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이브, 작은 음악회
크리스마스이브
크리스마스 당일보다 언제나 더 설렌다. 나에겐 크리스마스보다 더 설레고 기억에 남는 이브가 있었던 것 같다. 비록 산타 할아버지의 커다란 양말 주머니에 책 한 권이 들어있었어도(커다란 양말 주머니를 가져다주면 선물도 큰걸 줄 줄 알았건만;;) 무슨 선물이 있을까 두근두근 기다려졌고 그날만큼은 산타를 기다린다는 핑계로 밤새 재잘재잘 언니랑 늦게 잠들어도 엄마 아빠에게 혼나지 않았다.
공식적인 올나잇(꼴딱 밤을 새우는 날)이 정해진 날.
all-night 올나이트가 바른 표기로구나.
교회에 가면 더 신났다. 난 평소에는 교회 가는 걸 참 싫어하는 아이였는데 이브에는 확실히 뭔가 좀 달랐던 것 같다. 학생회, 청년회로 이어진 이브 모임에서는 밤새 고기도 구워 먹고 맛있는 걸 잔뜩 먹고 모여서 즐거운 게임도 하고 선물교환도 하고 어느 날인가는 밤새 함박눈이 펑펑 와서 박스와 포대자루를 가져와서 교회 앞, 작은 공원 언덕에서 눈썰매를 타고 축구를 하고 놀기도 했다.
그러다 12시가 되면 새벽송을 돈다며 동네 근처 곳곳에서 캐럴을 함께 불렀다. 젊은 전도사님 부부가 챙겨준 컵라면, 과자 같은 간식을 나눠 먹고 밤새 언니 오빠들과 까르르 웃고 떠들었다. 나에겐 나이트 올나잇보다 크리스마스이브의 올나잇이 분명 더 재밌었다. (*나이트 가본 적 : 2번밖에 없어서 그럴지도;;; 정말 재미가 없었던 기억만 한 가득인 ㅋㅋㅋ)
이번 크리스마스이브에는 《한밤중 독서모임/도반들》의 작은 음악회가 있었다. 이브에도 아이들과 우리에게 기꺼이 문을 열어주고 먼저 손 내밀어 초대해 주신 심선생님.
이번에도 우리를 초청해 주셨다.
간단하게 아이들의 연주를 보여주는 자리라고 생각했는데 선생님께서 함께 하시는 다른 선생님 두 분도 가야금 산조와 오카리나를 들려주신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좋은 자극이 될 것 같았다. 거기에 더해 혜진선생님의 친정어머님께서도 가야금 산조가락을 가까이서 듣고 싶다고 오시고 싶다고 하셔서 와주시고(이런 호기심과 스스럼없이 어울려주시는 마음이야말로 얼마나 매력 넘치는 일인지! 실제로도 매력 한가득 어머님 ^^ 함께 해서 더 좋았다) 가야금 산조를 들려주신 영심선생님, 오카리나 연주자 희진선생님, 오카리나 2중주와 가야금 연주를 보여주신 심선생님까지 어마어마한 특별 순서까지 감상할 수 있었다. 누군가의 거실에서 이렇게 가까이 맑은 오카리나 소리를 듣고 가야금 소리를 듣게 될 줄은 몰랐다. 놀라운 경험! 실내에서 바로 코 앞에서 듣는 우리 가락과 정효가 말한 대로 뻐꾸기 소리 같은 청아한 오카리나 소리를 마주하니 감격스러웠다. 두 분 다 실제 악기를 다루고 연주회도 하시는 귀한 선생님들이다. 거기에 내가 배우는 영어 '게이트웨이'책 주인이시기도 한 희진선생님도 드디어 만났다! 나에게도 우리 아이들,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에게도 신선하고 즐거운 자극이 됐다.
초상권이 있어 올릴 순 없지만 잘생긴 효*효형제의 바이올린 연주와 노래도 멋졌다. 에반게리온과 도라에몽 주제가까지! 도라에몽 노래와 가사가 이렇게 좋은지 처음 알았다.
방마다 또 돌아다니며, 순서마다 휘젓고 에너지 발산을 하는 선율이 때문에 사회를 보는 중에도 부글부글 속이 끓어올랐지만, 그것도 잠시, 아이를 살펴주고 챙겨주신 저마다의 손길에 나도 편하게 마음을 누그려 음악과 맛있는 음식, 즐거운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마음이 곧 편안해졌다. 아이들에겐 도전하고 작은 무대지만 서 보는 기회가 되고 어른들에겐 한 해를 마무리하며 또 다정하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힐링의 시간이 됐다. 음악의 맑고 강한 힘을 우리가 함께 나눌 수 있어서 감사했다.
올 한 해 만남 중에 심선생님과 혜진쌤, 또 이 자리에 함께 하지 못했지만 윤하쌤까지 이분들은 올 한 해 만난 인연 중에서 나를 초청해 주고 두 팔 벌려 안아주고 가장 많이 다독이고 함께 하자고 말해주고 책으로 이야기를 건넸지만 결국 삶을 나눈 고맙고 좋은 사람들이다. 나를 세워주고 일으켜주는 사람, 나에게 더 넓은 세상이 있다고 말해주는 사람들. 나를 끊임없이 주저앉히려 하고 작아지게 만드는 사람은 어쩌면 이런 사람들과 종이 한 장 차이인지도 모르겠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그대로 인정해 주고 경청해 주는 모습부터 나는 늘 마음이 열린다. 내가 못 본 세계를 알려주고 힘들 때도 꾸준히 옆에 있어준 사람들, 언제나 그 자리에서 환영해 주고 같은 '이야기를 품은'사람들이야말로 빛나게, 빛으로 나를 이끌어주고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아기 예수님의 빛을 따라 한 해 동안 즐겁게 해 준 감사한 분들과 함께 하는 행복한 이브를 누렸다. 개성 있는 아이들의 노래와 연주 모두 듣고 있는 내내 흐뭇하고 기분이 좋았다. 상을 잠깐 옮기다가 엄지발톱이 부딪혀서 피가 나고 다쳤는데도 마침, 그전 날 발톱을 깎아서 다행이지 뭐, 하고 넘어갔다. 세상에, 발톱이 부딪히고 살짝 깨지고 피나서 아픈데도 내가 행복하고 감사를 떠올릴 만큼(나는 원래 엄청난 엄살쟁이다ㅋㅋㅋ)
나는 이 귀한 인연과 사람들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았구나, 한 번 더 느낄 수 있었다.
심선생님 말씀 중에
올 한 해가 참 좋았어요!
그 어느 때 보다, 그런데 이 말을 제가 작년에도 했다고 하더라고요!
이 이야기를 하면서 웃음을 터뜨리신 선생님. 웃음소리가 생생하다.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미소를 가진 분.
여러모로 영감을 주시고 도전하게 만들어주는 선생님, 아이들에게도 두 팔 벌려 좋은 시간을 마련해 주셔서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날, 돌아오면서 선재가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어, 엄마. 그렇지?
하는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좋아서.
혜진쌤과 무겁게 책을 이고 지고 걸어오는 그 겨울밤 길이 생각난다. 동네에서도 길을 잃는 날 위해 늘 이쪽으로 가야 한다고 길 안내자가 돼주고 조금이라도 더 우리 집 쪽으로 걸음을 옮겨준 따뜻한 혜진선생님. 일 년간 게이트웨이 미술사를 읽으며 그 부분에 나에게도 분명 뭔가 자극이 된 것 같다고, 돌아오는 길에, 일 년 전 나와 지금 내가 미술, 그림에 대해 말하는 게 달라졌다고 분명히 그 달라진 지점을 느낀다고 이야기해 주는데
매일 조금씩의 '함께 읽기'를 통해 또 다른 세계가 조금씩 열리는구나 두근두근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그냥 동네 자주 모이고 가는 단골 헌책방에서 모이는 첫날, 심선생님도 기꺼이 그 자리에 나와주셨고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ㄷ
나경씨, 이야기할 때 힘이 느껴져요.
말씀을 재밌게 잘하시는 분이네요.
누군가 처음 만난 사람이 나에게 즐거운 호감을 가지고 있고 나누고 그날 일을 블로그에도 기록에 남겨줬다는 게 참 기분 좋았던 일까지,
일 년간 이어진 꾸준한 만남, 선생님으로 이어진 귀한 인연, 게이트웨이 영어 읽기와 일본어 '왕'초급 회화반, 그리고 단테의 '신곡'방까지.
놀라움과 즐거움의 귀한 동료들이 쌓이고, 인생의 좋은 스승님과 친구들을 만난 기분이 든다.
*메리 크리스마스! 노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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