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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일 Aug 27. 2020

#2. 식물 연쇄 살인마

빈 화분만 남은 나의 식물 도전기

작은집 풀풀생활

#2. 식물 연쇄 살인마_빈 화분만 남은 나의 식물 도전기





키우는 족족 식물을 죽이던 나. 선인장도 죽이고, 페페도 죽이고, 허브도 다 죽이고...

선물 받은 화분들은 시체들이 되어 빈 화분들만 남게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 늘 식물을 잔뜩 키우고 싶은 꿈은 가졌다.




합정과 상수 사이 반지하 작은방에 월세에 월세로 살 때부터, 아니 어쩌면 그전부터 나는 늘 식물에 대한 로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화분이 가득한 집, 텃밭에 야채와 허브를 잔뜩 키워서 자급자족하는 삶 같은 것들로.  나의 욕망은 대부분은 잡지와 인스타그램, 미국 드라마 등에서 만들어진 실체 없는 이미지의 모음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뭐 어때. '삶이 예술을 모방한다'는 오스카 와일드 말처럼 나는 '로망이 미디어를 모방'하고 있었다.


합정과 상수 반지하 월세 월세로 살다가, 복잡한 여러 가지의 사정(하우스메이트가 친오빠와 살게 돼서 나가 달라고 한다거나, 때마침 이전 오래된 룸메이트의 룸메이트가 나가면서 다시 함께 살게 된다거나 같이 살게 된 집에서 집주인과의 싸움으로 쫓겨나게 된다는 등의 흔한 이야기) 등을 거쳐 나는 망원동에 혼자 월세로 살게 되었다. 이 역시 피터팬 방 구하기로 구한 월세집으로, 보증금 500만 원의 월세 45만 원이라는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이전 다니던 출판사에서 1분 거리로, 어린 시절부터 챙겨주던 길냥이 가족도 살고 있는 곳이라 망설이지 않고 계약했다.)


처음으로 서울에서 혼자 자취를 하게 되면서 (고시원 제외) 나는 처음으로 이케아 등에서 여러 가구(그래 봤자 조립식이나 3만 원 미만이었지만)를 사들이기 시작했고, 국민 선반이라 불리는 이케아 3단 선반이 들어섰을 무렵, 남자 친구에게 화분을 선물 받았던 것 같다. 이름도 모를 그 작은 식물을 잘 키우고 싶었다. 하지만 그때는 12월 춥디 추운 겨울의 한가운데였고, 나는 식물에 대하 너무나도 무지했으며, 계단 앞에 위치한 내 방은 몹시도 춥고, 온도차가 심해 곰팡이가 피는 집이었다.


그때는 식물을 살아있는 개별적인 생물체라고 인식하는 게 아닌 화분으로 인식하던 때라서 환기의 중요성도 몰랐고, 식물별로 물 주고 햇빛 주고 환기해주고 마음 주는  것도 다르다는 걸 몰라서, 내가 선물 받은 화분은 날로 날로 시들어 갔다.


2015년 12월, 다급한 마음에 페북에 올린 글. 나의 무지함과 무관심 속에 서서히 시들어 가던 홀리페페


이전부터 선물 받은 선인장도, 길을 걷다 충동적으로 사 온 꽃이 피어있는 화분도, 키우기 무난할 것 같아서 들여온 선인장 마저도 나는 늘 처참히 죽였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빈 화분만 늘어갔다. 작고 예쁘고 팬시한 화분들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선반 한 구석 깊숙이 모아놓다가 나중에 버리면서 깨달았다.


화분, 아니 식물에도 분갈이가 필요하고, 환기가 필요하고, 햇빛이 필요하고, 물이 필요하고, 심지어 이 모든 것들이 식물마다 다르며 그것을 신경 써주지 않으면 어김없이 죽고 만다는 것을.


나는 자취도, 사는 것도, 식물 키우는 것마저도 너무 쉽게 보았던 것이다. 지난날을 반성하며, 내가 초록별로  떠나보낸 식물들 모두 미안. 나 내일은 조금 더 섬세한 인간이 될게...



덧) 2015년 식물의 세계에 눈 떠 우연히 합류하게 된 망원동 옥상텃밭 모임. 꽤나 불성실하게 나갔으나  일주일에 한 번 물을 주고, 바질과 애플민트, 상추를 따오고, 같이 총각무를 수확해 김장을 해 먹었던 기억은 너무 즐겁게 남아있다. 지금의 식덕생활의 자양분을 길러준 활동. 나름의 나만의 옥상텃밭을 가꾸고 있는 요즘, 나의 또 다른 꿈은 언젠가 주말 텃밭을 분양받아서 본격적으로 상추, 오이, 방울토마토 등을 키워보는 것.



(예고) #3. 단골 카페 사장님이 주고 간 이름 모를 수경 식물

회사 근처 자주 가던 카페 사장님이 이사 가면서 아쉬워하는 나에게 플라스틱 컵에 담긴 식물을 건네주었다.

“물만 주면 키우기 쉬울 거예요”라고 말하면서.  지하 사무실이었지만 옆에 두고 물도 자주 갈아주고, 점심시간에는 주차장에서 햇빛도 쬐어주면서 애지중지 키웠으나 어느 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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