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을 통해
맑고 투명한 하늘을 바라보면 하늘은 그 특유의 하늘색이 끝도 없이 펼쳐질 듯 보인다. 하늘에 뜬 뭉게구름이 서서히 흘러 까마득히 멀어지는 곳엔 하늘과 땅이 만나는 구분선이 넓게 펼쳐진다. 그리고 땅은 하늘과 만나는 구분선을 바다에 양보한다. 수평선, 더 먼 곳으로 떠나고 싶은 인류에게 수평선은 그야말로 호기심의 영역이다. 급기야 먼바다는 폭포가 되어 미지의 공간으로 쏟아지며 방울방울 흩어져 사라진다. 어마어마한 양의 물이 쏟아지는 그곳은 그 끝을 알 수 없는 낭떠러지로 고요하게 사라져 가는 물방울의 모습만 볼 수 있을 뿐,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마치 적막으로 둘러싸인 우주, 대기가 없어 소리가 전달되지 않는 신비로운 공간. 하지만 이제는 우리의 땅이,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푸른 하늘을 뚫고 솟아올라 아주 높이 오르면 사방은 고요한 어둠에 휩싸인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인류의 호기심과 희망이 들끓는다.
잠에서 깨어나 눈을 뜬 후부터 눈을 감고 잠드는 순간까지, 해야 할 일이 빼곡히 적힌 지침서라도 있는 것처럼 복작복작 하루는 바삐 흘러간다. 그러나 흘러가는 시간의 줄기가 견고하고 빈틈이 없을 것 같아 보이는 것은 우리의 착각일 뿐이다. 어떠한 일정도 없는 한가로운 날 여러 생각을 정리하며 자신의 시간을 되돌아보면 시간만큼 한결같이 느긋하고 여유로운 것도 없다는 사실을 불현듯 깨닫는다. 고개를 들어 컴퓨터 화면에 고정된 시선을 창밖으로 옮기면 투명한 하늘에 구름이 유유히 흐른다. 나뭇가지가 천천히 흔들리고 초록의 나뭇잎이 바쁘게 춤을 춘다. 창밖을 가만히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사색의 시간은 정말 불현듯 찾아오고 그 시간에 몰입할 때, 정신세계는 무한히 확장하여 현실로부터 분리된다. 내면에 침잠하여 관조하고 생각을 다듬으며 온전히 고독하게 존재한다. 고독이란 시간을 생각으로 뒤바꾸는 과정이자 스스로 선택한 책임감 있는 태도다.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여 확장된 정신세계를 꼼꼼하고 세부적으로 살펴보는 자기 성찰의 과정이다.
무한히 확장되었던 정신세계가 제대로 정돈되지 않은 채 순식간에 사라지는 순간, 생각에 잠겨 잠시 기능이 멈췄던 감각기관이 작동하기 시작하며 다시 현실의 세상으로 돌아온다. 사색의 시간을 마치면 다시 현실로 돌아와 일상을 이어가겠지만 언제든 사색의 시간은 불현듯 찾아올 것이고,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면 될 일이다. 사색이 깊어지는 길에 고독이 함께 하며 자주 이루어지는 둘의 교집합이 우리를 사유의 길로 이끌어 줄 것이다.
개인의 정신적 풍요로움과 물질적 윤택함을 더해주었으며, 철학, 문학, 과학의 발전으로 우리의 문명을 발달시킨 인류의 여정이 좌초될 것 같은 위기감이 든다. 우리들에게서 질문이 사라져 가고 있다.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얻으려는 축복과도 같은 우리의 능력이 인공지능의 발달로 점점 약해지는 것 같다. 인간의 정신을 날렵하게 단련할 수 있는 생각의 기회를 고독의 깊이와 함께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