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유의 가장 나다운 것 중에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일까.
어떤 사람이 자기의 또래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마 그가 그들과는 다른 고수鼓手의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듣는 음악에 맞추어 걸어가도록 내버려 두라.
북소리의 박자가 어떻든, 또 그 소리가 얼마나 먼 곳에서 들리든 말이다.
헨리 데이비스 소로우 '월든' 중
동창이 나무위키에 올라왔다.
아마도 그 친구가 나를 보면 "저랑 같은 반이었다고요?"까지는 아니고 아~ ooo! 할 정도의 거리의 동창.
짝꿍이었을 때 정말 많이 웃었던 기억이 난다.
남들을 잘 흉내 내고 주변 사람들을 웃게 하는 말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독설을 해도 화가 안 나고 웃겼다. 선생님들도 재밌어했던 것 같다.
안경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는 아이였다.
노멀한 게 싫어서 흔한 안경이 아니라 특이한 안경을 쓴다고 했다.
공부도 잘하는 아이였다. 공부를 별로 안 하는 것 같아 보이는데 시험을 보면 성적이 잘 나와서 사람을 작아지게(?) 하는 그런 아이였다.
그림을 잘 그렸던 기억은 없었는데 그림을 그리는 취미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의 필명을 봤는데 필명도 그 친구답다는 생각이 들어서 웃음이 났다.
어떻게 그림을 그릴 생각을 했을까 궁금했고 나도 그림을 그리다 보니
그 친구에겐 있고 내겐 없는 것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봤다.
배울 점은 나도 배우고 싶었고 따라 할 수 있는 건 따라 하고 싶었다.
물론 특유의 그만의 재능도 크겠지만 그 친구에겐 도망치지 않을 용기, 피드백을 마주할 용기가 있었다.
좋은 반응보다 안 좋은 반응이 많을 때도 그 친구는 계속 굴하지 않고 했던 모양이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비판을 해도 그 친구는 도망치지 않았다.
그 친구의 그림은 그 친구스러움이 가득했다.
그 친구를 보며 약간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원한다고 생각했던 것에서조차 도망쳐왔던 내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나 자신이 어디 내놓기 쪽팔리다 생각했는데 나 자신을 직면하지 못하고 도망치는 내가 더 쪽팔린 거였다.
내가 꿀린다는 생각이 제일 부끄러운 거였다.
지금 손에 쥔 건 없지만 나대로의 답을 찾아왔을 뿐인데 그게 뭐 그리 쪽팔리는 일인 걸까?
남이 쪽팔린다고 해도 내가 안 쪽팔리면 되는 거 아닐까?
그 친구와는 고등학생 시절에 같은 반으로 만나 농담 따먹기나 할 줄 알았지
한 번도 진지한 대화다운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는 사이지만,
그 친구는 내게 필요한 조언을 행동으로 몸소 보여준 거나 다름없다.
가장 본인다운 것을 사람들에게 꺼내 보이라고.
들어본 적도 없고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욕을 할 수도 없다.
실패하지 않는 건 성공하지 않는 것.
내가 아는 유일한 유명인 동창을 응원하며, 나도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선명하게 그려나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아모르파티(Amor Fati)로 가는 스무 번째 마음가짐
다른 사람의 멋짐을 인정하고 배울 게 있으면 배우자. 타인의 이러쿵저러쿵 에 휘청이지 말고 나 다운 것을 찾자.
저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D
글쓴이/그린이 : 기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