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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을 뱉는 아이들

길에서 마주치다

by 타조

한기가 조금 남아있는 초봄의 아침 공기를 들이켜고 걸음을 옮긴다. 지구의 중력으로 무겁게 내려앉은 지표면 위의 밀도 높은 공기를 뚫고 나아간다. 항상 지나다니는 길에서는 사람의 옷차림을 제외하고 여전히 봄이라는 기운을 느낄 수가 없다. 나뭇가지는 온통 갈색과 고통색 투성이다. 그나마 산수유나무는 꽃봉오리의 얇은 껍질로 감춰지지 않는 노란 꽃잎 색이 얼핏 비친다. 도심의 곳곳에 우뚝 솟은 높은 건물들이 대지에 거대한 그림자로 자신의 존재를 새긴다. 어찌나 건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섰는지 그림자를 새길 땅이 부족해 옆 건물, 뒷 건물 할 것 없이 건물들도 윗부분만 빼놓고는 햇빛을 온전히 품지 못한다. 햇살이 가득한 봄날에도 시시로 드리우는 그늘은 산수유나무의 발화를 늦추고 있다. 한겨울에조차도 제대로 햇살을 쬐지 못해 얼어 죽을 법 하지만 살아 있는 게 용하다. 이보다 더한 추위도 맨몸으로 견딜 수 있는 나무들의 생명력이 경이롭다.


아침의 거리는 출근과 등교로 에너지가 넘친다. 정해진 시각에 맞춰 목적지에 도착해야 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여느 때보다 확고하다. 버스정류장은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버스가 도착하면 앞뒤를 가리지 않고 탑승한다. 보통 앞문이 탑승용이고 뒷문이 하차용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앞뒤를 가리지 않는다. 버스운전기사도 앞문으로 승객들을 모두 수용하려면 운행시간에 차질이 발생하기 때문에 굳이 말리지 않는 눈치다. 그렇다고 뒷문으로 탑승한 승객들이 무임승차를 하는 것도 아니어서 더욱 버스운전기사도 허용하는 분위기다. 버스토큰이나 버스표를 요금통에 넣어야 하던 시절에는 붐비는 버스 뒷문 탑승은 무임승차였다. 그나마 교통카드 전산화가 보편화되었기에 뒷문탑승객들도 양심적으로 요금을 지불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공공질서 의식과 예절에 외국인들이 매우 놀라워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나도 덩달아 자부심이 생긴다. 이 와중에 외국인들이 딱 한 가지 우리나라에서 이해하지 못하는 행동으로 꼽은 것은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침을 뱉는 행동이라고 한다. 역겹다는 표현까지 사용하는데 나도 백번 공감한다. 어른들이 보여주고 아이들은 따라 하고, 아이들이 커서 어른이 되어 또 보여주고 그들을 본 아이들이 또 따라 하며 후세에게 침 뱉기 사회화 교육이 이어지고 있다.


길거리에서 침을 뱉는 아이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초등학생처럼 어린아이들보다 청소년기 아이들의 침 뱉기가 대부분이다. 침을 뱉는 연령대에 대한 설문이나 연구가 존재하는지는 모르겠다. 청소년기부터 시작하는 흡연의 경험과 또래집단 속에서 동질감을 형성하려는 심리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침 뱉기가 시작되고 퍼진다. 부정하고픈 이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보통 침 뱉기는 흡연의 부산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이에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불사신, 자신의 체액을 무기로 사용하여 상대의 목숨을 빼앗는 히드라. 훌륭한 사회질서와 예절을 무력하게 만드는 침 뱉기는 영락없이 히드라의 체액과 닮았다. 맹독이다.


아이들의 침 뱉는 행위는 비밀스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개방된 공간에서 다른 사람의 시선에 아랑곳없이 펼쳐지는 아이들의 기행은 그것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익숙해진 습관의 결과이다. 심지어 침을 입에서 흘려 뱉는 게 아니라 적당히 입을 오므리고 호흡까지 가다듬어 찰지게 퉤 하고 내뱉는다. 힘주어 침을 뱉어본 사람은 안다. 요령이 없으면 아무렇게나 침이 흩어져 분무기로 뿌리는 것처럼 퍼진다는 사실을. 정말 놀랍게도 아이들의 침 뱉기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연습한 결과이다. 한 덩어리로 뭉쳐서 정확하게 원하는 위치에 쏘아낸다. 한 덩어리로 뭉쳐서 정확한 위치에 안착시키는 모습에 경외감까지 느껴질 정도이다.


과연 어른들이 침 뱉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면 아이들이 주변의 상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침을 뱉는 습관을 들였을까 싶다. 분명히 이야기하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그 어른이라는 존재를 단순히 부모라고 한정 지으면 안 된다. 가정이 사회의 질서와 예절을 배우는 가장 기본적이고 작은 단위라고 할 수 있지만 거대한 전체 사회의 관습 앞에서는 큰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 아이들이 우리의 미래를 이끌어갈 주인공이라고 말하면서 정작 무책임한 모습으로 뒷짐이나 지고 있는 꼴이다. 어른은 모든 일에 스스로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다. 어린 시절에 어른들의 올바르지 못한 모습을 보고 배운 습관도 스스로 생각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수 있어야 어른이 아닐까? 몸에 배여서 고칠 수 없다는 변명을 아무리 늘어놓아봤자 이해받을 수 없다.


아이들의 행동에 분명히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의 책임이 있다. 자신의 생각이 말과 행동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고 이는 자연스럽게 타인과 상호작용 하면서 강화되기도 또 약화되기도 한다. 특히 아이들은 성장 과정에서 어른과 사회의 모습을 무의식적으로 수용하게 되는데 스스로의 자정 능력이 성숙하기까지의 모습은 전적으로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다 자란 어른이 되어서 자정 능력이 갖춰졌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조차도 그릇된 자신의 습관을 방치하고 살아가고 있으니 미성숙한 아이들은 어떻겠는가!


사진: UnsplashLouie Eyres-Sco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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