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자 확인 중입니다.
"어휴, 아이 하는 거 보면 화가 머리 끝까지 나는 거 보니 제 친자가 맞나 봐요."
한글, 숫자, 영어 등 큰맘 먹고 한 번 가르쳐보려다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거나 복장이 터질 뻔했던 적이 있으신가요? 내담자 중에 초등학교 교사가 있었는데 학교에서는 '어떻게 하면 잘 가르칠 수 있을까?' 고민하지만 정작 내 아이를 가르칠 때는 "이게 왜 이해가 안 돼?" 하면 버럭 화를 내게 된다고 말했어요. "이거 해보자!" 하고 학습지를 들이밀면 요리조리 피하기나 하고, 잡아서 앉혀놓으면 몸을 베베 꼬고 난리도 아니라고요. 자기 자식은 못 가르친다는 불고의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 친자가 확실한 것 같다며 자조 섞인 농담을 합니다.
+ 놀이 따로 학습 따로가 아니다.
싫다는 아이를 억지로 끌어당길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냥 손 놓을 수 없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무언가를 배울 때에 빨리 배우고, 잘 배우고, 오래 배울 수 있는 단순하지만 확실한 방법이 있어요. 바로 ‘재미’ 있게 배우는 것입니다. 재미는 뇌에 활력을 주기 때문에 재미있게 잘 놀기만 해도 '학습활동'을 하는 것보다 잘 배울 수 있어요. 아이가 좋아하는 놀이에 학습적 요소를 살짝 가미해보세요. 놀이는 어렵고 추상적인 개념을 쉽고 재미있게 받아들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봄에 아이와 함께 집 앞 놀이터에서 놀다가 길 한편에 핀 노란 민들레를 발견했어요. "민들레다!" 반가움에 외친 엄마의 한 마디에 아이의 시선이 민들레로 향합니다. 너무 흔해서 평소엔 눈길이 안 가던 들꽃이지만 민들레의 생김새를 살펴보세요. 이파리 모양이 세모 모양인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민들레 이파리는 뾰족뾰족 세모 모양이네.”라고 모양의 이름을 말해주세요. '뾰족한 부분이 3개 있어서 삼각형이야.'라고 말해줘도 좋아요. 주변에 세모 모양이 또 무엇이 있을까 찾아보기도 하고, 이파리를 손으로 뜯으면서 "세모 하나, 세모 둘, 세모 넷..." 하며 수의 개념도 알려줄 수 있습니다.
어느 날은 자연관찰 전집 중 민들레 편에서 읽은 것이 기억나서 “민들레는 뿌리가 땅속으로 1미터까지 내려간대.”라고 말해준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아이가 “1미터가 얼마만큼이야?”하고 묻더라고요.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강이 팔을 쭉 뻗어봐. 그 정도 될 거야.”
“뿌리가 기네? 왜 그래?”
“그러게. 왜 그럴까? 엄마도 궁금하네?”
“집에 가서 책에서 찾아보자!”
“그러자!”
줄자가 있다면 줄자를 꺼내어 1미터가 얼마나 긴지 알려줄 수도 있지만 유아 시기에는 자신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에 빗대어 설명해줄 때 빨리 이해하고 받아들입니다.
아, 민들레가 땅 속으로 뿌리를 깊이 내리는 이유는요, 물과 양분을 빨아들이기 위해서예요. 민들레는 바위나 아스팔트의 갈라진 틈, 자갈투성이의 황무지에서도 뿌리를 뻗고 자라요. 이런 특징 때문에 풀이 자라기 힘든 대도시에서도 민들레를 흔히 관찰할 수 있는 거랍니다.
민들레의 이파리를 나는 것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른 꽃들과 다르게 줄기가 아니라 땅에서부터 이파리가 올라온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어요. 민들레가 줄기가 없이 잎이 뿌리에서 나오는 이유도 흥미로워요. 납작하게 퍼진 잎들이 겨울 동안 뿌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대요. 이파리가 땅 속의 뿌리를 덮어 보호하고, 따뜻한 땅의 기운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해요. 이파리가 지표면 가까이 납작하게 뻗은 덕분에 쌩쌩 부는 바람도 덜 맞을 수 있답니다. 민들레의 생김새를 관찰하고 집으로 돌아와 민들레의 습성을 책으로 자연스럽게 연결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죠.
아이들이 놀이라고 무조건 다 재미있어하지는 않아요. 돌쟁이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을 초등학생에게 주면 흥미를 잃겠지요. 아이들은 어떨 때 재미를 느낄까요? 자신의 발달과제 수준과 맞는 놀이를 발견할 때에 가장 큰 재미를 느낍니다. 그래서 연령과 아이 발달사항을 고려하여 적절한 도전과제를 주는 것이 좋습니다. 자신감과 성취감은 극복하기 어려운 과정을 통해 배워요.
아이의 흥미와 재미, 적절한 도전과제 3박자가 어우러지면 아이는 시간이 흐르는지도 모르고 놀이에 빠지는데 이것을 '몰입'이라고 해요. 몰입하고 있을 때는 굳이 가르치려고 하지 않아도 아이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자신이 필요로 하는 때에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배웁니다.
놀이에 학습적 요소를 넣을 때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학습과 성취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엄마는 분명한 의도를 갖고 놀이에 참여한다는 점입니다. 이런 엄마들은 대게 아이와 놀면서도 무엇이든 하나라도 가르치고 싶어 해요. 아이가 연필을 한 번이라도 잡았거나 원하는 아웃풋을 비슷하게나마 내야 제대로 놀았다며 안심해요.
아이 교육에 의욕적인 것을 문제 삼는 것은 아닙니다. 자칫 아이의 흥미나 관심사, 감정이나 표정 등을 주의 깊게 살피기보다 놀이의 기준이 지식과 교훈 위주로 흐를 수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엄마가 원하는 방식의 학습을 강요한다면 당장은 원하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단편적인 지식을 융합하고, 확장하고, 재창조하는 능력 그리고 유연한 사고력은 배울 수 없어요.
이미 과중한 학습 푸쉬에 지쳐있는 아이들이나 완벽주의 성향을 띠는 아이들은 자신 없거나 어려운 것, 잘하기 어려워 보이는 것은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때는 시도해보지도 않고 포기한다고 힐난하거나 의욕이 없다고 노력이 부족하다며 다그칠 것이 아니라 한 발 물러서야 합니다. 순수한 놀이를 통해 지친 마음을 위안을 얻을 수 있도록 아이에게 시간을 주어야 해요. 아이가 문자나 숫자에 흥미를 보이기 시작한다면 그때를 기회로 삼아 보세요. 흥미를 보인다는 것은 배울 준비가 되어있다는 뜻이거든요. 과거 실패한 전력이 있기 때문에 재미있게 접근하도록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합니다.
먼 훗날 엄마와 아이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나눌 이야기는 엄마는 머리 싸매고 가르치고 마지못해 연필을 들었던 시간이 아닙니다. "우리 그때 이런 놀이했지~" 하며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을 만들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