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의 심리학책을 읽다 보면, 부모들에게 가장 기쁨을 추는 것이 애기가 태어나서 엄마 아빠를 보면서 웃어주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아이를 키워 본 부모들이라면 그것에 공감을 하실 겁니다. 그리고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출산을 기다리고 있는 부모들에게는 그것이 얼마나 신비스러운 것인지를 알아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는 참 사랑스러운 존재입니다. 요새 반려동물들의 애교를 보면서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아이가 생기면 반려동물로부터 느껴지는 기쁨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 아이입니다.
예쁘게 입히고, 건강하게 되도록 온 마음을 다 쓰고, 또 많은 재능이 발휘될 수 있도록 부지런하게 키워 갑니다. 바쁘게 일과를 보내고 퇴근하는 아버지의 피로감도 현관에서 맞아주는 아이를 보는 순간 어디론가 사라져 버립니다. 이렇게 아이와 아빠 엄마는 삶을 즐깁니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미래의 꿈을 꾸는 사춘기 시절에 갑자기 사랑스러움보다 걱정거리가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개구리가 올챙이시절 모른다는 말을 기억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이들을 바라볼 때, 자신이 그 시절에 어떤 마음이었는지를 기억해 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따뜻한 가정에서 자라났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바라는 것들이 아빠 엄마에 의해 저지되고,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야만 했던 기억들이 나실 겁니다. 그때 아마 “내가 결혼해서 애를 키운다면 아빠 엄마와는 다르게 할 거야”라는 생각을 다 해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 아이들과 소통을 할 때, 자신이 그 나이 때 가졌던 그 마음, "나는 아빠 엄마와는 다르게 할 거야"라는 마음으로 하고 계시는가요?
그런데, 자신의 아빠 엄마도 똑같은 생각을 하셨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해서 말입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아버지 어머니 시대와 지금이 너무 다르기 때문일까요? 그런 면도 좀 있겠지요. 그렇지만 그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듣는 마음입니다. 자신이 아빠 엄마 밑에서 성장했을 때 경험했던 문제는 아빠 엄마가 자신의 생각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부족했다는 사실입니다.
듣는 마음. 그것이 제일 중요한 것이죠.
부부 사이에서도 그렇지 않습니까? 왜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거야?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자신도 짝꿍의 생각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별로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아빠 엄마의 입장에서는 “너희들이 세상을 몰라서 그래”라는 생각이 늘 있습니다. 너희들의 생각대로 살면 세상 사는 것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그런데, 아빠 엄마는 세상사는 법을 잘 압니까? 애들보다 조금 경험이 많을 뿐이지, 모르는 것투성이 아닙니까?
아이들은 그러한 사실을 잘 있습니다. 우리들이 어렸을 때 부모님에 대해서 생각했던 것처럼 말이죠.
오래전에 유행하던 김건모의 “핑계;라는 노래가 생각이 납니다.
“내게 그런 핑계를 대지 마 입장 바꿔 생각을 해봐
니가 지금 나라면 넌 웃을 수 있니?”
아마도 그 노래를 들으셨을 떼, 가사보다는 김건모의 율동에 더 눈이 가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참 철학적인 가사라고 생각을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마당에 이런 경쾌한 노래를 부를 수가 있을까요?
그래서 가사보다는 멜로디와 율동에 더 마음이 갔을 겁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이 이렇게 어렵습니다.
그렇게 좋아했던 사이였지만, 마음이 식으면 아랑곳하지 않고 떠나버리는 것이 사람이니까요.
부모와 자식 사이에는 문제가 없을까요?
아마도 서로 사랑하는 젊은 사람들 사이보다도 더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자식은 내가 낳고 사람을 준 소중한 존재이고,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세상에서 제일 신뢰하고 의지하고 있는 부모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입장 바꿔 생각을 봐야 하겠지요.
마음을 열고, 귀를 열고 마주 보면서 그 마음을 받아들여야 하겠지요.
"내 말 들어봐!"가 아니라, "네 말을 들을께. 왜냐면 너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아이잖아?
뭐든지 말해봐, 같이 해결을 하자"
아이들이 부모의 생각과 달라서 마음 상하게 한다는 것은, 아빠 엄마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생각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빠 엄마가 그것을 알면 얼마나 좋은 줄 아세요?라는 의미가 있는 것이죠.
내가 오래전에 교회학교 교사를 처음 시작했을 때, 학생들과 나의 나이차이가 30년이 넘었습니다. 내 아이였다면 엄하게 꾸짖어야 할 상황들이 수도 없이 눈에 보였습니다. 이 아이들과 어떻게 대화를 나눠야 할까. 어떻게 해야 편하게 소통할 수 있을까. 정말 고민스러었습니다.
처음 한 두해 동안은 어려운 마음에 "오늘로 그만둬야지......"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습니다. 하지만 맡은 일이었기 때문에 순종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런데 묘한 것은, 아이들을 만나러 갈 때는 늘 마음이 부담스러워서 "오늘은 그만둔다고 해야지"라고 생각을 했지만, 학생들과 같이 한 시간을 보내고 나올 때는 교사하기를 잘했다 하는 생각이 솟아났습니다. 아이들이 나와 소통이 원활해지기 시작하면서 같이 있는 시간이 즐거워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죠.
우리 아이도 교회학교 학생들과 비슷한 나이였습니다. 교회학교 학생들과의 소통이 원활해지기 시작하면서, 우리 아이와의 소통도 훨씬 원활해져 갔습니다. 아이를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죠.
자연스럽게 집에서 대화도 늘어났고, 아이의 학교생활에서 일어나는 문제들도 자연스럽게 알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아이의 입장이 이해되기 시작하니까,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도 먼저 듣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서는 같은 수준에서 대화를 나눌 수가 있게 되었던 것이죠.
듣는 마음만 있으면 우리들이 우리들이 겪고 있는 아이들과의 소통의 문제의 대부분이 사라집니다.
들어주면, 아이들은 아빠 엄마를 더욱 신뢰합니다. 자기 마음을 의지하고 싶게 만들어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