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 입다가
때로 삶이 힘겹고 지칠 때
잠시 멈춰 서서 내가 서 있는 자리,
내가 걸어온 길을 한번 둘러보라.
편히 쉬고만 있었다면
과연 이만큼 올 수 있었겠는지.
힘겹고 지친 삶은
그 힘겹고 지친 것 때문에
더 풍요로울 수 있다.
가파른 길에서 한숨 쉬는 사람들이여,
눈앞의 언덕만 보지 말고
그 뒤에 펼쳐질 평원을 생각해보라
외려 기뻐하고 감사할 일이 아닌지.
때로 지퍼 올리기 힘들 때
거울 앞에 서서 내가 살 찌운 몸뚱이,
내가 퍼먹은 생을 한번 돌아보라.
매일 소식을 했었다면
과연 이만큼 찔 수 있었겠는지.
올리기 힘든 지퍼
그 힘겹게 애쓴 것 때문에
더 배고팠을 수 있다.
꽉끼는 단추에 숨 들이쉬는 아침이여,
언젠간 입겠지 희망 말고
저 농에 묵혀놓은 바지들 처분해보라
되려 가뿐하게 시작할 아침 아닐지.
청바지를 좋아한다.
20대부터 모은 청반바지만 10벌이 넘는다.
살이 찔 때마다 종아리가 끼는 관계로 무릎길이에서 가위로 댕강 잘랐다.
원치 않았고 반갑지 않은 반바지들이다.
허벅지나 배가 끼는 긴 청바지들은 언젠간 살 빼면 입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장롱 구석에 박혀 있다.
버릴 것인가 짐짝으로 둘 것인가?!
나날이 청바지는 줄고 고무줄 바지가 늘어나는 인생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