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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퇴사일지 01화

퇴사 1일 차

by 한은성

나는 무엇을 좋아할까

뭘 하면서 살아야 될까


퇴사 1일 차 때부터

푹 쉬어야지 하는 마음과 달리

여러 가지 마음과 생각들로

마냥 편하지는 않았다.


20대 때 겪었던

공황장애가 심해지면서

퇴사를 결심하고 2달 뒤

현재 나는 또 백수가 되었다.


예술가로서 댄서로서 성공할 거야,

작곡학원을 다녀볼까?

작사를 배워보면 잘할 것 같아! 등등..

나의 거침없는 혹은 생각 없이

도전해 왔던 것들이 허사가 되어 돌아오고

그것이 후회가 되어 눈물이 났다.


34살, 아 이제 새해가 밝았으니

나는 35살이 되었는데

주변에서 하나둘씩 친한 친구들이 결혼하고

몇 천만 원씩 돈을 모아 자기 계발을 할 때

나는 모아놓은 돈 하나 없이

이 나이가 되었구나.


섣불리 결정했던 내 지난날이

꼭 잘못된 선택인 것만 같아서

그 강압감이 나를 더 아프게 한건 아닐까.


일주일에 한 번씩 찾던 정신의학과는

이제 이주에 한 번씩 가서 상담을 하고 약을 타온다.


우리나라의 현재 흘러가는 모양새처럼

대학을 나와 전공을 살려 취업을 하고

돈을 모아 결혼을 하는

그런 평범함을 거부하고 싫어했던 내가

그런 모습들을 갈망하고 있었다는 것을

상담을 통해서 점차 알게 되었다.


상황에 지배되지 않는다던

자존감 높던 20대의 나와는 달리

내 마음은 내가 마음대로 못할 정도로

쇠약해진 상태라는 걸 깨닫고 인정하기로 했다.


술을 즐겨하고 좋아하는 나에게

친구들이 왜 안 마시냐며 물을 때마다

내 사정을 설명해야 했는데

"나 괜찮아~"라고 하면서도

금세 기분이나 몸상태가 좋지 않아 져서

집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나 자신이 내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함을 인정하며,

하나둘씩 마음을 정리하고 있다.


내 유일하게 취미는 일기 쓰기였는데

일하는 2년 동안 절반은 쓰질 못했다.

자주 이어지는 야근과 출근 압박감으로

퇴근 후 씻고 바로 잠들기 바빴기 때문에

하루의 정리를 일정하게 하지 못했으며

내 감정도 돌보지 못하였다.

관찰하기를 좋아하는 나는

자양역(구 뚝섬유원지)을 지날 때마다

멍하니 허공만 쳐다보는

영혼 없는 상태로 지냈던 것 같다.


"은혜야, 나는 내 30대가 이럴 줄 몰랐어."

함께 춤을 추던 친구가

최근 나에게 했던 이야기다.


나도 너무 공감했던 말이기에

울컥 눈물이 속부터 치밀어 올랐다.

대한민국에서 예술을 한다는 것

그리고 비주류인 것을 오랫동안

유지하며 지낸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것이고,

버티는 자가 그래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며

나도 저 자리에 있을 수 있었을까 하는

마음도 한켠에 들기도 했다.


2025년 현재를 살아가는

30대의 모습은 무엇일까.


비교하는 걸 싫어하는 나인데

왜 나는 남들과 비교하며

내 과거를 싫어하고 후회하고

또 좌절하며 아프게 되었을까.


퇴사를 결정했으나

아무런 계획이 없다.


단지,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해외여행을 가는 것

가족들과의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것 말고는.


그래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게 뭘까

오랫동안 잘 지켜내며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하는 고뇌를 하며 퇴사일지를 적어보려 한다.


지금으로서 나의 목표는

가능한 매일 뛰고, 매일 글 쓰고, 매일 책 읽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 넣다 보면

어느새 해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나의 퇴사를 축하하며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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