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수용소에서_'삶과 죽음'에 대한 단상

죽음이 있기에 삶이 있다.

by 제이쌤

갑상선암으로 갑상선 전절제 수술을 하고 9개월 정도가 지났다. 항암치료까지 끝내고 다음 진료 날짜를 잡을 때 "내년 여름에 오세요" 하는 말이 멀게만 느껴졌는데, 어느새 그날이다.


나는 내가 암수술을 했다는 사실을 거의 잊다시피 열심히, 즐겁게 잘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강검진에서 이상 징후를 발견했던게 작년 5월이었다. 그 이후 조직검사를 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수술 날짜를 잡고, 하던 일을 정리하고, 수술을 했다. 수술 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초조하게 시간을 보내고, 전이가 있었다 해서 항암치료 날을 잡고, 식단조절을 하고, 항암치료도 잘 끝냈다. 그런던 날들에 불면증도 조금 생기고 우울감도 당연히 조금 있었다.


다른 암들에 비해 '죽음'과는 좀 거리가 있는 갑상선암이었지만, 그래도 그 근처를 경험하고 나의 삶은 조금씩 변하고 있다.


나는 시선을 미래에 많이 두고 사는 사람이었다. 그게 옳다고만 생각했다. 현재를 즐기며 사는 사람들이 좀 무책임하지 않나 생각까지 했었다. 그러다 뒤늦게 나의 시선이 너무 미래에 가 있어서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고 산다는 걸 깨달았다. 열심히 사는 매일이 쌓여 미래가 된다는 걸 마음으로 깨닫지 못했었다.


수술 후, '죽음'을 먼발치에서 나마 만나고 나서, 나는 현재에 집중하며 살아보려는 중이다. 미래가 두려워 내딛는 걸음을 너무 주춤거리지 않기 위해,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들을 너무 미리 걱정하며 살지 않기 위해 나를 도닥여본다.


더뎌도 발걸음을 옮겨가는 내가 대견하다. 이제는 불면증 따위, 고단해서 잘 잔다. 내 갑상선을 대신해 주는 약도 매우 잘 챙겨 먹는다. 검진을 앞두고 이미 내 몸에 이상이 없을 거라는 걸 직감하고 있었다.

어제 검진 날, 수업 시간이랑 겹치면 어쩌나 습관처럼 미리 걱정했었는데, 무난하게 수업시간 전에 들어왔다. 일주일 전에 해놓은 피검사와 초음파 결과, 역시나 매우 좋단다. 암수치도 0이고, 호르몬도 잘 조절되고 있어 추가 검사도 필요 없다고 한다. 너무 내가 남의 일처럼 담담하게 듣고만 있었는지, 의사 선생님께서 궁금한 거는 없냐 물으신다. 그래서 물었다.

"혹시 재발 가능성은요?"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지금으로서는 1,2프로 정도.

전교 1등 할 확률 정도요."

"전교 1등은 안 하는 걸로요."


그렇게 가볍게 웃으며 진료를 마치고, 진료비 2,600원을 내고, 1년 치 약값 1,500원을 결제했다. 중증환자라 혜택이 어마어마하다.


오늘은 또 1년마다 하는 종합검진날이다. 어찌 날을 이리도 잘 잡았는지 연달아 이틀 병원행이다. 몰아서 끝내니 좋다.


의례적으로 하는 검사려니 하며 받던 검진인데 이제는 좀 떨린다. 나이를 나라에서 깎아줘서 다시 40대 갓 초반인 41살이 되었고, (실은 좀 억울하다. 어떻게 먹은 내 나이를..) 얼마 전 우리 나이 인구의 딱 중간 나이를 조사한 것이 45세쯤인걸 감안하며 아직 반도 안 산 젊디 젊은 나이지만, 건강을 신경 쓰며 살아야 할 나이는 확실히 맞다.


의도한 것은 아닌데, 최근 읽고 있는 책이 빅터 프랭크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다. 그래서 검진 내내 이 책을 읽었다. 게랄트 휘터의 <존엄하게 산다는 것>을 읽다가 전에 읽었지만 잘 와닿지 않던 이 책을 다시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 책에 '테헤란에서의 죽음'에 관한 일화가 머릿속에 맴돈다.

돈 많고 권력 있는 페르시아 사람이 어느 날 하인과 함께 자기 정원을 산책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인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면서 방금 죽음의 신을 보았다고 했다. 죽음의 신이 자기를 데려가겠다고 위협했다는 것이다. 하인은 주인에게 가장 빨리 달리는 말을 빌려 달라고 애원했다. 그 말을 타고 오늘 밤 안으로 갈 수 있는 테헤란으로 도망을 치겠다는 것이었다. 주인은 승낙했다. 하인이 허겁지겁 말을 타고 떠났다. 주인이 발길을 돌려 자기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가 죽음의 신과 마주치게 됐다. 그러자 주인이 죽음의 신에게 물었다.
“왜 그대는 내 하인을 겁주고 위협했는가?
그러자 죽음의 신이 대답했다.
“위협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오늘밤 그를 테헤란에서 만나기로 계획을 세웠는데, 그가 아직 여기 있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표시했을 뿐이지요.”


운명을 믿는 편이다. 운명인지 또는 '신'과 같은 절대적 존재의 힘인지는 알 수 없으나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은 분명히 있다고 믿는다. 히, '죽음'과 '인연' 같은 부분에서는 이다.


그렇다면, 나는 언제가 맞이할 나의 죽음 앞에서 의연하게 까지는 아니더라도 고통스럽게 받아들이지는 않도록 살아내 보련다. 너무 하지 못한 일들이 많아 억울해하지 도록,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현재들을 살아내 보련다.


그 극한의 상황에서 삶과 죽음 사이를 수없이 오갔던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다.

어둠이 있기에 빛이 있듯이, 죽음이 있기에 삶이 있다.


수면 내시경을 하고 나오니 몽롱하다. 약이 들아가고 정신이 나가는 그 느낌이 왠지 편안하다.

큰 일들을 끝냈다. 맛난 점심먹고 수업하러 가자!


병원에서 해보는 '죽음'과 '삶'에 대한 단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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