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의미를 찾아내는 삶
경험을 했다고 해서 바로 삶에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간절함이 있어야만 적용할 마음이 생기죠.
기도라는 것을 처음 해 본 것이 중학교 3학년때 였습니다.
간절함이 있을 것 같은 시기였지만, 교회에 다니는 사람으로서 기도를 안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생각 때문에
연습을 시작해 본 것이죠.
연단
기도에 대한 간절함이 없는 기도.
바랄 것이 없으니, 구할 것도 없어서 그냥 두 손 모으고,
"하느님......." 하고 시작을 했는데,
이어지는 말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당시는 천주교 신자였기 때문에 하느님이라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몇 번의 기도 연습을 한 덕분이라고 할까요,
조금은 모양이 갖추어져 나갔습니다.
그러다가 부딪치는 문제들이 있을 때마다 기도를 하게 되었지요.
간절함 보다는 불안함 때문에.
이렇게 시작된 것이 나이 신앙생활입니다.
기다림
기도의 응답은 우리가 바라는 모습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압니다
사람이 바라는 것은 진정으로 자신의 삶을 위한 것보다는 지금 당장 급한 것이 해결되기를 바라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기도의 응답은, 마치 군인이 힘든 훈련을 마쳐야만 강한 군대의 일원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연단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느낍니다.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
1년이 아니라 10년, 20년이라도 기다리는 것.
그 사이에 자신이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자신의 변화를 통해서 응답이 이루어지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내가 긍정선언을 하게 된 것든 빅터 프랭클의 책을 통해서이기도 하지만,
데이비드 호킨스의 긍정적인 용어의 사용에 관한 글을 읽고 나서, 내 생각을 바꾸고자 마음먹었기 때문입니다.
호킨스는 ‘놓아버림’에서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방식과는 다른 생각의 방식들을 많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들 가운데 늘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갖고 싶다는 것은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호킨스의 생각의 방식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가지고 싶다는 것은,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것. 너무도 당연한 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인가?
이 점에 관해서 호킨스는 “갖고 있으니 안심하라”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어디서 읽어 본 느낌이 없으신가요?
성경에서도 똑같은 말씀을 하고 있지요.
이 분은 크리스천은 아닙니다만,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경험을 말하고 있습니다.
한번은 호킨스가 시내에 사무실을 얻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얻고 싶다는 마음을 놓아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잊어 버리고 있었죠.
자신이 구하고 싶었던 시내의 사무실을, 당연히 자신이 갖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 사무실을 얻기 위해서 부동산을 찾았을 때, 놀랍게도 그 사무실이 나와 있었다는 것이죠.
누군가는 마법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용을 깊이 음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갓은 낙관성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낙관적 사고
믿음이란 긍정적인 정서입니다.
긍정적인 정서는 마음을 적극적으로 움직이도록 해주고, 희망을 키워줍니다.
그런 마음으로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을 위해서 노력하면 얻어질 수가 있는 것이죠.
그러나 아무리 얻고 싶다고 해도,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도박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요행을 바라는 것이죠.
대개 낙천적인 사람은 노력보다는 막연히 기대하는 사람입니다.
운이 좋으면 얻어지는 것이고, 안되었을 때에는 운에 돌리는 것이죠.
낙관적이라는 것은 노력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노력 전에 갖추고 있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마틴 셀리그만(Martin Seligman)은 낙관적 아이라는 저서에서
낙관적이 되기 위해서는 '할 수 있다'라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 경험은 스스로의 힘으로 성취하는 것으로서
실패도 해 보면서 경험을 쌓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운이 좋을 것을 기대하면서 걱정하지 않는 것을 낙관적이라고 이야기 할 수는 없는 것이죠.
집착한다는 것은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집착하는 사람은 사랑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사람을 좋아할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의지하고 싶은 사람은 늘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든든한 것이죠. 생각만 해도 늘 든든하니, 기대고 싶어질 것입니다.
나는 호킨스의 생각을 “마음에 여유를 갖고 집착하지 말자”라는 생각으로 받아들이며 지내고 있습니다.
때가 되면 나에게 필요한 것이 갖추어질 것이라는 생각으로 말이죠.
내가 갖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을 마음에서 비워내는 것이 내가 소유하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성취가 될 때까지 열심히 사는 것이죠.
내가 꼭 필요할 때에는 반드시 얻어진다는 믿음을 가지고 말이죠.
그래서 믿음과 연결을 해서 내 마음속의 문제들을 내려놓기 시작을 했습니다
더불어서 어떤 상황을 접할 때, 그 속에는 반드시 긍정적인 의미가 감추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아침에 출근 준비를 마치고 현관에서 “다녀온다!”라고 아내에게 말을 하면,
아내는 방에서 튀어나오면서 나를 한 번 훑어봅니다.
그리고는 반드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여보, 잠깐만! 다른 옷으로 바꿔 입고 가”
내 마음은 이미 직장으로 향해 있는데, 아내의 말이 내 발길을 잡으니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그래서 때때로 아내에게 싫은 소리를 하곤 했지요.
“어때서 그래? 깔끔하면 되었지 뭐가 문제야?”
또는,
“옷 입기 전에 미리 이야기해야지, 나가기 바쁜 사람을 잡으면 어떡해?”
말은 부드럽게 하지만, 마음은 보통 불편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아내의 요청을 받아들이는 것보다는, 그대로 출근을 해 버리는 일이 보통이었지요.
그래서 마음은 즐겁지 않은 채로 아침 일과를 맞이하곤 했습니다.
프롤로그에서 말씀드린 퇴근 시의 선언을 매일 하던 중이었던 때,
아침의 출근길을 붙잡는 아내의 말의 뒷면에 있는 마음이 읽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저 사람이 나를 사랑하고 있구나”
그러면서 발걸음을 하나 옮길 때마다 "아내는 나를 사랑하고 있다!"라고 마음속에 속삭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세 걸음을 걸으면, 경쾌한 출근길이 됩니다.
이렇게 생활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일에도 그런 것을 적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려운 일에 부딪쳐서 마음이 힘들 때, 그 일이 나에게 주어진 이유-의미를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부분은, 성경 말씀의 적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씀에 하나님은 감당하지 못할 시험은 허락하지 않으신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을 떠올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내가 해낼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나에게 주어진 과제라는 것을 생각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내가 마주하고 있는 상황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주어진 것
여러분은 이렇게 생활에 가르침을 적용하면 그 변화가 늘 바로 일어나고,
마음이 갑작스럽게 힘으로 가득 차질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좋아졌다가 어려워졌다가 하는 상황이 계속 반복이 됩니다.
하지만,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상승직선에 수렴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항상 일관되게 적용을 해 나가는 것이죠.
여기까지 말씀드린 것을 요약하면
1) 긍정적으로 생각할 때, 변화가 시작된다.
2) 어떤 상황이든 그 뒤에는 자신이 깨닫기를 기다리는 의미가 있다
3) 자신의 앞에 놓여 있는 문제는 스스로 해결할 능력이 있기 때문에 주어진 과제라는 사실이다.
4) 깨달은 것은 바로 실천을 하고, 도중에 멈추지 않고 계속 실천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브런치에서 글들을 읽으면서 몰랐던 가르침들을 많이 배우게 됩니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불파만지파참’입니다.
불파만 지파참(不怕慢 只怕站)
천천히 하는 것은 괜찮지만, 멈추어서는 안 된다 라는 뜻입니다.
꾸준히 해야 한다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