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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터스 Feb 03. 2021

아티스트 데이트

9. 심장의 무게





사자의 생전 행위를 판정하는 아누비스.


    고대 이집트의 신화에 나오는 장면이 있다. 파라오들이 저승에 가면 죽음의 신 ‘아누비스’를 만나게 되는데, 그는 저울을 가지고 기다린다. 파라오는 자신의 심장을 도기에 담아 그 앞에 서서 상과 벌의 판결을 받는다. 그의 저울 한쪽에는 깃털이 올려져 있고, 다른 한쪽에 자신이 가지고 온 심장을 꺼내 올려놓는다. 그것이 죄의 무게를 저울질하는 것이라 해서 깃털보다 가벼우면 벌을 피하고, 상을 받아 신과 같은 능력으로 영생을 살아간다. 깃털보다 무거워 기울어지면 죄가 많다고 판단되어 벌을 받게 된다. 그 벌이 무엇인지는 말도 못 하겠다.


    이 신화에서 죄의 무게를 심장으로 저울질한다는 것이 상당히 상징적으로 느껴진다. 죄의 무게가 심장에 쌓이는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 생물학적으로 인간의 심장의 무게는 약 300g~600g이다. 대부분 근섬유 조직으로 되어 있고 혈액이 모두 들어가면 약 900g 정도로 무거운 기관에 속한다. 이런 심장의 무게를 죄의 무게로 판단하는 것이 어찌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평생을 살아오면서 지은 죄가 심장에 쌓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 인생을 살아보기도 전에 가슴이 부풀어 터져서 죽어버릴 것이다. 조금 더 현실적인 생각으로 접근하면(물론, 말도 안되는 생각이다.) 대부분인 근섬유 조직의 밀도의 차이로 무게의 변화를 말할 수 있다. 심장이 빠르게 움직이면 그만큼 근육이 파열되고, 재생하기를 반복해서 근섬유의 밀도가 높아져 무게가 변화할 것이다. 

    

    다만, 이런 판결을 받는다면 위의 가정에 따라 운동선수나 육체적 노동을 많이 한 사람들이 대부분 말도 못 할 벌을 받고,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좋은 삶을 살지 않더라도 상을 받아 신처럼 영원을 살 것이다. 이렇게 정의롭지 않을 수 없다. 신은 정말 ‘지 맘대로 심판을 하는 것인가?’ 의심해야 한다.


    내가 믿는 신은 그렇지 않다. 내가 기억하지도 않은, 뉴런에 남아 있지도 않을 하찮은 선행을 알고 계산해 나에게 상을 내려야 한다. 그렇다면 다시 말도 안 되는 가정을 하자. 심리적인 부분을 포함해서 개인의 죄의 무게를 측정 한다고 할 때, 비로소 공명정대한 심판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마치 뇌 속에 있는 뉴런 같이 심장의 근섬유에 죄의식이 기억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죄의식으로 뛰어 재생된 근섬유의 무게를 달아 죄를 판결하는 것이다. 잘못을 저지르고 긴장을 하거나 일이 탄로날까 걱정하는 불안한 감정은 심장을 뛰게 하고, 그 기억은 미세하게 재생되는 근섬유에 새겨져 아누비스 앞에 가는 날까지 안전하고 정확하게 간직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죄의식을 가장 순수하게 표현하는 감정을 ‘죄책감’이라고 말하고 싶다. 후……. 이 말을 듣기 위해서 지루하기 짝이 없고, 말도 안 되는 생각들을 읽어줬다. 고맙다.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 죄책감. 심장 박동을 이토록 직관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감정은 아마 몇 안 될 것이다. 잘못을 판단하고 싶으면 상황을 돌아보며 자신의 숨소리를 가만히 들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이 감정을 처음 직면한 느낌을 말하자면 이렇다. 사람만 한 송곳이(상황에 따라 크기는 달라질 수 있다.) 절벽 끝에 서 있는 사람에게 달려들지 못해 안달이 난 것처럼 부들부들 떨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불안의 원인이 되어 우울을 유발한다. 자신감을 잃고 주의를 떨어뜨려 행동이 소심해지고 사소한 자극에도 깜짝 놀란다. 이렇게 며칠을 버티면 두 가지의 사람으로 나뉜다. 나락으로 떨어진 감정선을 다시 정상궤도로 올리는 사람과 그렇지 못하는 사람. 밑바닥을 기는 잠정을 추스르는 일은 정말 말도 안 되게 어려운 일이다. 눈을 뜨는 일도 감는 일도, 옷을 챙겨 입거나 끼니를 정하는 일도 중요함을 잃는다. 사람이 할 짓이 못 된다.


    어느 오락 영화에 나오는 재밌는 대사가 있다.



    “어쩌것어 18년 살았는디.”



    이번 주 나의 데이트는 죄책감의 경험이다. 이번 데이트를 통해 “삶에서 죄책감을 빼면 심장의 무게는 깃털이 되겠다.”고 말하고 싶다. 인간성 존재의 증거라고 말하고 싶다. 어떤 경험이 어떤 감정을 만들던 간에 죄책감을 경험한다면 어서 빨리 용서를 구하고 그 구렁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Written by. 손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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