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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Aug 16. 2024

일기는 일기장에 #01



너는 어머니를 끔찍이도 증오했다. 내가 본 너는 그랬다. "어머니는 끔찍해. 나는 어머니를 안고 같이 뛰어내리거나, 차를 몰아서 바다로 뛰어들거나 둘 중에 하나일 거야." 네가 자주 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일기장 사이에 소중히 메모를 보관해 두었다. 왜 그랬을까? 나는 모르겠다.


'서연아 이것도 가져가라. 오늘도 미안해.'


너의 일기장 사이에 너희 어머니의 메모가 끼워져 있었다. 뭐가 네게 미안하신 걸까.


"내가 엄마가 되어보니 참 별것 아닌 일로도 아이한테 다 미안하긴 하더라."


내가 이렇게 말하면 너는 정말 세상에서 부정당한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곤 했다. 내가 네게 살천스럽게 굴었나? 당황하면, 언니는, 언니는 몰라. 너는 목이 꺽꺽 메일 정도로 울음을 삼켰다. 나는 그게 피곤했고, 내 기분을 눈치챈 너는 "언니, 내가 미안해."하고 자리를 피했다. 그리고는 몇 개월간 연락을 안 할 때도 있었고, 며칠 만에 나타날 때도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너는 나와 함께였지. 너희 어머니와 우리 어머니가 동네 친구였고, 나는 갓 태어난 너를 구경하러 갔었다. 요즘처럼 "우리가 여기 와도 되는 거야?"라고 물어볼 필요도 없었고, 그게 동네에서 당연한 섭리인듯했다. 꽃바구니가 민폐라고 욕먹는 시절도 아니었고, 과일바구니, 백합이 가득 꽂힌 화환, 기저귀, 별의별 선물들이 병실에 가득했다. 아이를 낳아보니 예전 어머니들이 대단하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정신 차리지도 못했는데 너희 어머니는 너를 품에 안고 젖을 물리고, "이거 봐. 얘가 서연이야." 귀엽다.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동네에서 너는 아이돌 같은 존재였다. 일회용 카메라를 들이대면 자동으로 다리를 꼬아대는 아주 작고 잔망스러운 아이였지. 너희 아버지는 펜탁스를 멋지게 들고 다니시던 동네에서 그래도 부티가 좀 나고, 좋은 분이라고 기억했고, 너는 그걸 몇십 년 뒤에 정정해 주었지. 너희 집은 어느 날 갑자기 이사를 갔고, 우리는 몇 년을 떨어져서 살았다. 어느 날, 우리 엄마가 그러는 거야.

"서연이 봤다."

서연이를? 엄청 예뻐졌겠네.

"아니, 아가 까무잡잡 하이 새카매져갖고 눈빛은 음침하고... 그 집안 망하고 아도 하나 배리놨네. 이름도 바깠더라 재수 사납다고, 민서란다. 난 못 외우겠다 마, 서연이라고 부를께, 캤다."

나는 상상이 잘 되지 않았고, 다 자라 그렇게 여유가 생긴 우리 집과 허물어진 네가 다시 연결되었다. 그건 또 십여 년간 이어졌고, 훗날 이름을 은채로 직접 한번 더 바꾼 너는 우리를 버리고 떠났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 양파를 깍둑썰기해서 양송이버섯을 반으로 잘랐다. 닭고기를 소금, 후추를 뿌려 밑간을 해두고 프라이팬에 노릇하게 구운 뒤에 잘라두었던 양파와 양송이를 넣고 볶다가 물이 나오자 밀가루를 조금 뿌려서 섞고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맛있는 냄새나요."


아들인 종현이 비밀번호를 누르며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학원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입을 헤 벌리고 말했다. 나는 웃으며 맛술을 넣고 바글바글 끓인 다음 생크림을 부어서 소금후추로 간을 했다. 크림스튜가 끓는 동안 짧은 영상을 틀어놓고 보고 있었다.


"오늘 아침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한 아파트에서 30대 여성이 욕조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이 여성은 약물을 과다 복용한 후 스스로 손목을 그어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입니다. K 씨는 오전 7시경, 가족에 의해 발견됐으며, 즉시 경찰과 119에 신고되었습니다. 현장에 출동한 응급 구조대는 심폐소생술을 시도했지만, 안타깝게도 이미 숨이 멈춘 상태였습니다. 경찰은 현장에서 다량의 약물이 발견되었으며, 자살로 추정되는 정황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고인의 가족과 지인들은 그녀가 최근 극심한 우울증을 겪어왔다고 진술했으며, 경찰은 이를 토대로 정확한 사건 경위를 조사 중입니다. 이번 사건은 심각한 정신건강 문제와 관련된 자살의 심각성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고 있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주변에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혼자 고민하지 말고, 반드시 도움을 청하시길 바랍니다."


왜 이게 소름이 그렇게 끼치던지, 너한테 연락을 해보고 싶던지. 카톡을 하는데 답장이 없잖아. 제부한테 연락을 했다.


"호준 씨, 서연이가 연락이 안 되잖아. 서연이 뭐해요?"

제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침묵이 마치 마른하늘에 우룃소리처럼 느껴졌다.


"나 뉴스를 하나 봤는데..." 그는 내 말을 끊고 "은채가 맞습니다. 죽었어요. 자살이라 상 안 치르려고요." 나는 당황해서 전화를 끊어버렸다가, 그가 전화를 받을 때까지 몇 통이나 전화를 걸었는지 모르겠다. 제부에게, 다따가 무슨 말이야. 그러지 말아. 농담이라고 해. 은채가 자주 우울해하긴 했어도 걔 쫄보라 그런 거 못해. 앞뒤 없는 소릴 지껄여댔다. 나중엔 상만 치러달라고 애원했던 것 같다.


이틀 뒤 영정사진을 보는데 혼자 나는 머릿속에서 떠들었다. 서연이는 육개장 싫어하는데, 육개장 냄새가 장례식장에 진동을 하네. 서연이는 예민한데, 너는, 너는 이런 거 싫어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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