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성취는 자기의 믿음으로부터
자신을 믿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무리 많은 것을 갖고 있다고 해도 자신감이 없으면 사람들 앞에 나서기가 두려워집니다.
그래서 교양도 익히고 몸가짐도 가다듬고 매력적인 옷도 입으면서 자신을 가꿉니다.
자신이 대하고 있는 사람을 볼 때, 일차적으로는 꾸며진 모습에 주목을 합니다.
고급 브랜드의 옷을 입으면 눈이 가고, 비싼 장신구를 착용하고 있으면 더욱 눈이 갑니다.
고급 승용차에서 내리는 사람은 남달라 보입니다.
자기 자신보다 좋은 것을 많이 가진 사람에게는 마음이 눌리기 쉬운 것이 사람입니다.
그래서 꾸미는데 많은 노력을 하게 되지요.
그런데, 아무리 꾸미고 나간다고 하더라도 자신감이 솟아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내면에 갖추어진 것이 별로 없을 때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외국으로 여행을 가면 즐거운 일들을 많이 경험합니다. 그리고 대접도 받습니다.
관광객은 어디를 가든지 환영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고객이니까요.
말이 서툴러도 오케이입니다. 아주 좋지 않은 매너만 아니라면, 웬만한 실수는 다 눈감아 줍니다.
유학생으로서 외국생활을 하게 되었을 때 겪는 부자연스러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연구원들과의 커뮤니케이션으로부터 학습에 이르기까지 소통이 안되는 일이 일어나기 쉽지만,
가장 문제는 그런 일들로 주위를 불편하게 만드는 일들이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배운 것을 빠르게 익히는 것이 쉽지 않아서 항상 마음이 쫓기는 기분이 되기 쉽습니다.
유학을 갈 정도라면, 실력에 있어서는 인정받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만, 문화적으로 부딪치는 일들이 적지 않아서 편안한 마음으로 지내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연구원들과의 대화에서도 공통화제를 주도적으로 이끌고 나가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죠.
무엇인가를 주장하고 싶지만, 인정받을 때까지는 말을 꺼내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내에서 그렇게도 당당했던 모습이 좀 움츠려 들고,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때때로 들기도 합니다. 익숙해 질 때까지는 행복을 느끼기가 쉽지 않습니다.
유학을 온 목적이 자신이 평생 해 나갈 전공에 숙달하고 창의적인 소양을 키우는 것이죠.
그러므로 전공에 집중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나도 마찬가지였지요.
그런데 내가 유학을 시작했을 때에는 연구실에 신기한 기계가 있었습니다.
퍼스널컴퓨터 (주1) 였습니다.
퍼스널컴퓨터가 뭐 그리 대단한 것이냐고 물으실 분이 계시겠지만, 당시로서는 최첨단의 기계였습니다.
다룰 수 있는 사람도 많지 않았을뿐더러 매우 비싼 가격이었기 때문에 개인이 가지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출국하기 한 달 전쯤에 kBS 여의도 별관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컴퓨터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기계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기 때문에, 만사를 제쳐놓고 전시장에 갔습니다. 키보드와 본체, 그리고 그 위에 흑백 브라운관이 올려져 있는 기계가 있었는데, 바로 퍼스널 컴퓨터였습니다. 화면은 까만 바탕이었고 연한 녹색의 삼각형이 깜빡거리고 있었습니다. 뭔가 신기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잔뜩 기대를 했는데, 뭘 어떡해야 할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지만, 안내해 주는 사람도 없어서 이것저것을 만져 보았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입력해야 할런지도 모르겠고, 키보드로 뭔가를 타이핑해도 늘 "삐~"하는 소리만 났습니다.
그리고 모니터에는 "Syntax Error!"라는 글자만 표시되었지요.
아무리 호기심이 발동했어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기계라서, 더 이상의 관심을 버렸습니다.
그런데, 연구실에는 바로 퍼스털 컴퓨터가 있었고, 여러 가지 신기한 작업들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키보드에 값을 입력하면, 프린터에 데이터 분석값들이 줄줄이 인쇄되어 나오고, 처음 보는 기계에서는 도표가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플로터라는 기계에서 말이죠.
나는 컴퓨터를 공부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수련을 받으면서 틈만 나면 프로그래밍 공부를 독학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래지 않아서 내가 만든 프로그램으로 통계처리도 할 수 있게 되었고, 꽤 쓸모 있는 일들을 할 수 있게 되자, 연구실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언어가 부족했음에도 연구원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의 많은 부분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가 있었지요. 그 덕분에 유학생활 내내 매우 즐거웠습니다.
집에 컴퓨터를 들여놓은 것은, 유학 3년 차 때였는데, 중고컴퓨터를 구입해서 사용했습니다.
집에 돌아오면 밥을 먹자마자 조그만 방에 틀어박혀서 프로그래밍을 하고, 새로운 주변기기를 연결해서 작동시키느라고 시간 가는 줄을 모르며 지냈습니다. 오랜만에 나를 찾아오신 아버지께서 "노벨상 못 받으면 서운하겠다"라고 웃으시면서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매일매일이 몰입의 연속이었죠.
이것이 나의 자신감의 원천이었습니다.
연구실에는 늦게까지 남아서 공부를 하는 몇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오는 사람도 있었는데, 하루는 같이 저녁을 하게 되었지요. 즐겁게 이야기하다가 내가 제안을 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스터디그룹 하면 어떨까요?"
모두 대 찬성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음 주부터 매주 한 번씩 스터디그룹을 하게 되었는데, 유학이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모여서 논문을 읽고 토론하는 모임이었고, 나를 포함해서 참여했던 5명이 모두 학위를 수여했습니다.
공부만 한 것은 아닙니다. 더운 여름이면 스터디그룹을 끝내고는 가까운 비어가든에 가서 늦은 시간까지 맥주를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유학생활은 가난합니다. 부모님으로부터 지원받는 것이 조금 있기는 합니다만, 거의 자급자족을 해야 합니다. 가족을 부양하면서 외국에서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일을 해야 하지요. 나는 일본에서 임상실습을 위해서는 치과의사면허가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에, 유학을 시작한 다음 해에 면허를 취득하였습니다. 그래서 빠듯하기는 하지만 생활비를 마련할 수가 있었지요.
넉넉하게 쓸 수가 없기 때문에 별로 재미없는 일상생활을 보내지 않았는가 하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만, 그때도 그랬지만, 돌이켜 보아도 내가 제일 즐겁게 생활한 시기였다고 생각을 합니다. 하고자 하는 일을 마음껏 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죠. 매일매일이 성취의 연속이었다고 말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내는 동안에는 그것이 '몰입'이었는지도 전혀 몰랐고, 또, 매일매일 이루어지는 일들이 성취인 줄도 모르고 보냈습니다. 지나고 나니 쌓인 것이 상당히 많았던 것을 보면서 내가 많은 성취를 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간적으로는 오래전의 일이지만, 나에게는 바로 얼마 전의 일로 밖에는 생각이 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의 새활이 과거와 다른 모습이 되어 있는 것은, 연구실을 벗어나서 개인의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과, 갓난아기였던 우리 아이가 주부가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나머지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심리학자들의 공통된 의견
1970년대부터의 심리학은 프로이트라든가 아들러 시대의 심리학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긍정심리학이라는 흐름입니다. 정신적인 문제를 치료하는 방법으로서, 생활 자체를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것으로 바꾸어 가는 것이죠.
긍정심리학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마틴 셀리그만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심리적인 상태(무기력상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를 위해서 많은 연구를 거듭해 왔습니다.
몰입으로 유명한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운동선수들, 음악가들, 등반가들, 기술자들이 자신의 일을 그렇게 탁월하게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일들에 몰두하고 있을 때의 심리는 어떤 것인지에 관해서 장기간의 수많은 연구를 해 왔습니다.
또한, 하버드대학교 성인발달연구를 40년 넘게 이끌어 온 조지 베일런트 교수는, 행복한 삶이라는 것은 어떻게 얻어지는 것인가를 연구해 왔습니다.
각각의 연구는 다룬 대상들도 다르고, 주제가 달랐지만, 공통적인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긍정적인 생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긍정적인 생각이라는 것의 바탕에는 어떤 일이든 의미를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내면의 본성인 사랑, 희망, 기쁨,용서,연민, 믿음과 같은 긍정적인 정서가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준다는 것이죠.
특히, 베일런트 교수는, 70년 이상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하버드성인발달연구를 40년 이상 이끌면서 10대의 소년 소년들이 증조할아버지 할머니가 될때까지의 생애를 연구하면서, 인간에게 미래를 낙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긍정적인 감정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어린 나이에는 아는 것이 많지 않아서 새로운 일에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나이가 들어서 은퇴할 시기가 되면, 이 세상을 너무 많이 알게 되어서, 자신은 더 이상 이 사회에서 쓸모가 없어졌기 때문에, 새로운 일에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 두 가지 상황의 공통점은 눈에 뜨이는 일을 해야만 뭔가 납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만족스러운 삶, 행복한 삶이라는 것이 누군가의 평가가 필요한 것일까요?
자신이 행복할 수 있다고 느낀다면 행복한 것이고 즐거운 것이지요.
그러므로 자신이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꾸준히 해 나가면, 그것이 의미 있는 일이 되고, 행복이 될 것입니다.
빅터 프랭클의 이야기입니다.
"삶이 무엇인가를 묻지 마십시오. 오히려 삶이 나에게 묻고 있는 것에 대해서 주도적으로 답을 하도록 하십시오"
아이들은 자유로운 상상력이 시들지 않도록 도와주어야 하고,
은퇴를 한 사람들은, 그동안 삶 속에서 깨달아 온 것들을 가다듬고 의미 있는 것들을 만들어 가는 것을 해 나가야, 이 삶을 마무리할 때, "아, 내 삶은 의미가 있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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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퍼스널 컴퓨터: 맨 처음 나온 퍼스널 컴퓨터의 제원은 다음과 비슷합니다. CPU는 8-bit. 메모리는 64KB였고, 디스플레이는 12인치 흑백 브라운관. 기록매체는 옵션으로서 초기에는 카세트 플레이어를 사용하다가, 3.5인치 플로피 디스크를 부착해서 사용했습니다. 이 정도의 사양이었지만, 본체 가격만 250만 원이 넘었습니다. 워낙 비싸서 처음 컴퓨터를 공부할 때는 연구실에서 밤을 새우며 공부를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