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몸으로 하는 취미
무엇이든 처음 배울 때는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아는 것과 하는 것 사이에는 수많은 단계가 있다. 그땐 안다고 생각하지만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 많다. 몸을 꾸준히 수련하면 경험이 텍스트의 틈을 메꾸거나, 이미 안다고 생각했던 것을 새로운 시각으로 볼 때가 있다. 몸을 보살피고 운동하고 배우면 몸에 대한 시각이 여러 차례에 걸쳐서 변한다.
운동을 시작한 계기는 즐거움 때문이었다. 운동하면서 땀을 흘리고 노폐물을 배출하면 이어지는 가볍고 상쾌한 느낌이 좋았다. 이후 몸의 감각들이 깨어나면서 몸의 컨디션을 섬세하게 알아차리고 몸의 근육을 분리해서 사용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가깝지만 낯설었던 몸과 한층 더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운동의 촉매제는 아름다움에 대한 욕심이었다. 예쁜 옷을 좋아하고 화장에 관심이 많았지만, 그전까지 몸이 아름다움의 수단이었던 적은 없었다. 몸은 타고나는 줄만 알았다. 운동으로 느리지만 꾸준하게 체형을 교정했다. 몸에 비해서 두꺼웠던 흉곽이 호흡법과 운동으로 줄면서 속옷 사이즈가 바뀌었다. 스트레칭과 순환에 집중하면서 허벅지 안쪽이나 팔 아래쪽에 집중적으로 쌓여있던 부종이 빠졌고 몸의 선이 매끄러워졌다. 굽은 어깨와 승모근으로 두툼했던 등과 어깨가 제자리를 찾으면서 상체 라인이 바뀌었다. 잡지에 나오는 모델처럼 화려한 몸매는 아니었지만, 몸의 변화를 관찰하는 기쁨이 있었다.
게다가 춤은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도구였다. 자세와 동작으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은 신세계였다. 몸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 사람 특유의 분위기와 이미지가 생겼다. 입으로 하는 말보다 몸으로 표현하는 말이 훨씬 강력했다. 몸동작으로 나를 가꾸는 것은 옷이나 액세서리보다 직접적이었다. 객관적 사실 속의 세계에서 살던 이과생에게 움직임을 통한 연출은 충격적이고 신선했다. 몸을 쓰면서 오는 외부의 피드백은 즉각적이었다. 순간순간 보이는 자세나 몸의 모습에 신경 쓰고 집착했다.
몸과 관련된 직업을 가지면서 관점이 책임과 의무감으로 바뀌었다. 운동 강사로 활동하면서 항상 건강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다. 강사로서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려면 건강이 직관적으로 드러나야 했다. 내 몸으로 체화하지 못한 건강 지식은 허공에 떠도는 이론일 뿐이었다. 특히 체형교정 운동을 가르치면서 언제 어디서나 바른 자세를 유지하려고 신경 썼는데, 자세에 집착하는 나를 발견했다. 평상시에 몸에 힘이 들어가거나 부자연스러운 자세를 꼿꼿이 유지하려고 애쓸 때가 많았다.
바른 자세는 이상적인 개념이었다. 체중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 자세는 있었지만, 어떤 자세라도 오랫동안 유지하면 몸이 경직되었다. 오래된 자세는 안 좋은 자세였다. 평소와 몸을 반대로 쓰면 좋은 자세였다. 사람마다 몸이 다르기에, 좋은 자세가 달랐다. 건강도 마찬가지였다. 인터넷에 떠도는 건강한 자세, 식단, 운동 같은 획일적인 가이드는 사람들의 몸 상태를 고려하지 못했다. 완성된 동작에 치중하다 몸을 잘못된 방향으로 써서 무리가 가기도 했다. 건강에 정해진 답은 없었다. 같은 사람이라도 몸 상태에 따라 필요한 음식, 운동이 달랐다. 건강은 정해진 도착지가 아닌 지향점이었다.
운동도, 다이어트도, 건강한 식단도 완벽을 추구하면 오히려 한계가 빨리 찾아왔다. 사람의 절제력에는 총량이 있었다. 엄격하게 조절하려고 할수록 죄책감과 스트레스가 차곡차곡 쌓였다가 한꺼번에 터지는 일이 많았다. 현실은 이상적이지 않기에, 때론 정답에서 벗어날지라도 때로는 쉬어주고 풀어주면서 유지할 수 있는 방향을 찾는 편이 꾸준히 지속하기 쉬웠다.
집착을 내려놓자 건강이라는 거대한 환상이 보였다. 건강은 그 자체로 목표가 아닌 수단이었다. 완벽함을 추구하기보다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관리하는 것이 수월했다. 살다 보면 살이 조금 붙을 때도 있고, 운동이 부족할 때도 있고, 피곤할 때도 있고, 모임이 잦아져서 식단을 신경 쓰지 못할 때도 있기 마련이었다. 매 순간을 건강을 기준으로 성공과 실패를 나누기보다, 연속적인 흐름 안에서 몸을 관찰하는 편이 도움이 되었다. 어제 느슨하면 오늘 좀 더 당기면 괜찮았다. 의무감을 내려놓자 건강에 유연함이 생겼다.
건강에 대한 시각은 즐거움에서 시작해서 아름다움, 책임감을 거쳐서 유연성에 이르렀다. 시간이 흐르면 또 달라질지 모르겠다. 지금보다 몸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면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때는 어떤 시선으로 몸을 바라볼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