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 사라져 가는 청춘
지친 여름이 고개를 드리우고
호수에 비친 그의 퇴색한 모습을 들여다본다.
피곤에 지친 나는 먼지에 싸여
가로수 그늘을 거닐고 있다.
포플러 사이로, 있는 듯 없는 듯 바람이 지나간다.
내 뒤에는 빨갛게 하늘이 타오르고
앞에는 밤의 불안이
-어스름이-죽음이
지쳐, 먼지에 싸여 나는 걷는다.
그러나 청춘은 머뭇머뭇 뒤에 처져서
고운 머리를 갸웃거리고
나와 함께 앞으로 더 가려 하지 않는다.
사라져 가는 청춘, 헤르만 헤세
나이가 든 사람은 오랜 시간 수차례 담금질된 인생의 견고함이 그 안에 있다. 그 견고함은 인생이라는 공연이 막을 내리는 순간까지도 굳건할 듯 보인다. 그러나 마음을 움직이는 힘 앞에서는 견고함도 넋을 잃는다. 굳어가는 정신에 감동은 생기를 불어넣고 유연함을 보탠다.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불안했지만 활기차고 자신감 넘치던 청춘은 이제 나와 함께 하지 않는다. 청춘과 헤어진 길을 되돌아보며 손을 흔들지만 과연 그곳이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어디에서 나와의 동행을 멈춘 것인지, 혹은 천천히 뒤처지다가 자연스럽게 멀어진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저 내가 걸어온 흔적 속에서 마법처럼 사라져 보이지 않는 청춘을 눈으로 훑을 뿐이다.
아름다운 헤세의 문장 속에서 지난 청춘을 회상한다. 어찌 그렇게 아름답고 애틋하게도 청춘과의 이별을 그릴 수 있단 말인가! 희끗한 머리카락과 넓은 이마, 피부의 주름과 같은 다분히 현실적인 모습을 떠올리는 나는, 빨갛게 타오르는 하늘과 고운 청춘을 뒤로한 채 발걸음을 옮기는 한 사람의 모습에 깊이 감동할 수밖에 없다. 찬란했던 시절과의 이별 후, 삶의 끝을 향해 머뭇거릴 수 없는 시간을 걷는다. 수많은 감정이 분출하는 순간을 너무나도 무심하게 표현했기에 손을 내밀어 함께 걷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외로운 자들의 동행. 문학에는 감동이 흐른다.
고독을 마주하고, 품에 안고, 그 안에 잠들며, 사색하고 사유할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랄 뿐이다.
<헤르만 헤세, 1877-19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