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과학자인 카이스트 김대수 교수의 이야기에 따르면,
사람들이 죽기보다 싫어하는 것이 누군가로부터 가르침을 받는 것이라고 합니다.
스스로 선택해서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닌 것은 분명하겠지요.
~답지 않은 사람이 인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준다면
그 자리가 매우 불편한 자리가 되어 버리겠지요.
인간관계를 위해서 그냥 듣고 있을 뿐이지만 말입니다.
최근 수년간 '꼰데'라는 말을 주제로 여기저기서 이야기가 되고 있습니다만,
듣고 싶지 않은데, 인생 경험이 좀 있다고 해서 가르치려고 드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제는 그만 좀 했으면 좋겠다는 신세대의 바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지요?
요새는 이 말을 하는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만,
세 살 때까지의 습관이 삶의 가치관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입증이 된 사실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누군가의 양육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마음에 새겨야 할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소가족-핵가족 시대에 유아들에 대해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세심하게 양육하는 부모는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모든 생각에 앞서서 금이야 옥이야 하고 보살피는 것만을 생각하겠지요.
더욱이, 신혼부부가 각각 직장생활을 해야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세상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아이들의 양육은 할머니 몫이 되어 버렸습니다.
할머니들은 금쪽같은 손자를 감싸고, 그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해 주는 것이 최선의 양육이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삶에 필요한 지혜를 아이들에게 심어주는 경우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오로지 귀한 손자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뿐이겠지요.
유태인의 교육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면서 그들은 상상할 수 없는 박해를 받았습니다.
기원전부터 중동지역의 바빌로니아, 앗시리아등의 강국의 침략으로 이스라엘은 폐허가 되어 버렸고 백성은 포로로 잡혀서 70년이 넘게 살았고, 간신히 나라를 회복했지만, 다시 멸망을 당하고, 2,000년이 넘는 시간을 나라 없이 살아왔던 민족입니다. 세계 각지에서 말로 할 수 없는 박해를 받아 온 민족입니다.
이 정도면 민족으로서 존재하기는 거의 불가능할 겁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다시 나라를 세우고 지금과 같은 강국이 된 것은 그들의 특별한 교육의 힘입니다.
그들은 유랑을 하면서도 가는 곳마다 시나고그(회당)를 가장 먼저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토라를 가르쳤습니다.
토라는 모세 오경이라고 부르는 구약성서의 앞의 다섯 책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탈무드를 가르쳤습니다.
지금도 이런 교육은 변함이 없습니다.
이런 교육의 힘이, 나라를 잃고 그렇게 긴 세월을 세계로 흩어졌던 민족이 다시 나라를 회복하고, 세계의 중심에 설 수 있었던 힘이었던 것이죠.
우리나라도 그러한 점에서 매우 비슷합니다.
반 만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하지요?
숱하게 외세의 침임을 받고 살아왔고, 타국의 속국이 여러 차례 되었음에도 지금과 같이 강한 나라로 설 수 있었던 것이 교육의 힘이었습니다. 민족의 가치관이 여기에 까지 이르게 한 것이죠.
그런데 그 가치관이 최근에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공동체 의식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죠.
잘 살 수만 있다면 공동체를 위한 생각보다는 자기 생각을 먼저 하는 것이 보편화된 것이죠.
"공동체? 그게 뭔데?"
행복은 행동의 결과로 얻어지는 것이라고 많은 철학자들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자기 잘났다고 자랑하는 사람을 따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자기 잘났다고 자랑하는 사람은 상대방의 위에 서려고 하는 사람인데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잘 배운 사람은, 같이 사는 법을 잘 배운 사람이지요.
이런 사람이 사랑받는 사람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