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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터스 Jan 27. 2021

아티스트 데이트

8. 별 볼 시간






    강에도 결이 있다는 생각 들 때 한강으로 왔어. 다리를 건너는 지하철 소리, 강 저편에서 멀리 가는 자동차 불빛, 강에 있으면 늘 어제가 생각나니까. 돌아보기 전엔 볼 수 없는 어제가 있지. 꼭 거울 속 뒤통수 같애. 그림자는 뒤돌면 볼 수 없으니까, 뒤통수는 볼 수가 없어. 끊임없이 맞은 뒤통수에 대해 생각하다가도 흔들리는 나무의 폼을 바라봤지. 저 나무는 왼편으로 흔들리다가도 다시 오른편으로 돌아오는구나. 아무 생각이 없을 때 한강을 와. 한강엔 생각이 차고 넘치니까. 이따금 생각이 범람하는 시기가 있어. 고대 이집트 노아의 방주처럼, 다가오는 생각에 잠긴 적이 있다.


    강의 물살을 계속 바라보면서 한 곳으로 흘러가는 물살들의 중심은 어디일까 고민했어. 엄마한테 성공하겠다고 말한 지도 5년이 지났다. 중심을 못 잡는 삶이 무서워서 20대 초반에 담배빵을 지졌지 6미리로 한 번 1미리로 다섯 번, 할 때마다 살 타는 냄새가 났고, 늘 술에서 깨지만 일어날 수 있는 생각은 모두 사라졌어. 살 타는 냄새를 맡아본 적 있니? 그것은 생각보다 매캐하고 고기 굽는 냄새가 났다. 그러니까, 중심을 잡겠다고, 엄마한테 소고기를 사주겠다고 한 지도 5년이 지났다. 나는 꽤 많은 돈을 벌었지. 공모전으로 40만 원을 벌었지. 알바비로 175만 원을 받고 놀라지 마, 공모전 상을 세 개나 받았어. 그건 생각보다 대단하고, 생각보다 짜릿하고, 생각보다 놀랍지. 늘 받는 상들을 보면서 물살이 가리키는 방향에 대해 생각했어. 상을 받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고, 생각보다 어렵고, 생각보다 더 멀구나. 물살이 흘러가는 방향은 늘 한 곳인데, 왜 그곳을 찾아가기 어려울까? 쉽지 않다고 생각했어. 예전에 글을 쓰던 친구들은 생각 없이 쓰다 보면 그렇게 정답에 도달할 거라고 했지. 우리가 정답에 도달했던 건 강 하류? 혹은 중류 즈음일 거라고 생각해. 나랑 같이 글을 쓰던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정답에서 정착하지. 모래는 물을 빨아들이는 습성이 있으니까. 우리는 그렇게 빨리고 빨려 정답엔 도달할 수 없지.

 

    정답은 바다일까? 고민한 적도 있었어. 우리는 흐르고 흘러 바닷속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 아도 바닷속으론 갈 수 없겠지. 몇 번을 멍 때린 순간이 있었지. 물멍에 대해 생각하다가 수족관에 갇힌 어류를 보다가 얘네는 바다에 가장 가까우면서도 왜 가장 멀리 있을까. 그건 어쩔 수 없어. 잡혀버린 물고기는 이미 관상어야. 그건 그런 거지. 다른 거야. 우리는 물 안에서 농도가 있기를 바랐다. 소금물의 농도가 있기를 바랐다. 소금물의 농도는 늘 짜고, 대충 99%의 염분을 갖고 있다고 할 때, 우리는 어떻게 바닷물이 될 수 있을까. 걸으면서 생각했다.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서 생각할 시간이 없지. 다른 생각은 그런 생각 속에 막혔으니까. 물살이 하나로 흘러갈 땐 다른 물살에 끼어들지 못한다. 다음 물살이 지날 때까지 기다려. 아니면 다른 바람을 통해서 나아갈 수도 있으니까. 길을 걷자. 생각이 가장 많이 드는 길을 걷자.


    늘 종착지에 드는 생각은 매년 엄마를 어떻게 꼬실 수 있을까. 엄마에게 어떻게 내 문장은 정당화됐다고 아직 사람들이 알아주지 못한 것이라고 꼬실 수 있을까. 너는 그 정답을 아니? 나는 몰라. 정말 몰라. 엄마를 꼬셔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 문장으로 누구나 꼬실 수 있다고 말한 사람들이 생각난다. 어떻게 꼬셔야 하지? 물어보면 늘 자기는 여자 앞에서 은하수니 눈이 예쁘다 헛소리를 지껄인다고 말하지. 나는 그게 말이 안 됐어. 나는 어차피 아무도 꼬시지 못하니까. 내 문장으로 엄마를 꼬시기 바쁜데 너는 누구를 꼬시고 있을까? 문장은 결국 꼬시는 법을 몰랐던 거야. 너는 누군가가 사랑해서 그 문장까지 사랑한 거겠지. 우리 엄마는 나를 사랑해서 내 문장까지 사랑해줄까? 아니 우리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만, 먼 미래의 문장을 사랑해.라고 늘 되뇌던 날들. 한강의 모체는 늘 주변에 있는 산이다. 때론 구름이다. 밤의 한강을 걸으면 늘 그런 생각을 해. 문장이란 무엇일까? 나는 무엇이고 문장은 수많은 물살에 가깝지 않을까. 아무리 많아도 강의 상류나 중류에 정착하는 문장이 더 많았다. 나는 바다로 갈 수 없어. 바다로 가고 싶지만, 늘 문장은 중간에서 퍼져.

 

    중간에서 퍼질 때 문장을 옳게 보내는 법을 아니? 증발하면 늘 상류에서부터 다시 시작해. 우리는 아름답지 못하다. 나 문학상을 11개 받았어. 분명 올라가고 있어. 세 번 정도 책에 실렸고 한 번은 연세대학교 포럼 교수들한테, 한 번은 한 단체의 문집에, 한 번은 한 대학교 교지에 근데 아무도 나를 몰라. 한강은 늘 한강이지, 한강 외의 문장은 없다. 우리 물살한테 이름을 지어줄까? 저 물살의 이름을 또치로 한다면, 또치는 금방 다른 물살에 파묻혀 사라지지. 또치야 제발 다시 돌아와. 너는 또치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하니? 아니 또치는 돌아오지 않아. 또치는 저 멀리 갔다. 정말로 갔을까? 언젠가 갔을 거라고 생각해. 갔다고 생각하자. 우리는 또치를 알아볼 수 없고 또치를 지었다는 작명 센스조차 까먹을 거야.




    예전엔 산책을 즐겼어. 정말이야.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갑갑할 때 산책을 나가면 몸이 건강해졌다. 마음이 건강해졌다. 정말이야. 온몸이 이젠 아프지 않아. 정말이야. 한 번만 믿어줘. 정말이야. 강을 가면 바람이 갑갑하지 않았는데, 내가 쓴 작품 중에 바람이라는 작품이 있어. 아니? 한번 읽어줘. 아무도 읽지 못하는 작품이란 걸 안다. 나는 작품이 나온 문집조차 이제 기억하지 못하는데. 누구도 읽지 못한 채 사라지는 문장이 무서워. 정말이야. 정말일까? 문장은 늘 저편으로 사라지는데 정말일까? 차라리 사람들이 아무도 기억하지 못했으면 좋겠어.(제발 모두가 내 문장을 봤으면 좋겠어) 정말이야? 정말이야. 나는 늘 지인들에게만 예술가인 사람. 예술병에 가까운 걸 비꼬는 게 아닐까? 정말이야? 정말이야. 그러면 나는 늘 예술병인 사람. 강을 보면 엉엉 울지. 아무것도 못 돼서 성공을 못해서, 나는 엉엉 울지. 울 땐 울더라도 생각을 하지 많은 생각을 어떤 시상을 떠올리지. 이번에 한강을 소재로 글을 썼어. 한강의 그림자에 대해서 쓸 데 없이 큰 보름달에 대해서 사과하는 시간을 가졌어. 미안해 내가 미안해 정말 잘못했어. 결과는 10일 만에 나왔다. 응 떨어졌군. 생각을 하면서 오랜만에 내 본 공모전에 대해 생각했다.


    생각을 조금 이어서 올해는 분명 별 볼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공모전에서 너무 많이 떨어졌다. 근데 하늘엔 별이 없는 걸. 때마침 그믐달도 떴다. 그믐달은 웃고 있으면, 상현, 울고 있으면 하현? 맞나.라고 생각했다. 그믐달 주위로 어떤 별도 보이지 않았다. 아파트 불빛만 천천히 보이는데 내가 찾는 별이 없다는 거. 올해는 정말 별 볼 시간이야. 별을 보면서 문장을 만들자. 사실 별 볼 시간도 창모의 앨범이잖아. 나는 정말 따라 하는 거 아니면 아무 쓸모가 없구나. 누워서 별 보기엔 쪽팔려서 앉아서 별을 봤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별 볼 일 없는 시간이다. 별 볼 일 없는 문장들의 나열에 대해 나는 늘 고민했지. 결국 1도 쓸모없고 별도 볼 일 없는 문장들. 어쩌다 보니 올해도 다시 준비한다. 올해가 늘 마지막이라고 생각해. 나는 정말로 다시 글을 쓰지 않을 거야. 예전에 즐기면서 썼던 작품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나는 분명 문장을 쓰기를 즐겼는데 문장이 보이지 않는다.


    한강에도 끊임없이 가로등이 없는 곳이 있다. 그런 산책로가 있다. 길을 걸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정말 별 볼 시간이야. 있잖아, 예전 사람들은 별을 보면서 이정표를 따랐다며, 길 잃었다가 찾았다며, 기억나지 않는다.



    한강엔 아무것도 없어. 다만 끊임없이 슬프게 만든다. 눈물을 엉엉 흘리게, 나는 너무 행복하다.

 




                                                                                                                                              Written by. 윤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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