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 라고 말하고 싶을 때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무엇이냐 물어본다면 저는 주저 없이 ‘기다림’이라고 말할 거예요.
당장 나가야하는데 아이는 스스로 옷을 입겠다고 꼼지락 거릴 때 옷을 확 낚아채서 “빨리 입으라고 했지! 바빠 죽겠는데 왜 이렇게 꾸물거리니!” 라고 쏘아붙이고 싶은 것을 꾹 참고 기다리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분명 배가 고파 돌아가시겠다고 닦달하여 밥을 차려주었더니 세월아 네월아 밥 먹는 것을 지켜볼 때면 눈에서 레이저가 나왔어요. 에너지를 다 써버려 나는 기진맥진인데 집으로 돌아갈 생각 없는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언제까지 놀려고 저러나 쟤들은 힘들지도 않나.’ 아이들의 놀이를 마냥 기다리는 시간도 괴로웠지요.
그러다 아이를 기다리는 10초가 억겁의 시간만큼 길게 느껴져 속이 답답하고 터져버릴 것 같은 분노를 느끼기도 했어요. ‘도대체 언제까지!’라는 생각이 가득하니 1시간을 잘 기다려놓고 마지막 한 순간을 기다리지 못해 으악! 하고 폭발해버리기 일수였어요.
제 인내심은 간장종지만큼 작았어요. 나라는 사람의 사랑의 크기는 애초에 너무 작아서 두 아이를 키우고 품을 만큼 큰 사람이 못 된다 생각했어요. 참지 않고, 기다리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육아에서 기다림이란 단순한 기다림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더 힘들고, 더 괴로웠습니다.
‘빨리 좀 하지.’, ‘못할 것 같은데..’, ‘한참 걸리겠네.’ 라는 생각이 스칠 때면 '아이는 세상 모든 것에서 배움을 얻고 성장한다'고 마음을 다독였어요. 아이에게는 세상의 모든 것이 놀이이고, 배움의 과정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아이를 대하는 태도나 말투에서 마음의 여유가 묻어납니다.
+ 육아의 8할은 기다림이에요.
너무 뻔한 말이라 나까지 이 말을 보태야하나 싶지만 육아의 8할은 기다림이에요.
엄마가 아이의 성장을 돕기 위해 제공해주어야 할 환경적 뒷받침은 비단 사물에 한글 카드 붙여 노출하기, 영어 음원을 틀어주는 것만은 아닐 거예요. 서툰 손놀림이지만 숟가락을 잡고 스스로 먹어보게 하는 것, 삐뚤빼뚤 자를 것이 뻔히 보이지만 가위질을 하게끔 해주는 것, 요리는 엉망이 되고, 정리하느라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달걀껍질을 깨보도록 해주는 것, 혼자 운동화를 신겠다고 낑낑거리는 아이를 기다려주는 것도 아이에게는 새로운 도전이자 경험이고, 색다른 놀이가 됩니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엄마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던 아이가 무엇이든 자기가 하겠다며 엄마의 손길을 거절하는 때가 옵니다. 하루는 셔츠를 입혀주려는데 건이가 자기 혼자 옷을 입겠다며 내 손을 뿌리치고 뒤돌아 앉았어요. 아이가 첫 단추를 채우는 순간 잘못 끼웠다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두어 개 더 채울 때까지 말없이 기다려주었어요.
“건아, 단추가 하나씩 밀렸어.”
“어? 그러네?”
“다시 차근차근 해보자.”
첫 단추를 잘못 끼웠을 때 바로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라며 고치려고 했다면 무엇이 문제인지 명확하게 보이지 않아 맞게 채운 거라며 우기며 화를 내었을 거예요. 하지만 두어 개 더 채우고 매무새를 확인시켜주면 아이 스스로 깨닫고 처음부터 다시 해야겠다고 결정하게 됩니다. 서툴지만 단추를 스스로 채워보겠다는 아이의 도전을 기다리는 것도, 그 두어 개를 기다려주는 것도 모두 엄마의 기다림입니다.
단추를 다시 푸는 것도, 처음부터 다시 채우는 것도 해주지 않았어요. 고집 피우는 아이가 미웠던 것도, 금방 끝낼 것을 참 답답하게 군다며 아이에게 화가 나서도 아니었어요. 아이 스스로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다시 처음부터 해야 하니 아이가 힘들지 않을까요?”라며 아이가 애쓰는 걸 보는 게 마음 아프다며 아이가 뻔히 고생할 걸 알고도 도와주지 않는 것은 아이를 방치하는 것이 아니냐며 반문하시는 분도 계실 거에요. 이것은 기다린다는 말과 방치의 기준을 혼동해서 생기는 오해입니다.
방치는 사람이 성장하는 데 있어 마땅히 받아야하는 기본적인 요소들, 즉 따뜻하고 섬세한 돌봄과 감정의 수용 등을 충분히 받지 못하는 상태로 이러한 양육태도를 가진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버림받은 것과 같은 내적상처를 갖게 되지요.
흔히 방치된 환경에서 자란 엄마들은 따뜻한 엄마의 손길을 그리워했기에 내 아이에게는 아이를 살뜰히 보살펴주는 것으로 좋은 엄마의 역할을 하고 싶어 해요. 그것을 사랑이라고 믿습니다. 아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임에도 ‘엄마가 해줄게.’ 라며 하나하나 해주기는 하지만 정작 아이는 ‘나는 엄마 도움 없이는 못하는 아이’라는 메시지를 전달받게 됩니다. 결국 “엄마가 해줘. 못해.”라는 말을 하기 시작해요.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마음에 도와주었지만 아이의 지속적인 요구를 감당하기 어려워지면 아이가 스스로 해보려는 것 없이 너무 의존적이라며 하소연 해요. 내가 받고 싶었던 사랑을 아이에게 줌으로써 나는 내 아이를 방치하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아이의 경계를 넘나드는 육아를 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양육태도를 가진 부모들은 아이가 불편함과 어려움 없는 환경을 제공해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믿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기다림의 육아란 아이 내면에 스스로 성장할 힘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과 아이의 일은 아이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고 판단할 능력과 권리가 있음을 존중하는 데에서 오는 양육태도입니다.
시간이 좀 걸리지만 아이의 성장을 응원하고 기다려준다면 아이는 스스로 해냈다는 만족감과 성취감을 배워나갑니다. 아이에게 스스로 발전하고 지속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아이의 성장을 기다리고 응원해 줄 수 있을 거예요. 아이는 엄마의 두려움 없는 사랑 안에서 자신의 숨은 잠재력을 발견하고, 재능을 마음껏 뽐내며 자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