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나의' 공황장애의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그 시절을 지나고 나서야 정신과 약을 먹게 된 지 3개월 차가 되었다.
퇴사를 하고 난 뒤 가장 먼저 했던 것은 방청소였다.
스피커로 음악을 빵빵하게 틀어두며 하루 이틀을 거쳐 옷정리 서랍정리 책장정리 등
여러 가지 정리를 하게 되었는데, 재작년부터 쓴 일기장을 보게 됐다.
입사하면서부터 적었던 다이어리인데 6개월도 채 쓰지 못하고 끝맺음을 하지 못한 일기장.
공통적으로 적혀있는 것은 힘들다, 괴롭다, 언제쯤 이 생활이 끝날까, 나는 뭘 해야 할까
미래의 대한 불안감 현재의 대한 힘듦이 가득했다.
이런 감정들을 지나 2년을 버틴 내가 새삼 고마웠고 대견했다.
결국 공황장애가 재발한 탓에 2개월 간의 인수인계를 마치고 12/31부로 퇴사를 하게 되었는데
비록 2주 정도이지만 내 생활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처음 약을 지어먹었을 때 가장 끊기 힘들었던 것은 바로 커피와 술이다.
커피는 당연스레 아침에 출근하면 물 대신 마시는 것처럼 마셔댔고, 술은 좋아하고 즐겨하기 때문에
약속이 생기면 당연히 술자리로 이어지고 2차, 3차는 기본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 만나는 것도 좋아하는 내가 약을 먹으면서부터 의도치 않게 이것들과 멀어져야 했다.
처음에는 하던 습관대로 술을 마시고 커피를 마셨지만 약을 계속해서 복용하면서부터는
이상하게 몸에 받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카페인을 아무리 마셔도 심장 쿵쾅거림을 느끼거나 잠을 못 자는 편이 아니었는데
커피를 마시니 심장이 두근거리고 머리가 어질 했으며
술은 족히 청하 4병은 먹는 내가 맥주 500c 한잔에도 핑~ 도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정신과 상담을 갔을 때 선생님께 아무래도 술이랑 커피는 안 좋죠?라고 물었더니
"술> 담배> 커피 순으로 안 좋아요. 모두 끊는 게 좋죠."
끊는다? 내가? 커피랑 술을?..
그렇게 좋아하던 것들인데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요 선생님.........이라고 말했더니
선생님은 우선 지켜보자고 하셨다.
또 2주 뒤 상담을 갔을 때는 이렇게 말씀드렸다.
"선생님 아무래도 제가 이상한 거 같아요. 술이랑 커피가 안 받는 느낌이라 피하게 되네요."
"좋은 징조인데요?"
나는 나쁜 징조였는데 (즐겨하던 것들이라) 선생님께서는 좋은 징조라고 말씀하시니
가장 좋아했던 무언가를 이제는 멀리할 때가 되었구나 라는 마음이 들었다.
항상 술자리를 좋아하고 즐겨하고, 커피를 달고 사는 나의 일상에서
요즘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면 맛있는 밥을 먹고 카페를 가서 티를 마신다.
공황장애가 찾아오고 나서 몸상태가 오르락내리락 좋았다가 가라앉았다가를 반복하고
안 그래도 감정기복이 있는 편인데 더욱 심해져서 이 몸뚱이를 컨트롤하기 위해서는 멀어져야 하는 것들이라.
추가적으로 약의 탓인지 이 병의 특성인지 모르겠지만
나의 공황장애는 무의 감정이며, 살짝 차분해지는 느낌이 든다.
뭐를 하더라도 엄청 즐겁다거나 엄청 슬프거나 하지 않는다. (나는 원래 텐션 높낮음이 심한 사람이다)
바다를 보고 있을 때 지평선처럼 한없이 흘러가지만 잔잔한 그리고 또 고요한 무언가.
약을 먹으면 입맛이 떨어지고 배고프고 허기는져서 힘은 안 나지만 뭘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가끔씩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음식을 먹어도 많이 먹지를 못하고 금방 수저를 내려놓게 된다.
이 또한 사람마다 다르다고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셨는데, 누군가는 평소보다 많이 먹고
누군가는 평소보다 적게 먹는 극단적으로 바뀌는 경우가 있다고 하셨다.
그래서인지 살이 쭉쭉 빠지더니 47kg이 되었다.
다이어트할 때도 그렇게 40킬로 대로 내려가고 싶던 몸무게가 쑥쑥 빠지고 있는 건
내 입맛 때문도 있겠지만 술을 잘 안 마시니 더욱 그런 거 같기도 하다.
오늘은 오랜만에 동기였던, 같은 시기는 아니지만 퇴사한 친한 동생과 성수동에서 밥을 먹고 카페를 가고
소품샵을 4군데나 돌고 또 카페를 가고 집에 돌아왔다. 평소 같았으면 술을 진탕 마시고 다음날 숙취로 고생했을텐데 요새는 거의 맨정신으로 집으로 향한다.
서로 선물을 주고 싶어 안달이 난 것처럼 나는 만지작 거리던 펜을 선물로 받았고,
그 친구에게는 향수를 뿌리면 향이 남는 편지지를 선물했다.
우리는 같은 회사에서 우연히 만나 인연이 되어 현재까지도 편안한 사이로 지내고 있는데
나는 내가 머물던 곳에서 나왔을 때 남는 것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에 선물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공황장애가 나에게 가져다준 일상들과 생각들, 태도들이 신기하면서 낯설기도 하다.
그렇지만 싫지만은 않다.
술 없이도 충분히 즐겁고 소소했던 하루를 그 친구에게 돌려본다. 고마워. 함께해 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