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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일 Feb 23. 2021

#3. 단골 까페 사장님이 주고 간 이름모를 식물

힘들고, 때로는 외로운 회사 생활에 친구가 되어 준 식물들

들어가기 전 휴재에 대한 작은 변명과 앞으로 꾸준히 쓰겠다는 굳은 다짐 


오랫만에 다시 연재를 하게 되었네요.

처음에 브런치 시작하면서 매주 목요일마다 올리겠다고, 약속했는데 오랫동안 못 쓰다가 다시 올립니다. 

그 간 퇴사도 하고, 행복주택에 당첨되기도 하고(어쩌면 올 여름에는 큰집 풀풀 생활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프로젝트도 시작하는 등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우울하거나 무기력할 때도, 혹은 너무 바쁘거나 겨를이 없을 때도 늘 마음의 짐처럼 머릿속에 이야기들 풀어내야지 했는데.. 미루고 미루다 이제야 다시 브런치에 글을 쓰네요.


한참 신나게 식물이 자라던 늦여름쯤 시작했는데, 우수수 식물이 죽어나가던 가을과 겨울을 지나, 어느새 봄을 기다리고 있네요. 집에서 키우던 식물들이 대부분 야외인 테라스에서 키우던 터라, 날이 추워지면서 키우는 식물이 급격하게 줄어들었어요. 하지만 요즘 날은 춥지만 조금씩 봄이 다가오면서 다시 밀싹도 심어보고, 식물 키우는 친구들에게 나눔 받았던 씨앗들도 심어보려고 화분을 정리하고 있어요. 그렇게 봄을 기다리면서 씨앗을 심으려는 마음으로 겨울잠을 끝내고, 다시 브런치에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강제로라도 글 쓰려고 글쓰기 모임에도 가입했어요.)


구독해주시는 분들이 많진 않지만, 저 때문에 브런치 가입해주신 분들도 있고, 좋아요나 댓글에 많은 응원을 받았어요. 이제 절대 지나치지 않고, 꾸준히 써볼께요! (세상에 이렇게나 많은 글과 이야기가 있어 누가 읽을 까 싶지만 그래도 누군가 읽어주길 바라면서)





#3. 단골 카페 사장님이 주고 간 이름 모를 수경 식물


회사 근처 자주 가던 카페 사장님이 이사 가면서 아쉬워하는 나에게 플라스틱 컵에 담긴 식물을 건네주었다.

“물만 주면 키우기 쉬울 거예요”라고 말하면서. 지하 사무실이었지만 옆에 두고 물도 자주 갈아주고, 점심시간에는 주차장에서 햇빛도 쬐어주면서 애지중지 키웠으나 어느 날 사라졌다...



예전에 다니던 회사는 성산동 작은 골목에 있었다. 구석구석 골목마다 작은 커피숍이나 책방, 작업실들이 많은 곳이라 점심 먹고 슬리퍼신고 산책하는 재미가 있었다. 그 중에는 자주 가던 단골 까페가 있었다. 수제 소다를 만들어 파는 곳으로, 귀엽지만 낯을 가리는 강아지가 있었다. 야근때문에 힘들다고 동료와 점심시간에 투덜거리고 있으면, 오후에 힘내라고 소다에 아이스크림을 얹어주기도 하던 다정한 곳이다. 


테이블도 의자도 몇 개없는 작은 곳이었지만, 점심 먹고 남은 짧은 몇 분 사랑방이 되어주었고, 힘든 날 기분 전환이 되어주었다. 너무 살갑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줘서 더 좋았던 사장님.


그러던 어느날 그 까페가 문을 닫는다는 소리를 들었다. 회사 동료 4명하고 좁은 까페에 앉아 아쉬워하고 있었다.  마음이 여린 직원 하나가 "모두 정들면 떠나네요." 하고 까페의 강아지를 쓰다듬다 눈물을 보였다. 

같이 온 동료 중 그만두는 사람도 있었고, 까페도 문을 닫는데 일 년 넘게 낯을 가리던 까페 강아지가 그 날 따라 자신을 따르자 아쉬워서 하는 소리였다. 친해질만 하면 떠나는 직장 동료, 쿠폰 2-3장 꽉 채워 음료를 바꿔먹을만큼 정이 들면 사라지는 작은 까페들... 그런 것들 작아보여도 은근히 겪을 때마다 아쉬운 거니깐


나는 괜히 아쉬워서 그 이야기를 듣고부터 문닫을 날까지 매일갔다. 점심시간에 한 잔 마시고, 한 잔은 테이크아웃해가기도 했다. 나름 단골이었던 나에게 사장님은 마지막 선물이라며, 투명한 유리병에 키우던 수경식물을 테이크아웃 잔에 담아주셨다


그 때까지 식물을 매번 죽이기만 하던 나였지만, 왠지 비장한 마음으로 받아 들었다.

"때때로 햇빛 보여주고, 며칠에 한 번씩 물만 갈아주면 잘 자랄 거에요."


그렇게 소중히 받아들고, 사무실로 가서 내 옆에 그 식물을 두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스킨답서스나 스파티필름이 아니었을까 싶다. 진짜 물만 갈아줘도 신기하게 잘 자랐으니깐... 때로는 투명인간처럼 느껴지고, 때로는 도망가고 싶은 순간에도 그 작은 식물은 위로가 되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점심시간에 햇빛을 보게 해주겠다고, 주차장 볕 잘 드는 자리에 두었는데...

그게 그 식물과의 마지막이었다. 누가 가져갔는데 차에 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깔끔하게 사라졌다.

안타까웠지만, 그래, 수경식물이라면 키워볼만 하겠구나! 라는 자신감이 조금 생겼다.


그리고 몇 년 뒤 성수에 스타트업에 다니게 되었을 때도, 식물은 작은 위로가 되어주었다.

마음이 답답하고 머리가 아플 땐 혼자 옥상에 올라가 스트레칭을 하고는 했는데, 그 때 옥상앞에 누군가 햇빛을 쬐게 해주려고 놔둔 작은 화분들을 보고 마음이 따뜻해졌다. 

이 건물 어딘가에서 하루를 보내는 누군가도 작은 초록 친구하나 두고 힘들 날들을  버티고 있겠지 하면서. 

지하 사무실에서도 햇빛도 없이 식물을 키워내고, 마음 붙일 수 없을 것 같던 사무실에도 화분에 물주고 환기시켜주려고 일찍 가기도 하고.. 그 공간이 어디든 식물을 키우면, 보살피고 위로받는 일들이 생기는 것 같다. 



(예고) #4. 어느 겨울 시작된 나의 식물생활

집앞 꽃집을 지나다 우연히 들이게  된 로즈마리. 분갈이가 하고 싶어서 유튜브를 찾아보고 처음으로 하게 된 우당탕탕 분갈이. 그리고 이케아에서 3000원에 데려온 테이블야자. 난생처음 3개월 이상 생존하는 식물들이 생기자, 화분을 늘리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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