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일상의 기록
내 안의 아티스트는 유별난 움직임을 싫어한다. 있는 그 자리에서 주위를 관찰하기 좋아한다. 그중에도 사람 관찰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언제나 새롭고,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는데, 오늘은 오래된 글들을 관찰하기로 했다. 역시 제대로 된 글을 찾기 힘들다. 대부분 마침표를 찍지 못한 것들이고, 그나마 찍은 것들도 그리 변변치 못하다. 일상을 시처럼 쓰기를 즐겨하는데, 시는 어렵다.
언젠가 카드 뉴스를 보다가 댓글 시인(?)이라는 내용을 봤다. 댓글에 뉴스 내용을 가지고 본인의 의견을 시처럼 적어 놓은 것이다. 몇 장의 이미지와 내용들이 눈에 들어왔고, 뉴스의 내용과 시의 내용을 번갈아 가며 읽고는 적잖은 감동과 어떤 쾌감이 일었다. 나도 그이처럼 적어볼 수 있을까? 생각했다.
남의 이야기를 짓기 전에 내 이야기를 지어봐야 누구든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라. 그렇게 '시작'이 시작됐다. 시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시를 짓는 일이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담는 마음 또한 진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나 재미없는 사람이 된 것일까?
일상을 기록하는 일을 했다. 특별한 일이 생기면 기록을 했다. 시간이 나면 그 기록을 보면서 글자를 늘렸다. 기억을 기억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다만, 그 모습이 내가 느꼈던 감정의 잔상으로 조금 바뀔 수 있다. 그러나 감정은 기억을 더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도록 해주는 역할을 한다. 일상을 쓰는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내가 느낀 감정이 무엇인지, 어떤 단어로 설명이 되는지 지각하는 게 중요하다.
글을 이어가기 앞서 우리 할머니 이야기를 해야겠다. 어린 나이에 시집을 와, 전쟁을 겪고 인천이라는 곳으로 피난해 판잣집을 짓고 터를 잡았다. 돈 잘 벌던 남편을 둘째 돌이 지나 여의고, 폐지를 주워 고물상을 전전하면서 살았던 분이다. 다행히도 둘째 딸애가 소싯적에 일을 좀 해서 할머니 말년에는 손주들 얼굴 보면서 사셨다. 나 어릴 적에 손에 백 원, 이백 원 쥐여주시면서 바가지를 머리에 올리고 거울 앞에서 사각사각 머리를 잘라주셨다. 아버지의 호통을 막아주는 방패도 하셨다. 내가 놀려고 휘 둔 나뭇가지에 얼굴을 상하기도 하셨다. 자식들 키운 고단함 때문이었을까. 할머니의 표정은 언제나 감정을 알 수가 없었다.
장황하니 글에 또, 두서가 없어졌다. 19년 2월 21일. 그날에 쓴 나의 일상은 할머니에 대한 감정이다. 글로 하려니 복받치고 상기돼서 머릿속이 얼얼하다. 오늘은 20년 10월 3일. 생생하게 기억되는 그 날, 그 장면에 나는 지하철에 앉아 있다. 부끄럽지만 그날의 일상을 나누고 싶다.
어제 이른 저녁부터 불광에 갔었다.
지금까지 미뤄뒀던 숙제를 하려는 심경이었을까. 안에 뭔가 결심이 가득했다. 그간 본업 아닌 일을 수고하느라 고단했던 차에 사일이라는 어마어마한 휴무가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집안일도 마쳤다. 밤이랑 산책을 하고, 점저도 먹고, 빨래도 밖에다 널고, 방도 쓸고 닦았다.
지에스 이십오의 커피 우유는 언제나 신선하다. 결단을 하면서 마시기에 적절한 음료다. 7시에 작가와의 인터뷰를 위해 나는 5시에 집을 나선다. 언제나처럼 상상청 1층은 휑하니 좋다. 마치 어서 와 불을 피워달라고 재촉하는 것 같다. 역시 미리 도착해 준비해야 마음이 놓인다. 허파에 바람도 들었고 마음도 단단하니 왠지 뿌듯했다. 할 일이 있다는 것.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것.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인터뷰가 끝나고, 두 번째 시간이었다. 생각보다 작가님들의 발언이 많아졌다. 질문도 첫 시간보다 많았다. 내가 귀퉁이에 앉아 작가님들에게 몇 마디 내드렸더니 적극적인 질문이 나왔다. 답하기에 급급했지만 내심 좋았다. 작가님들의 의욕이 커진 것 같았다.
라이터스가 이제야 일을 하는 듯했다.
끝나고 현석 작가님이 남아 글을 보여주셨다. 첫 시간과는 조금 다르게 다가오는 걸음 같았다. 라이터스는 그렇게 일을 한다. 몰래몰래 살금살금 조심조심. 얄밉다. 뭔가 해보겠다고 나는 사무실 책상 위에 노트북을 열었다. 몇 시간 전에 찍었던 영상을 편집하는 작업을 했다. 파일을 만들고 저장을 안 해서 정확히 말하면 나는 총 세 개의 영상을 만들었다. 짜증 난다.
오후 2시 8분. 어젯밤이랑 산책을 나가던 시간이었다. 어제보다 쌀쌀해진 바람은 눈꺼풀을 잡아당겼다. 겨우 몇 걸음을 걸었다고 잠이 다 달아났다. 눈이 충혈된 게 느껴졌다. 집으로 가는 열차 안 풍경은 너무나 일상적이라 왠지 내 표정이 의식됐다. 부천 즈음 갔을까? 누나한테서 카톡이 왔다. 무거운 손가락을 겨우 화면으로 가져가 화면을 열었다. 피디에프 파일을 하나 열었고 천천히 읽었다. 자꾸만 입꼬리가 주저앉고 눈앞이 흐려져 읽히지 않았다. 지난 1년여간의 사이가 생각나기보다 이 글을 가장 먼저 읽어드리고 싶었던 할머니가 떠올랐다. 할머니, 이제야 저도 읽어봅니다.
"판결문"
판결문
어머니 이제 웃어요.
소리는 낮추시고
마음을 놓아요.
하늘에 앉으신 할머니는
언제부터인지
꿈에도 안 나와요.
우리 때문인가 하는 생각에
자꾸 고개가 숙여집니다.
그러니 어머니 이제는
웃어요.
소리는 낮추시고
마음을 놓아요.
요새는 몸이 고단해서 그런가 일상을 기억하는 일이 별로 없다. 쉬는 날에야 생각이 물렁해져서 자판을 두드리는데, 일을 하게 되면서 자꾸 감정을 놓친다. 몇 자 적는 이 시간이야말로 진짜 나를 위한 시간인 걸 생각하면 낭비된 시간들이 아깝다. 오늘을 기점으로 다시, 일상을 남기는 일을 해야겠다.
Written by. 손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