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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ah Choi Jun 14. 2023

나도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한국에 온 첫날 고구마 밭에 간 사연

  M은 한눈에 봐도 패셔너블한 남학생이다. 화려한 무늬가 가득한 셔츠의 깃은 세우고 단추는 서너 개쯤 풀어 헤쳐 마르고 단단한 몸이 잘 부각되도록 한다. 손가락에는 알이 제법 큰 반지를 끼고 길고 가는 다리가 돋보이는 칼주름이 있는 면바지를 입는다. 바짓단 아래 신은 얄쌍한 구두가 M을 말해준다,고 나는 생각했다. 아무래도 M이 소위 말해 노는 것을 좋아하는 조금 되바라진 학생이겠거니 교사인 나는 그렇게 쉽게 첫인상을 결정지었던 것 같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편협한 데이터라는 것이 그렇듯 말이다.      

  역시나. 수업 중에 불쑥 들어 온 M은 인사도 빼꼼 하는 둥 마는 둥 하더니 구석진 자리에 삐딱하게 앉아 구레나룻을 쓰다듬으며 수업 내내 시선을 다른 곳에 두었다. 내가 물어도 한 번에 답을 하는 법이 없었고 그마저도 무성의하게 끄덕이거나 인상을 쓰며 선을 긋는 행동을 보일 뿐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쉽지 않은 수업에 또 더해진 쉽지 않은 학생이었다.      

  수업이 끝난 후 사무실 직원들이 M과 인사를 나눴다. 내가 이곳에 처음 오기 전까지 공부를 하다가 본국으로 돌아갔던 학생이었단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지 얼마 안 돼 센터에서 공부하겠다고 찾아온 거였다고 했다. 그렇게 며칠이 흘러 나는 M이 버릇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한국어를 못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외모에 비해 순하고 예의를 중시하는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 교실에서 M은 열아홉 살로 제일 나이가 많은 축에 속했었는데 동생들이 떠들거나 다툼이 일어나면 가장 먼저 중재를 하거나 훈계를 하곤 했다. 수업 중에 다른 곳에 시선을 두는 것은 불성실함이 아니라 수업에 오기 전후로는 줄곧 아르바이트를 하는 탓에 피곤했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선생님 저 이사했어요.”

  기초생활 수급자이자 장애를 가지고 있던 한국인 새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M의 어머니를 폭행하는 일이 잦았다고 했다. M의 어머니는 본국에서도 폭행과 도박을 일삼는 남편 때문에 홀로 사내아이 둘을 키우느라 억척스럽게 살았다고 했다. 괴로움이 극에 달하자 한국에 와서 재혼하고 새 가정을 꾸리게 된 건데 M 어머니에게 인생의 리셋 버튼은 쉽게 눌리지 않는 것이었나보다. 머리가 큰 M도 한국에서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은 엄마의 삶을 보는 것이 쉽지 않았기에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던 것이다. 배운 게 없고 환경이 안정적이지 않으니 열정만큼 한국어 학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이 M에게는 극복하기 힘든 큰 벽이었다. 입양도 안 되는 처지에 귀화 시험도 사실상 희망이 없는 상태인데 한국에서 장기 체류란 거의 불가능했다. M은 어떻게든 본국에 돌아가서 살고 싶어했지만 엄마를 두고 갈 수는 없었기에 악착같이 찜질방이며 식당 같은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았고 새아버지의 입에 담기 힘든 수모를 참고 견뎠다. 그러던 중에 새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술주정을 부렸고 어머니가 아이들 앞에서 자살 소동까지 벌이게 되자 M과 M의 어머니 둘만 이사를 나가게 된 것이었다.

  “뭐 필요한 거 있어? 한국에서는 이사하면 원래 선물 주는데?”

  내가 부러 잘 됐다며 축하 인사를 전하며 필요한 것을 물으니 M이 민망한 듯 얼굴을 붉히며 조심스레 입을 뗐다.

  “선생님, 쌀도 괜찮아요?”

  “쌀? 그럼! 주소 알려줘!”

  민망함에 얼굴이 벌개지면서도 안도의 미소를 짓는 M을 보니 속상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언젠가 수업 중에 한국에 와서 처음 먹어 본 음식, 한국에 와서 처음 가 본 곳, 한국에 와서 처음 한 일 등을 물어본 적이 있었다. 아이들 대부분이 공항에서 먹은 김치찌개라든가 휴게소  라면 같은 음식들을 이야기했고, 이 지역의 산이나 바다 같은 곳들을 이야기했다. 자연히 M의 순서가 다가왔고 M은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선생님 고구마 알아요?”

  “고구마 먹었어요?”

  “아니요, 고구마밭 갔어요. (고구마 캐는 시늉을 하며) 아르바이트!!”

  이해가 되지 않은 내가 재차 물었다.

  “첫날, 한국에 왔어요. 비행기에서 내렸어요. 집에 안 갔어요?”

  “네! 비행기 내려요. 버스 타요. 고구마밭 갔어요! 8만 원!”

  교실 안에 아이들이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각자 딴짓을 시작하는 동안 M과 시선을 맞춘 내가 한동안 말이 없자 M이 웃어 보였다. 숱이 많은 반곱슬 머리칼을 봉긋 세우고 화려한 무늬의 셔츠 깃은 여전히 세워져 있었다. 어제보다 더 말라있는 몸이 헤쳐진 단추 사이로 언뜻 보였고 다시 고개를 들어 M의 얼굴을 봤을 때 떼꾼한 두 눈이 발갛게 충혈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저 셔츠를 입고 M이 가는 곳이 고구마밭, 감자밭, 찜질방이 아니라 해변이 되길, 웅크리는 것이 익숙한 M이 훌쩍 점프하고 소리치는 것이 익숙해지길. M도 그럴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닌가?          


*다문화센터에서 중도입국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실제 경험한 일을 바탕으로 수기를 작성했습니다. 실제 내용을 기반으로 했으나 등장인물이나 신원을 특정할 수 있는 부분은 임의로 각색하였음을 밝힙니다. 중도입국청소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중도입국청소년 #다문화센터 #한국어강사 #한국어수업 #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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