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Dream, 夢, 유메(ゆめ)
꿈이란 말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두 번째 말이 아닐까?
첫 번째로 아름다운 말은 사랑일 거야.
사랑이 첫 번째이지만, 아빠는 오는 두 번째 아름다운 말인 꿈을 이야기하고 싶구나.
꿈, 듣는 순간 마음이 설레는 말. 꿈.
아빠 마음이 왜 갑자기 이렇게 설렐까? 너에게 삶의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아빠 마음이 설레는구나. 다른 말 보다도 이 말이 이렇게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은, 그만큼 꿈이 좋다는 것이지.
고등학교 때 농촌봉사 다니던 기억이 나는구나. 지금은 그 지역이 충주호가 만들어지면서 많이 수몰이 되어버렸지만,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었다. 단양팔경에 둘러싸인 제천이라는 곳이었지. 매년 여름이면 봉양면, 한수면, 청풍면등의 농촌에 가서 열흘씩 일을 했었다. 청풍명월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청풍면의 아름다운 경치를 말한 것이지.
경치가 좋은 만큼 산이 높아서 목적지까지 가기 위해서는 높은 산을 넘어야 했고, 강을 건너야만 했지. 맨손으로 가도 쉽지 않은 곳을 짐을 이고 지고서 몇 킬로를 걸어가야만 했다. 가장 더운 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고 산을 올라서, 언덕 위에 도착하면 시원한 바람이 불었지. 그 바람이 등을 스치고 지나갈 때의 그 상쾌함, 무거운 짐을 이고 지고 넘어가던 우리들을 행복하게 해 준 바람이었다.
어떤 날은 길을 닦다가 강 쪽으로 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입은 옷이 몽땅 젖었지. 그렇지만 기분이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우리들 모두는 젖은 옷을 입은 채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두 번 다시 그럴 기회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말이지.
우리들의 꿈
1960년대의 우리나라는 지금처럼 잘 사는 나라가 아니었다. 텔레비전 방송이 시작된 지도 얼마 안 되었지. 방송 채널은 딱 3개였어. 하나는 KBS-1, 두 번째는 KBS-2, 그리고 주한미군방송(AFKN).
미군방송에서는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도 없는 풍요로운 장면들이 늘 나오고 있었다. 그때 커다란 냉장고에서 커다란 우유병을 꺼내서 마시는 사람들의 모습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우리나라는 언제나 저렇게 넉넉한 나라가 될까?
우리들이 고등학생이면서 농촌봉사 활동에 참여했던 것은, 미래의 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국처럼 잘 사는 나라를 바라보면서 말이지.
너에게 진정한 꿈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너는 뭐라고 답하고 싶으냐?
꿈이라는 것은 가슴 설레게 해 주는 것이기 때문에 기대가 되는 것이지. 꿈이 없다면 이루어질 것이 아무것도 없는 수용소에서 사는 것보다 아주 조금 괜찮은 삶 밖에는 안될 거야. 자유롭게 움직인다는 것 말고는 수용소보다 나을 게 없는 것 같다..
아빠가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를 너무 많이 읽어서 그런지 비교를 수용소생활과 하게 되는구나. 좀 지나친 비교이기는 하다. 그래도 실감이 나지 않느냐?
앞에서 나의 고등학교 시절의 꿈에 관해서 이야기했다만, 그 당시의 우리 또래들의 꿈은 늘 나라의 미래와 함께하는 꿈이었단다. 교육의 힘도 컸지. 학교와 사회 모두에서 국가를 위한 국민의 마음가짐을 교육한 영향도 있겠지 그렇지만 그것을 짐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 모두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했지. 그 대표적인 것이 새마을 운동이었다.
.
지금은 초가집을 보려면 용인민속촌이나 가야 되지만, 내가 고등학교시절만 하더라도 서울에도 초가집이 있었단다. 안 믿어지지? 그렇지만 사실이야. 그러니 서울을 벗어나면 거의 모든 곳이 초가칩이었어. 농로도 매우 좁아서 사람은 걸어갈 수 있어도 지금처럼 경운기 같은 기계는 전혀 들어갈 수도 없었지. 저수지도 많지 않았고. 그래서 여름에는 늘 홍수에 시달리고, 가뭄에 시달리곤 했었다. 그랬기 때문에 초가집을 없애고 마을 길도 넓힌다는 구호는 모든 국민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지. 그리고 지금 보는 것과 같이 세계적인 나라가 되었다.
이렇게 꿈이라는 것은 개인인에게도 성취의 기쁨을 주고 사회에도 풍요로움을 줄 수 있는 것이지. 그래서 그 시절을 겪어 온 사람들은 지금보다 그때가 더 행복했다는 말을 자주 한단다. 국민소득 천불(1,000달러)이 목표였고, 수출은 백만 불이 목표였던 시대였다. 지금은 국민소득이 4만 불을 바라보고 있으니, 얼마나 가난했던 시절이냐, 그렇지 않으냐? 그런데도 그때가 행복했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뭐겠느냐? 품었던 꿈 때문이 아닐까?.
꿈
어떤 꿈을 가져야 하는 것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다. 왜 고민할까?
아니, 꿈이라는 것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에 품는 것인데, 그것 때문에 고민한다는 것이 참 이상해. 가지면 되는 것인데 왜 고민을 해? 안 그렇냐?
그런데 많이 생각해 보니, 고민할만하다는 것이 이해가 되더라.
꿈을 갖지 못해서 고민하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이 없는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남들에게 자랑할 무엇인가를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을 꿈으로 삼으려고 한다는 것이지.
참 우습지 않니? 자기의 꿈을 품는데, 왜 다른 사람이 머리에 떠오르는 거지?
그것은 꿈이라고 할 수 없을 거야. 허영이라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살 생각이 없는 것이지, 남의 눈에 잘 보이는 삶을 생각하니까 늘 비교하고 우울해지고 무기력해지는 것 아니겠니?
60년 전의 우리나라 사람들이 행복했던 이유는 꿈이 진정한 자신의 것이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이제 나는 알게 되었다. 비교하고자 하는 마음이 거의 없었던 것이지.
그리고, 자기와 함께 하는 사람도 기쁠 수 있는 것을 마음에 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된다.
꿈을 가슴에 품을 때 설레는 마음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반드시 이루어야 할 일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진정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니까. 그 속에는 비교하는 마음이 없고 나누고 싶은 마음만이 가득할 거다. 그것은 멈추지 않고 해 나가면 반드시 이루어질 꿈이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