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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경수 Sep 10. 2023

여교사로 살면서 페미니즘 수업하기

백래시를 맞서서 꿋꿋이 페미니즘 수업하기

“XXX샘, 잠깐 나와서 얘기 좀 해요.”

같은 학년 담임을 하는 선생님이 교무실 밖으로 나를 불러내어 낮은 목소리로 내게 들려준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그 당시 나는 나의 학급반 학생 중 왕따를 당하는 한 남학생을 보호하다가 그 학년의 거의 모든 남학생에게 무언의 비난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남학생들이 내 페이스북 페이지를 뒤졌고 내가 페미니즘에 대해 쓴 글을 읽고, 내가 래디컬 페미니스트 웹사이트인 ‘워마드’의 회원이며 남여대립을 조장하는 수업을 하고 있다는 글을 페이스북 대나무숲(익명) 페이지에 올렸다. 그 중 한 남학생의 어머니가 담임 선생님인 그 선생님에게 ‘교사가 워마드를 해도 되나요? 고소감 아닌가요?’라고 물었다는 것이다.   



동학년 선생님의 말에 말문이 막혀 잠시 머뭇거리다가 “아, 영어수업 중에 지문이 여성주의에 관한 내용이 나와서 그에 관한 활동수업을 했어요” 라고 변명했다. 남학생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학생을 보호하려다 내 수업까지 사상검열 당하는 것이 몹시 모욕적이었다.  



내가 일하는 학교에서 일한 3년 동안 매년 영어 수업시간에 성평등에 관한 수업을 2차시에 걸쳐서 했다. 1차시는 성고정관념 타파를 주제로 토론 활동을 한다. 칠판을 중간에 선을 그어 두 부분으로 나눈 뒤 한쪽엔 ‘Like a woman’ , 다른 한쪽에 ‘Like a man’이라고 쓴다. 조별로 아이들끼리 평소 여자다운 것, 남자다운 것이라고 생각한 것을 적어본다. 여자다운 것에는 ‘be thin’(날씬해야 돼), ‘have to cook, take care of babies’(요리하고 아이들을 돌봐야 돼) 또 ‘cannot work after giving a birth’(아이를 낳고 일하지 못해)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2차시 수업은 좀 더 본격적인 페미니즘 수업이다. 각 조에 시사 잡지를 한 부씩을 나눠 주고 잡지 속 사진에 나온 남자 수와 여자 수를 세어보라고 한다. 보통 정치, 사회, 경제계에 주요인물이 사진에 실리고, 남녀 성비는 9:1정도 된다. 이어서 우리나라에 여성리더가 적은 이유와 더 많아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조별로 토론해 본다. 여학생들은 소리높혀 '강경화장관 같은 학생이 육성되도록 학교에서 제대로 된 수업이 이루어 져야한다', '성평등한 사회 분위기가 이루어져야한다' 같은 발언을 한다. 이 두번째 수업이 남학생들의 심기를 건드렸나 보다.    


교실속 아이들의 목소리


어려서부터 여자가 나서서 말 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배웠다. 남녀합반인 초등학교에서 반장선거를 나가면 묘하게 부반장으로만 당선되었고 반장은 남자아이가 되었다. 여고시절 나이가 지긋한 수학교사는 ‘너희들이 최고로 목표로 삼아야할 곳은 이화여대다. 왜? 이화여대 출신이 시집을 최고로 잘 가니까.’ 라고 킬킬 웃었다. 대학교 때 시위를 주도하던 한총련에서 여자 선배들은 정치범으로 수배중인 남자 선배들의 수발을 드는 역할을 주로 했다. 그러는 사이 나의 입은 소리를 잃어갔다. 이런 나를 변화시킨 것은 남자 중학교에서 근무할 때 겪었던 사건이다. 식당이 따로 없었던 그 학교에서 급식지도는 배식차가 복도에 배달되어 교사가 감독하는 형식이었는데 매 점심시간마다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여름날에 급식을 서로 먹겠다고 전속력을 다해 달려 나오는 중학교 1학년 남학생들의 땀냄새와 아우성이 복도를 가득 메우고 있는 와중에 나의 다리에 희미한 스침이 느껴졌다. 굵은 다리가 콤플렉스여서 치마를 잘 입지 않지만 에어컨 시설이 시원찮은 학교 복도에서 여름을 나기엔 치마보다 나은 선택이 없었다. 내 치마 아래 이상한 움직임을 감지하고 아래를 보았고, 그 순간 다리사이에 핸드폰이 놓여져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본능적으로 핸드폰을 든 손목을 낚아 챘다. 그것은 얼마 전에 전학 온 남학생의 손목이었다. 나는 그 길로 그 아이를 데리고 교무실에 갔다. 흰머리가 덥수룩한 학생 부장은 오히려 나에게 왜 치마를 입고 왔냐고 되물었다. 치마를 입은 내가 문제란 말 인가.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더 이상 잃을 말이 없는 지경이 되어서 페미니즘 스터디에 나가게 되었다. 그 곳에서 내가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여자 학생들에게 또 다른 침묵을 강요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올해도 페미니즘 수업을 또 한번 해 볼 것이다. 다음 날 우리학교 페이스북 익명게시판에 또 ‘메갈 교사 규탄’글이 올라올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런데 처음이 어렵지, 뒤에는 그런 반대 의견을 무릅 쓸 맷집이 점점 생긴다는 것이 느껴진다. 또 모른다. 내가 아이들의 마음 속에 무엇을 하나 심을지도. 그것이 지금은 아니더라도 나중에 어떤 싹을 틔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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