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갑인 할머니 집에 얹혀살고 있습니다.

지금 중요한 것들이 60년 후에도 중요하게 느껴질까?

by 기역


동갑
육십갑자가 같다는 뜻으로, 같은 나이를 이르는 말.
또는 나이가 같은 사람.



나는 외할머니와 동갑이다.

보통의 의미처럼 생년이 같아서가 아니라, 60년 차이로 갑자가 같아서 동갑이다.

같은 갑자는 100년 동안 두 번뿐이다.

100년은 1세기다. 1세기에 2번뿐인 건 귀하다.


3년 전, 아버지와 사이가 틀어지게 되면서 외할머니집에 내 사업장 주소를 냈다.

그렇게 외할머니 집에 들어와서 지내기 시작했다.


돈 말고도 나를 짓누르는 것 중에 하나는 peer pressure다.

친구들은 대부분 한 직장을 10년 이상 다니고 있거나 결혼을 했거나 독립을 했다.

peer pressure(또래 압력)은 내 존재 가치의 지표일 수는 없지만, 가끔씩 나를 작아지게 하는 지표가 되곤 한다.

30대 중반이라는 나이를 통과하는 여자 사람은 결혼을 했거나 아이가 있는 경우가 많다.

요즘 많은 청년들이 결혼을 안 하고 있다고 미디어에서는 말하지만 내 주변엔 그런 사람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연락해서 만날 친구도 현저히 줄었다.


그런 의미에서 외할머니 집에 얹혀사는 내 신세가 가끔 스스로 한심하게 느껴진다.

독립도 못했고 내가 부양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할머니께 오히려 신세를 지고 있으니 말이다.

누구도 내게 눈치를 준 사람은 없고 나는 자유롭지만 한 번씩 그런 생각이 찾아오곤 한다.


어제 고등학교 때 친구에게서 오랜만에 전화가 왔다.

결혼 전엔 자유로웠던 친구의 기준은 이제 아이와 남편이 된 듯했다.

한 시간 정도 통화를 하면서 딱히 할 말이 점점 없어지는 게 느껴졌다.

내가 결혼을 결국 하지 못하게 되면, 친구와는 점점 나눌 수 있는 말이 별로 없어지겠구나, 간극이 생기겠구나(이미 생기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조금 씁쓸해졌다.

언제까지고 지나간 추억만 붙잡으며 나눌 수는 없을 테니.

결국은 내쪽에서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며 이제는 정말 노력으로 관계를 이어가는 구간으로 진입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내가 친구들에게 먼저 연락을 안 하게 되는 건 내 삶에 대한 불만족, 결핍감, 자격지심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들이 맞고 나는 저들과 다른 게 아니고 사실 틀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에 친구들에게 관심을 두려 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시험지를 술술 잘 풀고 있는 반면, 나는 오답만 늘어가는 기분을 느꼈던 것이다.

내 삶을 긍정하겠다고 하면서도 그놈의 정상 궤도를 벗어나면 죽는 병이 여전히 나를 옥죄는 듯하다.

결혼을 안 하면 결국 후회하게 될까. 아이를 안 낳으면 결국 후회 가득 찬 삶을 살게 될까.

세상에 의지할 데 하나 없이 나만 혼자 남겨지게 되는 걸까라는 생각은 날 두렵게 한다.

장수하고 싶지는 않지만, 60년 후에도 살아남는다면 난 어떻게 살까. 내 곁엔 누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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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와 나의 60년 차이는 좁혀지지도 늘어날 수도 없지만, 어렸을 때보다 체감상 지금 더욱 커졌다.

이제는 나도 적지 않은 나이라 지금 내 나이에서 +60살은 엄청 고령이 됐기 때문이다.

외할머니는 청력도 시력도 기력도 모두 잃어가고 계시지만 절대 보조장치(보청기, 보행보조기 등) 같은 것에 의존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하시다.

모든 걸 혼자 힘으로 하려고 하시지만, 할머니는 기력이 쇠하신 지 오래다.

가족들은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 않지만, 할머니는 삶을 이어갈 의욕이 이제 별로 없으시다.

사실은 그런 할머니를 보면서 나는 노화에 대해 긍정적인 상을 그리기가 무척 어렵다.

필요 이상으로 길게 이어진 수명이 한 사람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하는지를 옆에서 봤다.

할머니는 80대까지만 해도 정말 정정하셨지만, 이제는 삶에서 할 수 있는 것을 다 하고 하산하고 싶어 하신다. 그런 반면 나는 인생의 산 중턱까지 올라보지도 못하고 헉헉대고 있는 것 같다.


내게 노화를 두렵게 하지만 외할머니는 내게 영감도 주신다.

외할머니는 자주적이고 심지가 굳은 분이다.

이젠 기력이 없으시지만 할머니가 살아오신 그 수십 년의 세월이 얼마나 하루하루 부지런한 하루였을지 가늠할 수 있다. 지금도 하루에 두 번씩 집 청소를 하신다.

나는 내가 외할머니 나이가 됐을 때, 지금의 나를 바라보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내가 목숨 거는 것들 중 가치 있는 게 얼마나 될 것이며 동년배들에 비해 뒤처져있다는 생각들은 과연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어쩌면 그땐 지금 의미 있게 느껴지는 많은 게 의미를 잃지 않을까.

내가 갖지 못한 것 때문에 위축되지 말고 내가 가진 지금을 누려야겠다.

시시각각으로 느껴지지는 않지만, 이 하루 이 지금, 우리는 눈부시고 아름다우니까.


*아모르파티(Amor Fati)로 가는 열아홉 번째 마음가짐

번민도 자격지심도, 고통도 이 모든 게 60년 후에는 아무것도 아닐 것들. 이 지금을 누리자.


저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D


글쓴이/그린이 : 기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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