이민 왔을 때 Lake Shore에 한 달 정도 산 적이 있는데 아침마다 일어나서 보던 호수의 풍경이 아직도 눈에 그려진다며 내가 잠시 다니던 학교 얘기를 했다. 캐나다 와서 처음 다닌 학교라서 그런지 비록 짧았지만 그 학교가 참 인상 깊게 남아있다고 얘기를 했더니 걸음을 멈추는 소개팅 남.



"응?!?! 뭐?!?! 그 학교?? 나 거기 다녔었는데??" 


"왓!?!?!" 


"너 얼마 동안 있었던 거야?"


"나 6학년 봄 학기 한 달 정도 다녔지. 내 담임선생님 Ms. LePage였는데.."


"OMG! Are you serious? She was my Science teacher!!!"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그러니까..

우리는 아주 잠시나마..

같은 학교를 다녔던 것이다.

나는 6학년, 그는 8학년. 


이 말을 듣는데 내 머릿속이 온통 흔들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몰랐던 사이에 우리는 이미 알고있던 사이인 거야?





캐나다 오자마자 다닌 첫 학교가 어떻게 너가 다녔던 학교인 거냐고. 

게다가 내 담임 선생님이 너 과학 선생님이었다면 분명 우리 반에 너가 들어왔을 텐데.. 내가 우리 반을 나올 때 분명 너네 반이 복도에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을 텐데.. 


우리는 어떻게든 스치긴 했을 거란 생각이 드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소름이 돋았다. 


물론 우리는 서로에 대한 기억이 전. 혀. 없다. 


내 기억을 샅샅이 뒤져보아도 그 학교에 한국 사람이라고는, 아니 동양 사람이라고는, 통역을 해주던 한국인 2세 언니밖에 없었다. 내가 처음 학교 왔을 때, 영어를 한마디도 못한다는 걸 듣고는 오피스에서 한국 학생을 찾았고 그나마 한국말을 좀 할 줄 알았던 그 언니가 내 통역사가 되어주었다. 


만약 지금의 내 남편이 한국말을 좀 더 잘 했었다면 내가 학교 간 첫날, 오피스에 나타난 게 그였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됐을까? 지금의 우리가 있을 수 있을까?  


이 얘기를 서로 하면서 우리 둘 다 너무 놀라고 너무 신기해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대학교 얘기까지 나왔다. 우리 둘 다 유티를 다녔으니 어떻게든 한 번쯤은 스쳐 지나가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심에 내 대학생활에 대해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난 학교 다니면서 Innis College에 있는 카페테리아를 종종 갔었다. 영화전공하는 학생들이 많이 있는 곳이었는데 영화에 'ㅇ' 자도 관심이 없는 내가 그곳에 간 건 순전히 카페테리아 음식이 싸고 맛있었기 때문이었다. 남미 가족이 운영하는 작은 카페테리아이었는데 거기 오렌지 주스와 커피, 그리고 부리또가 그렇게 맛있었다. 그 가족들의 서비스도 너무나 친절해서 종종 찾던 곳이었다. 


이 이야기를 하니 소개팅남이 또 놀란다. 알고 보니 영화를 전공한 그는 거기서 아예 대학 내내 살았다는 것이었다. 카페테리아 뒤에 위치한 영화과 학생회가 있었던 곳이 자기 집 들락날락하듯 매일같이 왔었던 곳이라면서. 


진짜?

나 거기 적어도 일주일에 3번은 갔는데? 

전 남친이랑 데이트 겸 공부도 했던 곳이 바로 거기인데?!

그럼 우리 정말 마주친 적도 있었다는 소리야?!


물론 이 시기도 그전과 마찬가지로 서로에 대한 기억은 전. 혀. 없다. 


그야말로 제로. 

빵.

0. 


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는 이미 몇 번이고, 수십 번이고 지나쳤을 생각을 하니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영화의 한 장면이 머릿속을 스치듯 지나갔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소리가 너무나도 가슴에 와닿는 순간이었다. 


넌 내 운명이구나.

널 처음 만났을 때 내가 느꼈던 그 감정은 틀린 게 아니었구나.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난 그에게 이미 연결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운명이란 걸 믿게 하기에 충분했다. 



첫눈에 반했다고 생각했는데 내 무의식은 이 사람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니 예전 류시화 시집에서 읽은 "첫눈에 반한 사랑"이라는 시가 떠올랐다. 




첫눈에 반한 사랑

- 비슬라바 쉼보스카 - 



그들은 둘 다 믿고 있다.

갑작스런 열정이 자신들을 묶어 주었다고.

그런 확신은 아름답다.

하지만 약간의 의심은 더 아름답다. 


그들은 확신한다.

전에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기에 

그들 사이에 아무런 일도 없었다고. 

그러나 거리에서, 계단에서, 복도에서 들었던 말들은 무엇이었는가. 

그들은 수만 번 서로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다.

정말로 기억하지 못하는가.

어느 회전문에서 

얼굴을 마주쳤던 순간을.

군중 속에서 '미안합니다'하고 중얼거렸던 소리를. 

수화기 속에서 들리던 '전화 잘못 거셨는데요' 하는 무뚝뚝한 음성을.

나는 대답을 알고 있으니, 

그들은 정녕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은 놀라게 되리라.

우연이 그토록 여러 해 동안이나 

그들을 데리고 장난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면.

그들의 만남이 운명이 되기에는

아직 준비를 갖추지 못해 

우연은 그들을 가까이 끌어당기기도 하고, 떨어뜨리기도 했다. 

그들의 길을 가로막기도 하고

웃음을 참으며

훨씬 더 멀어지게도 만들었다. 


비록 두 사람이 읽지는 못했으나

수많은 암시와 신호가 있었다.

아마도 3년전,

또는 바로 지난 화요일,

나뭇잎 하나 펄럭이며 

한사람의 어깨에서 또 한 사람의 어깨로 떨어지지 않았던가. 

한 사람이 잃어버린 것을 다른 사람이 주웠었다.

누가 알겠는가, 어쩌면 그것이 

유년 시절의 덤불 속으로 사라졌던 공일지도. 


문 손잡이와 초인종 위

한 사람이 방금 스쳐간 자리를 

다른 사람이 스쳐가기도 했다. 

맡겨 놓은 여행 가방이 나란히 서 있기도 했다. 

어느 날 밤, 어쩌면, 같은 꿈을 꾸다가

망각 속에 깨어났을지도 모른다. 


모든 시작은

결국에는 다만 계속일 뿐.

운명의 책은

언제나 중간에서부터 펼쳐지는 것을.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시집 중에서. 





세상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일들이 그들의 시간의 맞춰, 자연의 법칙을 따라 알아서 일어나고 있었다.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모르는 우리 둘의 인연의 끈은 신기하게도 한 번도 끊어진 적이 없었다. 시간이 장난이라도 하듯, 만날 듯 만나지 못했던 우리 둘은 충분한 시간이 흐른 뒤, 아니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흘러야 할 만큼의 시간이 흐른 뒤, 결국 만났다.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그날 

나는 

내가 있어야 할 곳에, 

그는 

그가 있어야 할 곳에 있었고, 


우리는 

우리가 만나야 할 곳에,

만나야 할 시간에, 

서로를 마주 보고 서 있었다. 

마치 오래전 해놓은 약속을 지키기라도 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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