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르면 희망이 자꾸 사라진다
대학병원의 과장을 하고 있었을 때입니다.
나는 진료와 교육에만 신경을 쓰면 되었고, 나머지 자잘한 문제, 예를 들면, 주민센터 가야 할 일, 복사하는 일, 책 구입, 우체국업무 등등은 수련의들이 모두 해 주었습니다. 매우 편한 시간이었지요.
그러다가 독립을 하여 내 개인치과를 개설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치과를 하고 나서 나의 어떤 부분이 달라졌을까요?
수련의들이 해 주던 일을 모두 내가 하게 되었습니다.
동사무소업무가 어려운 업무인가요? 우체국에 우편물 부치는 일은 어떤가요? 그거 못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그런데 수년간 안 하다가 스스로 해야 하게 되니 마음이 참 불편해지더군요.
개인치과를 하면서 여러 가지 활동을 했기 때문에 진료 업무 외에도 늘 일이 많았습니다. 수련의 교육도 해 가마면서 학술활동을 열심히 했었지요. 그렇기 때문에 거의 쉴 틈이 없이 지내야 했는데, 자잘한 개인업무는 늘 나를 불편하게 했습니다. 일 자체가 싫다기보다는 주된 업무가 아니라는 생각이 내 마음에 불편했던 것이죠.
다만, 진료에 관련된 환자들의 자료분석이라든가 정리 등은 수련의가 해 주었기 때문에 대학병원 시절보다는 불편했지만, 할만했습니다.
그런데, 병원이 한창 바빠지기 시작할 때, 수련의도 개업을 하고, 나는 진료업무를 모두 홀로 해야만 하게 되었지요. 진료 자료의 검토, 분석, 정리를 내가 모두 해야만 했습니다. 적어도 3 사람이 달라붙어야 할 일이었는데, 나 혼자 다 해야 했던 것이죠. 그때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함께 일할 때는 누군가에게 시킬 수도 있지만, 늘 그렇게 살 수는 없다는 사실이죠.
그래서 모든 일을 스스로 하는 습관을 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수련의가 들어왔지만, 그에게는 그런 일을 넘기지 않았던 것이죠. 수련의가 그만 두면 더 힘들어질 테니 말입니다.
새벽에 출근을 해서 저녁 늦게 퇴근을 해야만 진료등의 진행이 어려움이 없이 이루어질 수가 있었습니다.
제때에 처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타자속도를 올리는 연습을 계속했습니다. 자판을 보지 않고 열 손가락 모두를 사용해서 타이핑하는 연습을 피나게 했지요. 결국은 분당 300자 이상을 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던 형이 그러더군요. 그런 것은 밑의 사람에게 맡기지 왜 네가 해? 형은 언제까지나 밑에 사람이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사람의 본성은 게으릅니다
사람의 본성은 귀찮은 일은 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되도록이면 그 자리에서 모든 일을 처리하고 싶어 하지요. TV를 안 보기 시작한 지 10년이 넘어서, 요새는 사람들이 TV를 어떻게 보는지 잘 모르지만, 아마도 소파에 푹 파묻혀서 멀티기능의 리모컨으로 누르고 있지 않을까요? (오래전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점점 몸은 소파 속으로 꺼져 들어갑니다^^
요새는 스스로 하지 않아도 컴퓨터가 알아서 다 해주지요. 물론 사용법은 익혀야 하겠지만.
더욱이 인텔리전트(intelligent)한 개념으로 발달하고 있는 IT는 사람이 원하는 것을 더 편하게 해 주려고 있는 힘을 다 하고 있습니다.(목적이 있겠지요?)
편하니까 점점 의존해 가지요.
요새 은행을 방문하면 예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창구의 직원이 거의 안보입니다.
ATM기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안내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화를 걸면 "이 전화는 녹음되고 있습니다. 폭언이나......"라는 메시지가 나오고,
기능 설명이 잔뜩 흘러나옵니다. 아주 편해졌습니다.
(사실은 갈수록 불편해지고 있지만요)
스스로 택한 길에 대한 보답입니다
'편便'이라는 글자 앞 뒤에 접두사나 접미사가 붙지요.
앞에 붙으면 부정적인 의미가 되고(불편),
뒤에 붙으면 긍정적인 의미가 됩니다(편리).
뒤에 붙으면 긍정적이 되는 것을 보면, 진정으로 편리해지고 싶으면
'서두르지 말고 뒤에 서라"라는 의미로 읽힙니다.
급행료를 내야 하는 시스템은 부조리해지는 것을 우리는 많이 경험했습니다.
마찬가지로 편리해지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불편함이 새롭게 주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되도록이면 원시적으로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