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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gelo Apr 10. 2021

<11> 구급대원 트라우마 극복ㄱing

 - 글을 써보니까 기분이 어떤가요?


상담사가 나에게 물었다.

그녀는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쓴다는 얘기를 듣더니

폭행사건을 소재로 글을 쓰라고 부추긴 장본인이다.


 - 그런데 굳이 취미생활에

폭행사건과 회사 썰을 끼얹어야 할까요?


내가 문의했다.

그러자 그녀는 강하게 긍정했다.

글쓰기는 최고의 치료법 중 하나라며.

상담사에 의하면 나의 트라우마는

폭행사건 때문만은 아닌 거 같다고.

이미 이전부터 본인의 업무에 질려 있던 찰나에

사건이 일어났고

이후 제대로 케어를 받지 못한 게

트라우마를 키운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모든 걸 글로 쓰다 보면 생각이 좀 정리될 거라며,

다 쓰고 나면 꼭 자신에게 보여달라며, 글쓰기를 추천했다.


하루에 한 편 꼴로 글을 쓰고 나면

내용을 쳐내는 데는 무려 이틀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다 쓰고 나서 읽어보니 폭행 트라우마에 대한 내용보다

조직을 '비난'하는 이야기가 가득 쓰여 있었다.

나도 좀 놀랐다. 아, 이건 너무 적나라한데...

애써 작성한 글의 절반 이상의 분량을 지워내곤 했다.


편집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의 트라우마는 모든 재판이 끝나고

민사소송 판결문을 열람하던 날 이미 사라진 거 아닐까?

내가 아무리 조직을 비판하는 글을 써봤자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별 수 없지 않은가.


지금도 불안증세는 나아지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항불안제는 반드시 휴대하고 다닌다.

안면 타격에 대한 공포증과 분노조절장애,

이로 인한 불안 증상은 오래도록 내 안에 남을 것 같다.


사고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듣게 된

간부들의 언행으로 인해

조직에 대한 실망감은 더 커졌다.

하지만 나와 살 부대끼며 근무하는 사람들은

책상에서 실적 쌓을 골머리만 굴리는

간부들이 아니라 현장 활동하는 동료들이다.

굳이 눈에 띄지도 않는 간부들과

쉐도우 복싱할 필요는 없다.

내 동료들은 나와 안 맞는 사람은 있어도

나쁜 사람은 없었다.

뿐만 아니라 나와 불화했던 간부들도

누군가에게는 좋은 동료일 것이다.


어찌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대수롭지 여기지 말자.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은 어찌하더라도

그것 나름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 것들이었다.

어찌할 수 있는 것들에 나의 에너지를 집중하자.




독서도 하고 운동하는 취미를 갖고

전문상담사에게 상담도 받아가며

스트레스의 크기가 상당히 줄어들었음은 인정한다.


'귀멸의 칼날'이라는 만화에 흥미로운 대사가 있더라.

혈귀를 물리치기 위해서

인간이 그들처럼 강력해질 필요는 없다고.

혈귀 자체를 약하게 만들면 되는 거 아니냐고.


가해자에 대한 것도 잊어버리려 노력했다.


그가 내게 휘두른 폭력은 용서할 수 없다.

하지만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던가.

폭행의 상흔이 가시지 않은 채 구급차를 타는 나도

2번 재판에 피소당한 그도

고달픈 삶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다.


나와 엮인 비극적인 그날 밤만 떠올리고

사람을 '술 쳐 먹은 상습 신고자' 라던가

'응징해야 할 범죄자' 취급하지 말고

고달픈 삶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자.

사람이 사람을 원망하고 저주해봤자 내 감정만 상한다.


언젠가는 담담해지리라고 생각하자.

잘 모르는 미래의 일은 가급적 좋아지리라고 기대하자.


시간이 지날수록 아픈 기억은

내 마음 안에서 곪아가고 악취는 퇴적된다.

하루하루 보낸 시간들을 돌이켜보며    

부정적인 생각이 남아있다면 흘려보내고

소중한 존재들을 떠올리는데 시간을 더 많이 집중하자.


생채기 난 자리는 상처에 새살이 돋듯

다른 생각들이 자라날 것이다.


지난 1년간 심리적인 문제과

조직에 대한 회의감으로

주위의 동료들에게 누를 끼쳤음을 인정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신임자의 각오로 업무에 적극적으로 달려들자.

변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미련은 최소한으로.

어차피 곪은 부위는 썩기 마련이고

자연스레 그 부위는 도려내 질 테니까.


여전히 주취자를 보면 얼굴이 찌푸려지고

혹여 욕설이라도 듣게 되면 가슴이 두근거리지만

그럴 때면 의식적으로 외쳐보자.

이 모든 것에는 끝이 있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걸.


온갖 방어기제를 사용해도 견딜 수 없다 싶을 때는

그땐 내가 쓴 수기를 찬찬히 읽어보리라.

바닥까지 떨어진 우울감과 분노의 좌표가

정비례 그래프처럼 완만하게 상승하여

마침내 담담해지는 과정을 다시 한번 경험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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