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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ah Choi Nov 30. 2022

프롤로그-우리들의 이야기

'중도입국 청소년'을 아시나요?

  평소보다 빨리 센터에 도착했다. 오전 내내 G 아버지의 전화 목소리가 뇌리를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실 문을 열자마자 문가에 앉은 G의 손목을 잡았다. 놀란 G의 눈동자가 허공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어김없이 G의 눈 아래께에 반창고가 붙어 있었다. 그대로 G를 데리고 상담실로 갔다. 이윽고 센터장님, 팀장님, 담당 선생님, 통역 선생님이 들어왔고 찬찬히 G의 반응을 살핀 뒤 조심스레 몇 가지의 질문을 했다. G는 쉬이 대답하지 못하고 멍한 얼굴로 손에 쥔 과자만 입에 넣고 있었다. 아이의 모국어를 구사하는 통역 선생님과의 대화로 우리는 그간 G가 학대당한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심증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상담실에 있던 선생님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모든 불길이 사그라진 듯한 적막 속에 오롯이 아이와 둘이 남았다.

  “선생님한테 말하고 싶었어?”

  내가 묻자 아이는 단박에 나를 끌어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두어 달에 한 번씩 센터에 새로운 아이들이 들어왔다. 상시 모집이었고 아이들의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꾸려졌다. 국적이나 연령 또한 다양해서 열 살 꼬마 아이부터 스물한두 살이 된 아이들도 있었다. 처음엔 아이들도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 서먹해하면서도 쉬는 시간에 게임 따위를 하며 서로 손짓 발짓으로 소통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교실은 시끌벅적한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채워져 갔다. 처음부터 밝기만 한 아이는 없었다.

  G는 커다란 눈이 제법 똘똘해 보이는 아이였다. 처음 센터에 오기 전 며칠 동안 한글을 떼고 왔고 무엇이든 빨리 배워나갔다. 실제로도 똑똑한 아이였다. 아는 한국어가 별로 없을 때에는 내게 부러 세 자리 숫자를 곱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칠판에 숫자들을 써 내려가며 내 반응을 살피기도 했다. 내가 놀라는 표정으로 엄지를 들어 보이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쉬는 시간이면 아이들은 나를 에워싸고 재잘재잘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G는 유독 내게 관심을 받고 싶어 하던 아이였다. 어느 날은 책상에서 수업 자료를 정리하는 나를 억세게 잡아챘다. 놀란 내가 쳐다보자 G는 주머니에서 제가 먹을 법한 사탕이나 젤리 같은 것을 내 손 위에 쥐어 줬다. 그리고는 할 수 있는 모든 한국말을 동원해 내게 말했다.

  “나, 선생님, 주세요, 사탕이에요. 먹다.”

  자잘한 퍼즐 조각처럼 흩어진 말이었지만 단박에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이거 선생님 줘요? 선생님 먹어요?”

  G는 내가 제 말을 알아듣자 해사하게 웃었다. 아이에게 고맙다 인사를 건네고 아이 앞에서 날름 사탕을 입에 넣어 보았다. 볼에 보조개가 깊게 파이며 G의 하얀 치아가 드러났다. 아이도 나도 행복한 순간이었다.

    

  G는 학대 가해자인 새아버지와 친어머니로부터 격리 조치되었고 경찰 조사도 진행되었다. 이후 G는 아동보호 기관에서 안전하게 생활하며 심리상담과 병원 진료, 학업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이따금씩 G의 빈 책상을 가리키며 아이들이 G의 행방을 묻곤 했다. 나는 그냥 바쁜 일이 있노라 이야기하고 전보다 밝게 수업을 했다.

 

  마른 가지에서 커다란 플라타너스 이파리들이 힘을 잃고 떨어져 내리던 11월이었다. 아이들의 옷차림은 전보다 두꺼워졌고 그 안에 파묻힌 어깨는 더 구부러지고 있었다.

  아이들은 늘 내게 많은 이야기를 했다. 두서가 없었고 소란스러웠지만 대부분 제 딴에 즐겁고 웃긴 이야기들이었다.

  “선생님, ㅇㅇ이가 ‘선생님’을 ‘생선님’이라고 했어요.”

  “선생님, ㅇㅇ이는 돈 많아요. 매일 택시 타요.”

  아이들과 신나게 웃고 떠들고 장난을 치다 보면 곧 수업 시간이었고 나는 목표한 문법과 어휘를 사용해서 말하는 법을 가르쳤다. 아이들은 대부분 잘 따라와 줬고 과제도 잘 수행했다. 몇몇은 숙제를 하지 못하는 날이 더 많았는데 예를 들면 이런 사정이었다. D는 자폐가 있는 어린 동생을 돌봐야 해서 동생이 기관에 가 있는 시간에만 한국어 수업을 들을 수 있다. V는 엄마가 하는 식당일을 돕느라 센터에 오는 시간 외에 모든 시간은 식당에서 엄마를 돕는다. B는 두 여동생의 등하교와 집에 계신 할아버지의 식사를 챙긴다. H는 일을 하는 부모를 대신해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동생을 어린이집에서 데려와 이유식을 해 먹이고 집안일을 한다. 아이들을 저마다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고 대강의 사정을 한국어로 내게 설명했다. 아이들의 고향에서는 지극히 일상적인 일이라고는 하나 내 눈에는 어린아이들이 감당하기 버거운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나는 염려스러웠으나 아이들은 괜찮다고만 했다. 그 이상의 질문은 할 수 없었다. 그때 무언가 새삼스러운 깨달음이 생겼다. 왜?라는 것이다. 왜 더 이상의 질문을 할 수 없는가. 내가 여기에서 묻지 않으면 G처럼 말하고 싶은 아이들이 말을 못 하는 건 아닐까? 생각이 거기에 닿자 애가 닳았다. 그때부터 아이들에게 더 많이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아이들에게 좋아하는 음식에 대해 물었다. 아이들은 자신 있게 김치나 떡볶이, 불고기 따위의 이름들을 나열했다. 그리고는 한국에서 먹었던 음식 중에서 제일 맛없었던 음식에 대해 질문했다. 그러자 모두가 서로의 눈치만 살피고 먼저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아이들이 곤란해하는 그 질문을 더 하기로 마음먹었다. 좋아하지 않는 것, 더 나아가 정말 싫어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며 아이들을 응시했다. 수분 간의 침묵이 흐르고 한 아이가 입을 열었다.

  “선생님 저는 미역국 정말 싫어요, 맛없어요.”

  조기구이를 좋아한다던 D는 미역국은 정말 맛이 없더라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V도 낙지가 정말 싫다고 했다. 듣고 있던 T도 홍어가, 정말 용기를 낸 듯 입을 연 B도 김치가 제일 맛없다며 인상을 썼다. 나는 아이들에게 맛있고 맛없게 느끼는 것은 모두 다르고 그걸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나쁜 게 아니라고 말해줬다. 모든 게 마냥 좋을 수만은 없고 모든 건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다 가지고 있다고 말해줬다. 그 후 나는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했다. 오늘의 기분은 어때? 왜 그런 기분일까? 그런 기분이 들면 어떤 걸 하면 좋을까? 아이들은 단박에 답을 찾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한참 후에 솔직한 답을 생각해 말을 하기도 했다. 나는 자주 센터에서 한국어 수업이 끝나면 바로 엄마 일을 도우며 동생을 보고 집안일을 하는 아이들에게 힘들지 않은지를 묻곤 한다. 한껏 밝은 미소를 지으며 전혀 힘들지 않다고 말하는 아이들에게 내가 되물으면 아이들은 늘 같은 대답을 한다.

  “엄마랑 있어서 좋아요.”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없다. 다른 질문이 더 필요치 않은 답변이다. 아이들은 엄마와 함께 하기 위해 모든 것이 낯선 이 환경에서 기꺼이 몸과 마음의 고단함을 삭이고 있다. 모든 것이 생경한 이 도시에서 온전히 자신이 견딜 수 있는 힘은 아이들에게도 ‘가족’이었던 것이다.      


  이따금씩 아이들의 처음을 떠올린다. 아이들은 좁은 책상에 몸을 구긴 채 물선 상황을 어떻게 돌파해나가야 할지 막막한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때의 아이들이 좁고 단단한 껍질에서 바깥으로 나오기 위해 제 나름의 안간힘을 썼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 모두 같은 사람은 없다. 생각도 다르고 사정도 다르고 모든 것이 다른 우리는 매 순간이 서로의 처음이다. 내가 좀 더 물어봐주고 좀 더 읽어주면 아이들도 내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 줄까?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선생님이 되어야 할까?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웃고 있는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더 많이 물어봐 줄게. 아이들의 진짜 하고 싶은 말을 읽어내기 위해 오늘도 스스로 질문을 만들어 본다.



*다문화센터에서 중도입국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실제 경험한 일을 바탕으로 수기를 작성했습니다. 실제 내용을 기반으로 했으나 등장인물이나 신원을 특정할 수 있는 부분은 임의로 각색하였음을 밝힙니다. 중도입국청소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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