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시작
고통은 행복으로부터 시작되는 아이러니
한 남자와 한 여자는 대학교 생활 중 자신의 미래를 위협할 수 있는 사회적 문제에 저항하기 위한 운동에 참여한다. 두 사람이 느끼는 위기감은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한 사람은 굉장히 적극적으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주도적인 노력을 기울였고 한 사람은 소극적이었지만 애써 앞장선 사람들이 다져놓은 토대 위에서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다. 문제 해결을 위한 회의가 자주 개최되었고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와 정부에 대한 분노를 쏟아냈다. 학생의 입장으로 신분의 한계가 있었지만 어떻게 해야 바람직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평화적인 해결 방법으로는 거대한 조직을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문제를 직면한 사람들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고 다소 과격한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렸다. 모두가 문제 상황의 모순을 일반인들에게 홍보하여 변화를 일으켜보자는 노력이 가져다주는 초라한 결과에 지쳐가고 있었다. 그리하여 강의를 거부하자는 이야기를 거론하기 시작했고 문제 상황을 옹호하는 교수들을 미워했다. 특히 학생들에게는 정책을 돌이키긴 어려우니 성실하게 강의를 듣고 학생의 본분을 다하라는 대학총장의 이야기는 학생들을 분노케 했다. 그리하여 학생투표를 통해 수업거부가 이루어지게 되었고 총장실까지 점거하여 농성을 벌이는 결과가 벌어졌다. 두 사람도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평화적 방법이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기 때문에 과격한 방법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많은 교수들도 사회적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있었기에 학생들의 입장을 이해하였지만 그렇다고 마냥 학생들이 요구하는 것을 다 들어줄 수도 없었다. 강경한 교수들을 시작으로 강의가 속속 진행되게 되었고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었기에 일정이 다소 늦춰졌지만 모든 강의가 정상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사회적 문제에 큰 의미를 갖지 못하거나 관심이 없었던 학생들이 강의에 참석하게 되었고 낙제나 퇴학 등의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그동안 견고하게 쌓아 이어져갈 것 같던 문제 해결의 노력이 속절없이 무너졌다. 두 사람도 이내 평범한 일상으로 되돌아갔다. 마음 한편에 실망감을 채웠지만 그조차도 조금씩 사라지며 현실에 적응했다.
학생들은 어려운 과정을 함께 겪으며 논쟁과 문제 해결을 위한 생활만 한 것은 아니었다. 술도 마셨고 한탄스러운 현실에 대한 노래도 불렀으며 고통 속에서도 청춘의 삶을 살았다. 사랑을 하고 연애도 했으며 자신의 미래를 위한 공부도 하고 다양한 동아리에서 취미활동도 이어갔다. 비록 사회적 문제에 대한 저항 중이었지만 엄연하게도 그들은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평범한 일상을 향한 갈증도 쌓였다. 문제가 원하던 방향으로 해결되진 않았지만 상황이 종료된 후 학생들은 일상의 갈증을 해소하기 바빴다. 그래서 해소되지 못한 문제의 상황을 쉽게 받아들이고 이내 잊었다.
두 사람도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며 상황을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어두운 이야기만 주고받은 것은 아니었다. 미래의 희망도 이야기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과거의 안타까움보다는 미래의 희망을 더 많이 이야기했고 나중에는 눈앞에 놓인 현실적 이야기를 가득 나누며 대학 생활을 끝맺었다. 함께 보낸 시간에 동지애를 느꼈고 졸업 후에도 여럿이 모여 이야기꽃을 피울 때 두 사람도 그 자리에 있었다.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는 와중에도 가끔씩 만나서 술로, 커피로, 대화로 일상의 피로를 풀었다. 시간이 흐르고 두 사람은 꽤 오랜 시간 얼굴을 보지 않았고 이 삼 년에 한 번씩 서로의 안부만 물으며 각자의 삶을 살았다.
조금 더 시간이 흘러 두 사람이 우연히 다시 만났을 때, 두 사람 앞으로 펼쳐질 고통의 씨앗이 싹텄다. 그것은 사랑이었고 행복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