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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퇴사일지 09화

나에게 MBTI란

by 한은성

"한입만!"

"너 혈액형이 뭔데?"

하던 시절을 지나 현재는 MBTI가

사람의 성향을 결정짓는 것뿐 아니라

누군가를 바라볼 때의 시선마저 결정되는 것 같다.


이렇게까지 MBTI가 유행하기 전에

20살 대학생 시절 때부터 친구들과 종종 재미로 해보곤 했었다. 그때 나는 춤을 추는 열정 그 자체의 예술가적인 사상을 가진 아이로 검사를 할 때마다 ENFP가 나왔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현재 밈이 생길 정도로

어떠한 사람을 판단할 정도의 검사로 자리 잡은 지금

나에게 MBTI란, 신기한 느낌이다.

정확한 성격 및 기질검사까지는 아니지만

이걸 맹신하며 믿는 사람들도 있으며

혹은 장난반 진담반으로 듣고 흘리는 사람들도 있다.


또한, 검사를 할 때마다 늘 같은 결과가 나오는 이가 있는가 반면 검사를 할 때마다 다르게 결과가 나오는 이가 있다.


나는 후자이다.

상황에 따라 환경적 영향을 많이 받아서인 건지

내가 정녕 다중인격자인 건지.

그때그때 달라지는 MBTI를 보며 대학시절을 떠올려본다. 극과 극 성향을 가졌던 나이기에 모든 알파벳들이 90% 초래할 정도였는데 현재는 49% 51% 정도랄까. 그래서 매번 다르게 나오는 거 같기도 하다.

지금의 나는 중간 인간인 거 같다.

이도 저도 아닌 그저 그런 중간의 사람.


어떨 때는 이 모습을 꺼내기도 하고

저쩔 때는 저 모습을 꺼내기도 하는

카멜레온 같은 인간 말이다.


좋은 걸까? 나쁜 걸까? 생각을 해본 적 있다.

어딜 가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혹시 MBTI가 뭐예요?"라고 물으면

난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애매하다.


그 시기때 했던 검사결과로 대답하곤 하는데

사람들은 그 결과를 토대로 나에게 프레임을 씌워 바라본다. 내가 이렇다는 이유로 나에게 MBTI란 그렇게 중요한 잣대는 아니지만 신기할 정도로 같은 결과가 나오는 친구들의 성향을 궁금해서 찾아보면

정말 비슷한 부분이 많이 있기도 하다.


집에서 일을 할 때는 INFP가 나온 적도 있고

회사를 다닌 최근에는 ENFJ가 나온 적도 있고

전에 회사 다닐 때는 ENTJ.. 놀러 다닐 때는 ENFP..

따지고 보면 S가 나온 적은 한 번도 없는 거 같다.

나머지는 다 한 번씩 바뀌어본 적은 있어도

찾아보니 S의 성향은 현실주의적인 거 같던데

나는 그거랑은 거리가 먼 사람인 걸까?


어릴 때부터 쓸데없는 상상을 많이 하곤 했다.

좋게 표현해서 언니가 "너는 창의력과 상상력이 진짜 뛰어난 애 같아!" 라고 말해주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어떠한 재능이 뚜렷하게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지금 생각해 보면 이게 좋은 걸까 과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래서 속에 있는 말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조용하고 집순이 성향과는 반대의 성향을 가지고 있는 편이고 오락부장이나 체육부장을 도맡아 하던 아이였다. 시끄럽고 말이 많았으며, 드립 같은 걸 쳐서 친구들이 좋아하면 그게 나의 즐거움이 될 정도였던 아이.


그렇지만 반대로 나를 정말 잘 아는 친구들이나

가족들은 나의 내면의 우울함 혹은 고독함 또한 알고 있을 것이다.


퇴사하고 나서도 곰곰이 생각해 본다.

회사에서 나의 별명은 '주책바가지'였는데

나는 그 별명이 참 좋았다.

팀에서 나이가 제일 많았지만 분위기메이커(?) 너무 옛날 말인가..

그런 느낌으로 지내는 게 행복했으니까.

나이가 들어도 장난치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그 모습은 나의 일부 모습일 뿐

여러 가지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 나의 장점이라고 생각된다. 이것을 깨닫기까지 오래 걸렸는데

낙천적이고 긍정적이고 싶던 아이는 부정적인 아이였으며 마냥 밝고 싶었던 아이는 현실적인 벽에 부딪혀 좌절하고 힘겨워하던 아이였다.

나의 여러 가지 자아가 형성되는 과정이 힘들었고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일까? 아니면 후천적인 영향이었을까 생각이 정말 많았다.

돈을 주고 상담을 받기도 하고, 책을 읽으며 나를 찾으려 애썼다.


지금까지도 나는 나를 찾고 있지만

어느 정도의 내 모습들이 정의가 되고 있긴 하다.

감사하게도 한 가지 모습만이 아닌 다양한 모습을 통해 사람을 대할 때에도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법을 배웠으며 그러면서 나의 가치를 느끼곤 한다.

내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필요한 사람이고 싶고

내가 부족하여 배우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선뜻 배우고 싶은 사람이고 싶기 때문이다.

제일 무서운 것은 편견과 극단적인 모습이다.

어중간하게 중간으로 된 나의 자아가 싫었지만, 지금은 썩 마음에 든다.

모든 것은 확신하는 순간 무너지게 되어있다.

그 확신이 틀렸다는 것을 떠안았을 때의 실망감과

확신이 제대로 이루어졌지만 후에 달라지는 모습들을 보며 좌절감을 느낄 바에는

모든 결론은 열어두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극단을 피할 것, 확신하지 말 것.

인생을 살면서 배운 문장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한 번쯤 생각해 볼 시간이 되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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