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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라는 착각

우리는 어른인가?

by 타조

기어코 오고야 말았다. 3월의 봄이. 손끝과 귀를 아리게 스치고 매섭게 목을 훑던, 그래서 장갑과 모자, 목도리를 강요하고 옷깃을 세우도록 몰아치던 겨울의 바람이 이토록 온화해지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겨울이 맹위를 떨칠 것 같던 2월에도 햇살만큼은 따뜻했다. 몸을 훑는 온화한 바람의 손길뿐만 아니라 길거리에서도 봄을 느낄 수 있었다. 모든 방향의 신호가 한꺼번에 바뀌어 동시에 초록색이 되는 교차로는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얼마 전까지 짙은 색의 두꺼운 외투로 온몸을 꽁꽁 감싼 한겨울 옷차림의 사람들은 3월의 어느 날 한결 가벼워진 옷차림으로 신호를 기다렸다. 도심에서의 봄은 꽃이나 새싹 같은 자연물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느껴졌다. 그리고 본격적인 봄을 알리는 존재가 또 있었으니...


아침의 분주한 사람들 사이에 가방을 메고 등교하는 학생들이 보였다. 파스텔톤과 원색이 교집합 된 귀엽고 앙증맞은 어린 초등학생들이 둘셋 모여 재잘거렸고 교복을 입은 중고등학생들은 그들만의 싱그러움을 물씬 풍겼다. 학생들을 통해 느껴지는 봄은 생명의 태동을 유발하는 포근함이자 회색빛 도시에 색채를 더하는 에너지였다. 아침의 추위에 몸을 웅크리고 경직되었던 나도 아이들의 밝은 에너지 덕분에 조금은 부드럽고 경쾌하게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아이들이 없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때로는 진지하고 차분하며 이성적인 세상을 이상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이들의 순수함과 다소 정제되지 않은 에너지의 분출, 기분에 따라 움직이는 가벼움이 우리의 세상에 신선함을 안겨준다고 느낀다. 어른보다 불완전한 아이들의 생각과 행동을 귀엽게 봐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어서 이렇게 느끼는 것 같기도 하다. 때로는 아이들의 마음으로 살고 싶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어른이란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을 일컫는다. 우리 모두는 자연스럽게 성장하고 청소년기의 후반부에 다다르면 다 자란 사람으로서 어른이 된다. 사회는 우리가 어른이 되었음을 매우 기쁘게 반기는데 그중 하나가 어른의 증거물인 주민등록증이다. 주민등록증이 발급되면 이전까지 하지 못하게 제한되었던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운전면허를 따서 운전할 수 있고 우리 지역과 우리나라의 대표도 뽑을 수 있다. 술과 담배를 자유롭게 마시고 즐길 수 있으며 보호자의 동의 없이 결혼도 할 수 있다.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대한의 자유를 얻지만 동시에 모든 일에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는 짐도 지게 된다.


스스로의 경험으로 목격하거나 매체를 통해 접한 인간군상을 면면히 살펴보면 스스로 책임을 지는 일에 어려움을 겪는 어른이 참 많다.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어려운 수많은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은 어른이 정작 어른답지 못한 태도를 갖춘 모습을 통해서 신체나 물리적으로 어른의 형태를 띠고 있으나 정신적으로는 어른이 되지 못한 존재가 우리 사회에 참 많다고 느낀다. 즉, 우리는 생물학적으로 성장이 완성되어 일정한 시기를 거치면 무조건 어른이라는 자격을 부여받는다. 그런데 진정한 어른의 자격을 논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정신적 성숙이 필요하지 않을까? 때로는 어린이와 청소년보다 못한 태도로 구성원들에게 폐를 끼치는 어른들을 어렵지 않게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감정 표현에 서툴고 합리적인 선택지 대신 기분에 따라 즉흥적 선택을 하는 아이들, 집중력이 쉽게 흐트러지며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부족해 표현이 거칠어 수시로 다투고 또 화해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어른들도 배울 점이 무척 많다고 느낀다. 비록 아직 미성숙한 존재이지만 때론 어른스럽고 대견한 아이들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깨닫는다. 그들을 가까이에서 관찰하고 함께 생활할 수 있는 어른들은 이 말에 공감할 것이다. 아이들은 어른과 우리 사회의 거울이다. 아이를 정성껏 키우려는 부모와 바르게 인도하려는 교사의 노력, 정의가 살아 있는 사회의 분위기가 올바른 성인, 즉 민주시민이 되도록 이끌어준다.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자양분 되어 바람직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올바른 예절과 태도를 가정과 학교에서 계속 배우며 실천하기 때문에 비록 미성숙해 보일지언정 항상 정직하고 책임감 있게 행동하려 노력한다.


과연 우리는 아이들 앞에서 어른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어른인 우리를 믿고 따르라고 말이다. 우리가 말하고 행동하는 대로만 믿고 따르면 너희도 어김없이 다음 세대에게 존경받는 어른이 될 수 있다고. 그들의 눈빛에서 우리를 믿고 따르려는 의지를 느껴야만 한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존경받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 민족의 얼과 혼의 계승을 부르짖었던 선조들의 간절한 염원이 올바른 정신의 대물림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우리가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는지를 아이와 어른이 공존하는 삶의 공간 속에서 고민해 보자.


사진: UnsplashVitaly Garie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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