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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터스 Dec 24. 2020

아티스트 데이트

 3. 일요일 아침, 소소하게 반짝이는

 




   따뜻한 빛이 눈두덩이 위에 아른거리고 사라진다.


    가만히 누워 눈을 꿈뻑, 감았다 뜨자 천장에 빛 그림자가 일렁인다. 어디선가 아침이 새어 들어오는 모양이다. 이불의 서늘한 촉감이 손바닥 안에서 바스락댄다. 가는 눈을 슬쩍 뜨자, 침대 옆에서 기다리던 새끼 고양이가 명치께로 펄쩍 뛰어오른다.


    밥 달라는 소리다. 주말 아침인데, 조금 더 자도 되는데. 이건 이길 방도가 없다.


    부스스한 꼴로 간신히 일어나 고양이 밥그릇에 사료를 붓는다. 사기그릇에 사료 알갱이들이 도로록 부닥치는 소리가 퍽 듣기 좋다. 한 알씩 꼬독꼬독 씹어 먹는 소리도 묘한 중독성이 있다. 고양이 사료 먹는 소리로 ASMR 컨텐츠를 만들면 어떨까, 실없는 생각을 하며 눈곱을 뗀다.


    일요일이다.


    같은 주말이지만 일요일 아침은 토요일 아침과는 다르다. 보통의 토요일 아침에는 늦게까지 이불속에서 꿈지럭대거나 숙취의 여파로 관자놀이를 쥐어뜯으며 꿀물 같은 것을 들이켜기 마련이지만, 일요일 아침은 그렇지 않다. 물론 토요일 밤에 술을 마시는 일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딱히 일요일 아침이라고 더 일찍 일어나 씻고 앉아 있는 것도 아니다.


    왜, 라고 물으면 그냥, 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지만 일요일 아침이라는 것은 정말로 그렇다. 일요일 아침에는 일요일 아침에만 있는 느긋하고 따스한 청량함 같은 것이 있다.


    말하자면, 일요일 아침은 창문으로 새어 들어오는 빛 위에 반짝이며 떠다니는 먼지 같은 것이다.


    반짝반짝하고 깨끗하고 조그마하고 다정하다.

    부드럽고 따스하며 느긋하고 조용하다.


    그러니 어떻게 방구석에 처박혀서 으아니내일이월요일이라니 같은 소리를 되뇌며 일요일 아침을 보낼 수 있겠는가.

    

    아침이 지나기 전에 나는 무작정 밖으로 나왔다. 날이 좋았다. 콧구멍이 시릴 정도로 공기가 깨끗했고 코트 안에 가벼운 티셔츠 한 장 걸쳐도 될 정도로 바람이 차분했다. 소소하게 호사를 누리기 좋은 날이었다. 십 년 된 경차가 툴툴거리며 먼지를 날렸다. 세차는 거르고 기름만 넣어, 안 밀리는 도로를 골라 한참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차가 밀리지 않는다면 목적 없이 그저 운전하는 것도 좋은 일이었지만, 한 시간 남짓 남은 일요일 아침을 내 낡은 차 안에서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서울 외곽의, 적당히 조용하고 마당이 있는 브런치 가게를 검색하여 네비에 주소를 찍는다.



    몇 번 다리를 건너자 차는 광명으로 들어섰다. 나는 네비가 알려주는 길을 따라 조금 더 안쪽으로 차를 달린다. 도로 양옆으로 논밭과 공터, 그리고 한창 올라가는 아파트가 지나간다. 광명 어디쯤에 뉴타운 단지가 조성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부근인 모양이다.


    새 아파트를 보자 번뜩 아쉬운 생각이 든다. 내 청약 통장에는 얼마가 들어 있더라, 어차피 가점받을 거리도 없고, 청약 넣어 봐야 내 점수로는 턱도 없을 텐데. 평생 가야 내 명의로 된 집 한 채 가질 수 있을까. 이 나이 먹도록 뭐하고 산 걸까. 내가 원하던 삶이 이런 것이었을까. 글 쓴답시고 컴퓨터 앞에서 키보드나 짤깍거리는 짓거리를 계속해도 되는 것일까.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남들처럼 월급 따박따박 나오는 직장에 취직해야 하는 게 아닐까.


    무거운 크레인에 매달린 철근이 건물 위에 덜컹 떨어진다.


    상념이 무거워 한탄이 꼬리를 문다. 일요일 아침에 할 만한 생각은 아니다. 고민해 봐야 나아질 문제도 아니다.

나는 창문을 열어 바람을 조금 들인다.


    액셀을 밟은 발에 조금 힘을 주자 초겨울 바람이 차 안을 한 바퀴 돌아 다시 빠져나간다.






    나는 새로 지어진 오피스텔 단지 상가 앞에 차를 세우고 브런치 카페로 들어갔다. 가게 앞 조그마한 마당에 잔디가 아직 파릇했다. 마당에는 흰색 페인트칠이 된 철제 테이블과 의자가 있었고 아이들을 데리고 온 젊은 엄마 둘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흙덩이가 마구 파헤쳐진 공터 앞뒤 옆으로 공사가 한창인데, 초겨울 맑은 햇살은 두어 평 남짓한 카페 마당에만 가득 쏟아진다.


    나는 마당 쪽으로 난 창가에 앉아 수플레 팬케익 한 접시와 홍차를 주문했다. 음식은 금방 나왔다.


    새로울 것은 없었다. 홍차는 곧 잘 먹는 브랜드라 아는 맛이었고, 폭신하게 입안에서 풀어지는 수플레 팬케익 역시 몇 년 전에 한참 유행하던 메뉴였다. 그래서 좋았다. 편안함은 익숙함에서 오는 것이다. 살짝 스모키한 홍차 향이 아침 공기 위로 스민다. 바람이 가만가만 레이스 커튼을 흔들고, 자수 뚫고 빛이 새어 들어온다. 그 사이로 떠다니는 먼지가 따스한 색감으로 반짝인다.


    작고, 조용하고, 느긋하다.


    나는 생각을 담지 않고 흘려보냈다. 그저 시간에 얹혀 가듯, 마음을 풀어놓고 차를 마시고 빵을 씹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산 위에서 깊게 숨을 들이쉬고 참는 것처럼, 무언가가 뻥 터질 듯 가슴을 가득 채웠다.


    나는 사기 찻잔에 홍찻물 부딪히는 소리가 또로록 나도록 홍차를 따랐다. 찻물 표면에 작은 거품이 일어 늦은 아침 햇살이 반짝 고였다가 톡, 하고 금방 사라졌다.


    낯선 곳에서 맞이하는 익숙한 시간들이 모이고 그 시간에 머무는 마음들이 쌓여

    어느 일요일 늦은 아침 어느 순간에 잠시 고였다가

    다시 흘렀다





                                                                                                                                          Written by. 남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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