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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ah Choi Dec 04. 2022

밖에 나가서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그래도, 갓 블레스 미

사진출처 https://pixabay.com/

 교실 문이 거칠게 열리는 소리에 일제히 아이들이 고개를 돌렸다.

 “할로!”

 히잉히잉 바보같이 하얀 이를 드러내고 일부러 천진하게 웃으며 등장하는 B의 모습에 아이들이 환호했다. 아이들의 반응이 커질수록 B의 행동도 아이들을 의식해서 더 익살스러워졌다. 눈썹을 일그러뜨리고 혀를 날름거리더니 의자를 빼고 앉는 자세도 평범치 않았다. 내가 헛기침으로 신호를 주자 살짝 나를 의식하며 윙크를 했다. 이어폰을 감는 B의 손을 본다. 가늘고 기다란 손. 어쩐지 재주가 많아 보인다고 나는 생각했다.

 수업이 다시 시작되었으나 아이들의 집중을 받았던 B는 쉬이 안정을 찾지 못했다. 다리를 떨고 연필을 입에 물고 잘근잘근 씹더니 또 한참을 책을 제대로 펴지 못했다. 옆에 있는 친구를 연필로 찌르고 친구의 지우개를 괜히 뺏어가 보고 주머니에 넣었던 이어폰을 책상 밑으로 대롱대롱 흔들기도 했다. 교실에 온 지 십 분도 채 되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다.

 “B!”

 짧게 이름을 호명하자 B가 군기가 바짝 든 군인 흉내를 내며 자세를 바로 잡았다. 아이들은 그 모습에 또 깔깔 웃었다. 그렇게 소란한 수업 시간이 끝났다.     



 인근 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다니는 학생들이 방문했다. 기말고사 실습 과정 때문에 센터에 와서 며칠 동안 아이들과 함께 수업도 하고 프로그램도 진행할 예정이었다. 한국어를 공부하면서도 가정이나 센터 밖에서 한국인 친구와 한국어를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어 안타까웠는데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언어가 잘 통하지 않아 서먹한 첫 순간도 잠시, 보드게임과 휴대전화 번역기, 공책에 연필을 사용해 그림까지 그려가며 서로 스스럼없이 소통을 이어나갔다. 그 속에서 단연 돋보이는 B. 서로 격식을 차리고 낯 가리는 분위기 속에서 B는 킬킬대며 옆에 앉은 여학생에게 나지막이 귓속말을 했다. 까르르 웃는 여학생에게 일순 모두의 시선이 몰렸다. 영문은 모르지만 기대감에 찬 눈빛을 한 채. 통통하고 호탕한 여학생이 웃으며 큰 소리로 말했다.

 “야! 쟤 내 남자 친구 아니야!”

 여학생의 손가락이 구석에 있던 남학생을 가리켰다. 검은 뿔테 안경을 낀 남학생이 놀란 생쥐처럼 구석에서 눈을 꿈뻑였다. 웃고 떠드는 사이 아이들의 거리는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때 B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뒤로 한 채 이어폰을 귀에 꽂으며 슈퍼스타의 퇴장처럼 과장된 손짓으로 인사를 하고는 교실을 빠져나갔다.

 “왜 먼저 가는 거예요?”

 호탕한 여학생이 아이들에게 물었다.

 “아, 동생 있어요. 동생 집에 와요. 할아버지 밥 먹어요. 청소해요. 이거, 이거 해요. 아, 몰라요. 선생님!”

 손으로 그릇을 씻는 동작을 하더니 답답해진 아이가 나를 불렀다.

 “초등학생 조카들 하교할 시간이라 시간 맞춰 집에 데리고 가야 돼요. 집에 할아버지도 계셔서 식사도 차려야 되고, 설거지해야 한다는 말이었어요. 아직 설거지란 단어를 몰라서요.”

 “아아…….”

 그러면서도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여학생이 다시 아이들과 활동을 시작했다.     


 일주일간의 활동은 아이들과 대학생들 모두 만족스럽게 마무리되었다. 대학생들은 그간 우리와 함께 활동하면서 찍은 사진과 손 편지를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정성스럽게 만들어 주었다.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는 전화번호도 교환하고 연락을 주고받기로 했다고 했다.     


사진출처 https://pixabay.com/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출근해서 수업 준비를 하는데 센터 복지사 선생님이 급하게 나를 찾았다. B의 누나와 매형이 센터로 찾아왔었다는 것이다.

 “일전에 왔던 학생 중에 한 명이 B와 친해졌다네요. 그래서 같이 약속을 잡고 만나자고 했는데 그걸 알고 난리가 난 모양이에요.”

 이성적인 만남이어서였을까? 아니었다. 위험한 장소에 가자고 한 것이었을까? 그도 아니었다. 평소에 음악을 좋아하는 B가 악기 연주를 배우고 싶다고 했었고 그걸 들은 학생이 토요일에 기타 연습실을 함께 가자고 했단다. 그런데 주말 외출은 B에게 불가한 것이었다. 이유는 ‘밖에 나가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이 일로 인해 B와 이야기하면서 알게 된 것 중에 놀라웠던 것, 그동안 B가 하루에 받았던 용돈은 센터에 오는 왕복 버스비뿐이었다. 거의 무일푼으로 다녔던 건데 어쩐지 쉬는 시간이면 아이들이 1층에 있는 매점에 가서 음료수며 과자, 라면을 사 먹곤 할 때에도 B만은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곤 했다. 그러다 장난스레 동생들이 먹던 과자를 빠른 속도로 낚아채서 한 줌 입에 털어 넣고는 다시 휙 던져 주는 일이 반복됐는데 그게 꼭 싸움의 원인이 되었다. 억울한 동생들은 울기도 하고 B에게 달려드는 경우도 있었다. 그럼 성격 좋던 B도 갑자기 얼굴을 붉히고 저를 향해 뛰어오는 아이들을 신경질적으로 밀쳐내 버리곤 했던 것이다.

 “주말에 버스비도 주기 싫으셨을까요?”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쉬며 내가 비아냥거리니 복지사 선생님이 오해를 풀 듯 말했다.

 “그게 아니라, 그 학생이 가자고 한 곳이 교회였나 봐요. 아시다시피 그게 좀…오해가 생길 수 있는 부분이잖아요.”

 “아…그럴 수 있겠네요.”

 내가 알기론 B도 고향에서 교회를 다녔다고는 했다. 물론 오해의 소지가 충분히 있을 수 있고 설사 서로 순수한 의도였다 하더라도 조심스러웠어야 하는 부분은 맞다. 미리 학생에게 주의를 주지 않은 내 실수였다는 생각도 들었다.


 교실에서 B를 만난 내가 웃으며 기타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날아가서 아쉬웠겠다며 먼저 이야기를 시작했다.

 “기타 칠 수 없어요. 슬퍼요?”

 “네. 슬퍼요. 누나 화나요. 매형 화나요. 할아버지 많이 화나요. 할아버지 말해. 병신. 병신.”

 할아버지라고는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누나의 시아버지이고, 누나 또한 엄밀히 말하면 엄마가 고향에서 재혼해서 만난 새아버지와 전처 사이의 딸이니 B와 혈연관계는 아니었다. B의 친아버지는 고향에 계시지만 생사를 알지 못하고, 새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친엄마는 생계를 이유로 B를 혈연관계도 아닌 누나의 집에 덥석 맡기고 홀연히 사라진 상태인 거다. 그러니 이런 수모를 겪으며 더부살이를 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건데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처사는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거 나쁜 말이에요. 안 돼요. 할아버지가 왜 그렇게 말해요? 할아버지, …”

 내가 더 말하려는데 B가 천진한 미소로 내 말을 막았다.

 “나 괜찮아. 갓 블레스 미! 갓 러브스 미! 아임 오케이!”

 실눈을 하고 하얀 이를 드러내며 바보처럼 웃는 B를 보고 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숨을 한 번 크게 내쉬고 세게 고개를 끄덕여줬다.


 “예스, 갓 러브스 유!”

 B 영화 <마스크>   캐리처럼 과장된 표정으로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어 나를 보여줬다.




*다문화센터에서 중도입국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실제 경험한 일을 바탕으로 수기를 작성했습니다. 실제 내용을 기반으로 했으나 등장인물이나 신원을 특정할  있는 부분은 임의로 각색하였음을 밝힙니다. 중도입국청소년을 이해하는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중도입국청소년 #다문화센터 #한국어강사 #한국어수업 #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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