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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경수 Feb 12. 2023

나는 규지니어스가 될 수 있을까

내가 30대 후반이 되어서 레즈비언이 될 수 있게 영향을 준 책 2권 중 하나가 김규진씨가 쓴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이다. (다른 한 권은 김하나, 황선우의 ‘여자둘이 살고 있습니다’이다.) 김규진씨는 청소년기에 자신이 레즈비언임을 알게 되었고 그 사실을 숨기지 않고 다양한 학교내 퀴어동아리를 통해 사람들을 만나고 교류하였으며, 직장인이 된 후 지금의 파트너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한국식 ‘공장형’ 결혼식을 올렸다. 즉, 가족과 직장동료, 지인을 초대하여 축의금을 받는 공개 결혼식을 하여 공식적인 커밍아웃을 한다. 부모님은 오지 않았지만 이 결혼식은 매스컴에도 소개되었는데 이 것을 바탕으로 쓴 것이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이다. 김규진씨는 이후에도 ‘규지니어스’라는 이름으로 트위터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자신의 결혼 생활을 공개하여 많은 벽장 레즈비언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내가 김규진씨를 특히 주목하게 된 이유는 그가 좋은 대학을 나와 외국계 기업에 취직하였으며 전형적인 중산층 생활을 하며 중산층이 하는 결혼식을 성별만 ‘여-여’로 바꿔 올렸다는 사실이다. 나도 레즈비언으로서도 정상성의 삶에 편입할 수 있다는 희망을 김규진씨 때문에 가지게 된 것 같다.



애인과 동거를 하면서 우리 지역의 신혼부부들이 주로 사는 대단지 신축아파트 단지의 31평 집에 살게 되었다. 우리는 아직 김규진씨처럼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지만, 나는 이 (사적으로) 대단한 동거의 기쁨과 환희를 남에게 알리고 싶었다. 나는 39살이 되어서 ‘김규진’이 되고 싶은 욕망에 들끓었다. 동거와 동시에 부모님에게 커밍아웃했고 친한 직장동료에게도 알리고 집들이 파티를 했다. 인스타그램에 매일 애인이 해주는 음식사진을 올렸다. 그리고 점차 덜 친한 동료와 모임 선배들에게도 우리 관계를 알리기 시작했다. 2년전 동학년 담임을 했던 선생님을 복도에서 만나서 이사를 했다고 알리고, 동성애인과 동거를 했다고 뜬금없이 밝혔다. 옆자리 앉은 6개월 기간제 선생님에게 우리 사이를 말했다. 나는 김규진이 될 준비가 단단히 된 사람처럼 행동했다. 또 공개 결혼을 하게 된다면 직장의 상조회비를 어떻게 받을 것인지에 대해 고민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애인과 같은 취미거리를 찾기 위해 배드민턴을 시작했다. 우리가 가입한 배드민턴 클럽은 내 직장 동료들이 다니는 ‘교육청 배드민턴’ 클럽이었다. 가입조건이 교직원이어야 하는데, 애인은 교직원이 아니지만 내가 친한 총무님께 우겨서 가입을 시켰다. 이때는 호기롭게 우리 사이를 곧 밝히고 회비에서 가족 할인 혜택까지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총무님이자 내 전 직장동료인 K선생님에게 내가 애인과 동거 중이라고 미리 몇 개월 전에 밝혔다. 하지만 데리고 간 애인을 내 애인이라고 밝히진 않았고 친구라고 소개했다. 차차 소개할 기회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커밍아웃 했던 한 선배가 내가 없는 모임 자리에서 내 성정체성을 밝힌 것이 뒤늦게 알려졌다. 갑자기 찬물이 확 끼얹어진 기분이었다. 나보다 보수적인 애인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아주 화를 냈다. 이런 것이 말로만 듣던 아웃팅이구나. 갑자기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도 내가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겠구나. 그리고 내 직장은 보수적인 분위기의 공립 학교다. 나를 알기도 전에 나를 못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교육청 배드민턴 클럽에서 운동한지 5개월이 지나 2023년 1월이 되었다. 연회비를 새로 납부해야하는 순간이 왔는데, 애인은 재가입을 고민하고 있었다. 말은 즉슨, 내 직장동료들만 있는 곳에서 자신이 들러리 같은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의 관계를 밝히는 것도 꺼렸다. 나는 나와 친한 총무 K선생님에게 우리 관계를 밝히고 싶었으나, 애인이 반대했다. K선생님이 클럽의 핵심인물이라는 이유에서이다. 애인이 그렇게 느끼는 것이 나에게도 영향을 점차 미쳤다. 배드민턴 시간에 점점 늑장을 부리기 시작했다. 헬스장을 끊어서 배드민턴을 안 갈 핑계거리를 찾았다. 모순적으로 애인은 점차 배드민턴의 맛을 알아갔고 또다른 클럽에도 가입하여 배드민턴에 흠뻑 빠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배드민턴을 기기위해 옷을 입는데 애인이 내 운동복을 입는 것이다. 항상 내 차로 같이 클럽에 도착하고 같이 퇴장하였는데 그날 따라 옷까지 돌려 입는 것을 보여주면 우리가 같은 집에 산다는 것을 밝히게 되는 것 같았다. 갑자기 거부감이 들기 시작했다. 애인에게 물었다. ‘그거 입고 갈거야?’



우리 관계를 밝히지 말자고 말한 것은 애인이었으나 나까지 그런 식으로 나오니 애인은 불쾌해 했다. 애당초 내가 애인에게 사정해서 내가 다니는 배드민턴 클럽에 다니자고 했다. 그런데 내가 비겁하게 군 것이다. 나는 그동안 양성애자로 살아왔기 때문에 동성애자들이 겪는 것 만큼의 정체성 혼란을 겪지도 않았고 사회적으로 받는 불편도 겪은 적이 없다. 커밍아웃과 아웃팅의 뒷탈이 얼마나 지독할지 아직 겪어본 적이 없다. 내가 레즈비언이 되려고 결심했을 때는 오픈리 레즈비언으로 직장에서도 알려지는 것이 두렵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겪어보니 겁이 났다.



오랜 시간 내 인생에서 믿어 온 가치는 불평등에 맞서야 한다는 것인데 현실은 쉽지 않다. 내가 선택할 것은 무엇인가. 오픈리 레즈비언이 되어서 비난을 감수하고도 모든 곳에 공개하는 것인가. 아니면 아내와 나를 보호하기 위해 가려가며 보수적으로 커밍아웃하는 것일까. 뒤늦게 레즈비언이 되어 세상의 이면을 코끼리 뒷다리 만지듯 더듬거려 알아가고 있다. 어떤 세상의 면은 그 입장이 되기 전에는 알 수 없다. 확실한 것은 나는 내가 선택한 아이덴티티를 받아들이고 세상과 나는 적절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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