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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터스 Dec 30. 2020

아티스트 데이트

4. 일상과 관계에 대한 짧은 단상




 



    안녕하세요. 라이터스의 번째 작가 유재입니다.


   저는 아티스트 데이트를 하는 동안 조용히 카페에 앉아 글을 쓰곤 했습니다. 이 글은 일상과 관계에서 벌어지는 질문에 답변하는 형식으로 쓴 글로, 이 사람은 이 질문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구나, 정도로 편하게 읽어주시면 됩니다. 저의 짧은 단상을 공유합니다.    




Q. [수식어의 이면] 대표, 교수 같은 권위 있는 지위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그들은 어느 유명한 회사를 나왔으며 대단한 것을 일궈냈다는 이러저러한 수식어를 가지고 있다. 갖은 인맥과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을 보며 난 그들이 가진 타이틀을 떼어 놓고 온전히 그들 그대로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꽤나 멋있지만 상투적으로 느껴지는 수식어가 거창하게 느껴졌고, 그들을 온전히 대변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수식어는 그들의 일부분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환경이 바뀌고 나 또한 전에 없던 수식어가 붙었다. 그리고 이 수식어를 완전하게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지내다 보니 어느샌가 나의 이름 석 자와 수식어 사이에서 서성이게 되었다.


    사람들이 어른의 나이를 지니면서 따라붙는 갖가지 수식어는 이들이 어떠한 인생을 살아왔는지 보여주며 누구인지 증명한다. 누구의 이름 뒤에 붙는 직함 같은 것들이 지금 와서 새삼 달라 보이는 건 무겁디 무거운 수식어의 질량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회사의 대표이거나 아주 권위 높은 상을 수상하는 등의 일들이 오랜 시간 흘린 땀으로 이뤄낸 것을 알기에, 완전히 수식을 떼어놓고 그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도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업적과 호칭을 논하는 것이 자칫 꼰대로 치부될 수 있지만, 아예 생략해 버린 채 상대방을 이해한다는 것도 때에 따라 오히려 가볍게 느껴졌다. 진짜 꼰대는 수식어를 핑계 삼아 권력을 휘두르는 거겠지.

 

    누굴 마주하던 부디 존재 그대로 바라보며, 상대와 내가 가진 수식어를 지나치게 높게 보거나 지나치게 낮게 보지 않게 되길 바라본다.




Q. [말의 감관] 당신은 어떤 말을 하는 사람인가요?


   2~3살 무렵을 기억하고 있다. 사실 너무 어려서 또렷하진 않지만, 이때 느꼈던 감관의 잔향만은 오롯이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난 이걸 마음으로 기억한다고 스스로 정의 내렸다.


    이 시절 흐릿했던 상황에 대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기억은 안 나지만 그때의 감정은 그대로 남아있어. 그걸로 기억하고 있는 거야.'라고 말해주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후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이 말을 그대로 복사하듯 내뱉어 버리는 사람이 있었다.


    말에 아무런 온도도 지니지 않은 채, 자신의 말을 돋보이는 용도로 툭 써버리는 그에게 그 말은 그렇게 쓰일 도구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 말이 자신의 이야기를 매력적으로 돋보이게 하는 장신구 이상의 의미가 있는 말이었음을 그는 알았을까.


    현대에 들어 말이 언어유희로 존재하고 그들의 존재를 각인시키는 휘발성 도구로 쓰여도 대화는 늘 사람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그것이 자신의 마음이든 타인과의 마음이든 대화는 늘 연결을 향해있다.


    이런 이유에서 나는 내가 하는 말에 이물질이 섞이질 않길 바라며, 생각을 전달하고 표현하는데 촘촘히 귀 기울인다. 노력이 많이 가는 일임은 분명하지만, 깊이 있는 찐득한 대화의 묘미도 있으니까.




Q. [내가 다치지 않는 용서]  당신이 생각하는 제일 큰 용서는 무엇인가요?


    최근 지인들과 용서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제일 큰 용서는 뭘까라는 질문에 날 힘들게 한 상대에 대해 '그럴 수 있지.'와 '그런 사람이 있었구나.' 정도이지 않을까라고 답했다. 어찌 보면 소극적으로 보일 텐데, 상대가 내 마음과 같지 않더라도 그럴 수 있다며 쉬이 넘어가는 것. 그리고 한때 그런 사람, 그런 상황이 있었지, 라며 덤덤히 기억을 흘려보내는 것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용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힘들고 슬픈데 무조건적인 관용을 베푸는 것이 독약을 들이켜는 것과 크게 다르진 않을 거다. 여전히 자신은 괜찮지 않은데 무분별한 용서로 인해 스스로의 숨구멍을 막히게 할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잘 지내다가 어느 날 기회가 된다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내가 미워했던 사람들 모두 다 함께 따뜻한 저녁 한 끼 하면 좋겠다. 그때쯤이면 우리는 서로를 다시 채울 수 있을지 모르니까.





                                                                                                                                               Written by. 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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