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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퇴사일지 04화

퇴사한 지 13일 차

by 한은성

퇴사한 지 13일이 되었다.

현재 시각은 오전 8:47분

한참 지하철 안에서 출근하는 내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지하철에서 한번 실려간 일로 인해서

나는 퇴사를 앞두고 1달 동안

출퇴근길에 거의 매일 책을 읽었다.

붐비는 사람들을 보고 있거나

강압적인 느낌을 받으면 증상이 나타나서

차라리 책을 읽자는 마음에 읽기 시작한 건데

아 맞다, 내가 책을 좋아했었지 라는 생각이 스쳤다.

(다만 나는 집중력이 짧은 편이라 장시간 읽지는 않는다.)


사두고 읽지 않았던 책 더미 안에서

가장 먼저 읽고 싶었던 책 순으로 읽었다.

(책은 밑에 사진으로 첨부해 두겠다.)


책에 몰두하고 있으면,

그래도 일과 일상에서 조금은 벗어난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끝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더 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남겨두고 올 나의 미련과 사람들

그리고 미래의 대한 불안감 때문에.


현재의 나는 퇴사를 했다고 해서

너무 행복하고 즐겁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다만, 내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특별히 하고 있는 건 없는데

달리기는 한 번밖에 뛰러 나갔다가

A형 독감에 걸리는 바람에 실천하지 못하고 있고

글은 매일은 아니지만 조금씩 늘려나가고 있으며

책은 거의 매일 읽고 있다.


쉬면서도 항상 시간을 본다.

아, 이 시간이면 회사에서 이런 일을 처리하고 있겠구나

지금은 점심시간 이겠구나.

퇴근시간인데 나는 집에서 밥을 먹고 있네

벌써 1월 중순인데 말일 마감 때 바쁘겠군 등등

여러 가지 생각들을 상기시키려 한다.


왜냐하면 내가 가지고 있는

마음의 병인 불안과 우울이 나를 덮쳐버릴까 무섭다.

한없이 잠만 자고 무기력감에 빠져서

오늘이 며칠인지도, 몇 시 인지도 모를 만큼

컴컴한 터널 속으로 들어가 버릴까 봐

나 자신을 붙잡고 또 붙잡는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나의 루틴이 생겼다.

우선 방에 환기를 시키고 먼지를 털고

원래 회사 다닐 때는 먹지 않았던

간단한 아침을 먹는다.

공황장애 약이랑 독감약을 먹어야 되기 때문에

먹는 거도 있지만.

그리고 핸드폰을 거의 보지 않는다.

일부러 앉아서 명상까지는 아니더라도

밖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쉬니까 좋네, 저 사람들은 일하러 가겠지?

차들이 많다 오늘은.

날씨가 우중충하니 조용한 느낌이 드네.

그러다 보면 아침을 다 먹고

침대에 앉아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는다.

그리고 집중력이 떨어지면

영화나 드라마를 찾아보거나 글을 적는다.


요새 나의 일과이다.

이번주부터는 회사일로 바빠서

못 만났던 친구들, 청첩장 모임 등으로

매우 바쁠 예정이지만

그래도 나를 돌보는데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 한다.

전에는 채찍질이었다면

지금은 나를 찾는 과정이라고 보면 좋을 듯싶다.


브런치는 간단하고 명료하고

일반인 작가분들이 많아서 좋다.

글을 읽기도 쉽고 쓰기도 쉽다.

예전에 고등학생 시절

한참 감성적이던 때

게시글에 흰 글자로 나의 마음을 적곤 했었는데

그때 마음이랑 비슷하달까.

언젠가 나도 근사한 소설을 하나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꿈이라고 하면 거창하고 그냥 단지 소망 정도?


글은 말보다 힘이 세니까.

진심을 담아내기 그래도 수월하니까 말이다.

나는 성격이 급한 편이라서

이 전에 쓴 글들을 보니 그때는 몰랐는데 딱 봐도 급해 보인다.

일기를 쓸 때도 그렇고, 전에 춤을 출 때도 그랬었다.

몸과 마음의 힘을 빼는 것

그게 나한테는 가장 어려운 일이었으며

지금도 그렇다. 오래 걸릴 것이다.

20대의 나를 바라보는 30대의 내가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40대의 나는 조금은 여유롭고

무언가에 쫓기듯 살지 않기를.

바다 위에서 힘을 빼고 유영하듯

천천히 흘러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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